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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 영화평에 대한 평론

beautician 2016. 8. 14. 21:51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올리는 기사들 중엔 오보나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같은 것이 쉽게 발견되곤 합니다.


오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KODECO 그룹을 일구웠던 최계월 회장이 별세했을 때 조선닷컴 김동휘 기자가 쓴 2015년 11월 28일자 그의 부고기사에서 ‘수까르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됐을 당시, 학병으로 인도네시아에 끌려간 고인이 교도소 간수로 근무해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수까르노는 일본에게 서훈을 받을 정도로 충실히 부역했으니 일제강점기 당시 투옥될 이유가 없었고 최계월은 1962년 이전엔 인도네시아에 가 본 적도 없다는 것이 역사적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설을 갈겨 써도 국내최대신문 사이트에 아무런 검증도 없이 기사가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일보가 왜곡보도나 이상한 주장에 대해 눈을 감아주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번 8월 13일자 [남정욱의 명량소설]이라는 기사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논리의 비약이 발견됩니다.

우선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기사 전문은 이렇습니다.


그들만의 '영화평론'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입력 : 2016.08.13 03:00

[남정욱의 명랑笑說] 

최초의 스타 영화평론가는 정영일 선생이었다. TV 명화극장 예고편에서 그는 검은 뿔테에 절대 거짓말 안 할 것 같은 건조한 말투로 이렇게 끝을 맺었다.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절대 후회할 수 없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좀 있으면 보석이 나타난다는데. 그 달콤한 협박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새벽 두 시까지 TV 앞에 앉아 있었다. 예고편과 본편이 항상 맞아떨어졌던 건 아니다. 가끔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영일이 추천한 건데 하면서 끄덕끄덕 넘어갔다. 그를 좋아했던 건 정영일이라는 사람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떡같이 만든 영화라도 그는 어떻게든 좋은 구석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래도 조연들의 연기는 볼만합니다" "음악은 제법 들을 만하네요" 그는 영화를 사랑했다. 대중은 그런 그를 사랑했다.

영화평론가들의 전성시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영화를 단순한 오락이 아닌 철학과 미학으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절정은 키노(러시아어로 영화라는 뜻)라는 잡지였다. 스크린이니 로드쇼니 하는 잡지도 있었지만 그건 결국 스타 화보집이다. 키노는 차원이 달랐다. 생판 처음 들어보는 남미영화 특집을 하지 않나 60년대 일본 영화감독의 전 작품 리뷰를 싣지 않나 하여간 목차부터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무식은 죄다. 죽어랏!).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고색창연 문어체의 향연을 우리는 키노체()라고 불렀다. 지금 와서 그 필체를 논하라면 '저도 모르는 소리를 방언처럼 지껄여대는 허언증'이라고 정리하고 싶지만. 평론가들의 몰락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그리고 DVD에 별 정보가 다 담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식이 상식이 되었다. 그래도 평론가들의 글을 자주 읽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최근 들어 이 평론가라는 분들이 이상해졌다. 평론이 아니라 취향 고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생하고 희생한 아버지들의 이야기 '국제시장' "술술 흘러간다. 그렇다고 술술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딴죽을 걸었다. 피눈물 나는 응전의 기록 '연평해전' "130분 예비군 안보훈련"이라고 짓밟았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아예 작심을 하고 달려들었다. 평점이 10점 만점에 높아야 넷, 적으면 둘이었다. 이건 할리우드 삼류 액션물에도 안 주는 점수다. 평점만 짠 게 아니었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인천상륙작전'에 퍼부은 이들의 포화는 다음과 같다. "2016년판 똘이 장군", "멸공의 촛불", "겉멋 상륙, 작렬", "리엄 니슨 이름 봐서 별 한개 추가", "시대가 뒤로 가니 영화도 역행한다", "반공주의와 영웅주의로 범벅된 맥아더에게 바치는 헌사" 이렇게 읊으신 분들은 자기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목숨 걸고 지킨 이 나라가 너무너무 싫은 거다. 1948 8 15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은 올해 예순 여덟 살이 되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도 나이와 엇비슷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평론가 분들은 어디서 따로 살다 왔는지 인지 발달이 여전히 1948년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애들에게는 애들 말투로 말해야 알아듣는다. 가령 이런 식으로. "오구 오구 화났떠염? 그러니까 애들은 어른 영화 보지 말고 뽀로로나 보세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다시 한번 이 기사를 들여다 보며 단락을 나눠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말 말하고자 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1.정영일 선생의 영화평론은 항상 정확하진 않았지만 그의 평론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 있었다.

2.그러다가 키노잡지가 나올 즈음에 영화평론에 평론가들의 개인적 취향이 크게 반영되기 시작했다.

3.국제시장과 연평해전에 이어 이번 인천상륙작전 영화도 평론가들은 혹평했다.

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은 성공일로에 있다) - 이 부분은 대 놓고 얘기하진 않지만 이 기고문 기저에 깔린 '팩트'입니다.

5.그래서 혹평을 날린 평론가들은 영화는 개뿔도 모르면서 그냥 이 나라를 싫어하는 덜떨어진 종북세력들이다???


이렇게 가는 거죠.

3번 또는 4번에서 갑자기 5번으로 뜬금없이 훌쩍 비약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을 쓴 사람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5번 내용이었죠. 니들이 이 나라를 싫어하는 인지력 떨어지는 종북세력이 아니라면 인천상륙작전같은 애국적인 영화를 매도할 리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위해 늘어놓은 1번부터 3번까지의 사설들은 결국 이런 억지를 쓰기 위한 밑밥인 셈이지만 논리도 맥락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한 영화를 깎아 내리려 하니 너희들은 한국을 싫어하는 족속이다? 이 글이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쓰질 그랬어요.

난 이 영화 재미있었다.

근데 뭐, 이게 졸작이라고?

나랑 생각이 같지 않은 너희들, 전부 종북이야.

맞죠? 그렇죠? 편집장님? 국정원장님? 대통령님?


이렇게 말입니다.

인지발달이 1948년대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과연 평론가들인지 이 글을 기고한 조선일보 논객인지도 거꾸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1948 8 15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은 올해 예순 여덟 살이 되었다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도 나이와 엇비슷해야 정상이다.


이건 무슨 말인지도 모호하지만 매우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이건 글쓴이와 비판적 평론가 둘 중 하나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 아닌가요? 영화 하나 재미없다고 한 것 때문에?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탄생일이라 한 것을 가지고 1919년 4월 발족한 상해임시정부의 적통을 무시하는 뉴라이트 사관의 문제아라고까지 매도하고 싶진 않지만 이 모든 문맥들을 보자면 이 글을 쓴 사람은 분명 정상이 아니거나 누구에겐가 영화에 대한 평론을 뒤집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심히 무리한 것이 틀림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6.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