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막스 하벨라르

[막스 하벨라르 번역] 팀으로 일한다는 것

beautician 2017. 9. 11. 13:00


처음 막스 하벨라르 책을 구해 번역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역량이 될까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 번역판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니 어쨋든 못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두 단계의 번역과정을 지나면서 원본과 전혀 다른 번역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양교수님이 자기 이름을 걸고 철저히 감수한다 해도, 남이 해놓은 번역의 오류를 찾아내고 고치는 일은 처음부터 자기기 직접 번역하는 것보다 쉽지 않을 터였습니다. 그러니 그 감수라는 것이 고작 윤문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총 39장 335페이지 중 첫 9장 약 70-80페이지분의 번역본을 먼저 보낸 후 1주일 쯤 양교수님이 수정, 정리해 윤독을 위해 보내주신 제 1장 정리원고를 보고 충격을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번역에 수도 없이 많은 오역들이 수정되어 있었고 거의 새로 쓰다시피, 말투와 문장이 고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쓴 원래의 번역원고보다 열 배는 더 올바르고 매끄러운 원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고, 내가 최초 번역을 날림으로 해 노교수님께 너무 큰 짐을 지운 것이 아닌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수님은 내게 원고료를 챙겨주기로 하고 당신은 4,001권째부터 인세를 받기로 하는 조건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셨으니 누가 봐도 난 큰 배려를 받고 있었습니다. 배려도 정도가 있는 건데 너무 과분한 일이었어요.


그러다가 3-4장까지, 그것도 그 두장을 열흘에 걸쳐 수정하신 원고를 받고서 역시 다름없는 오역문제로 전전긍긍하면서도 뒤를 든든히 받쳐주시는 교수님께 고마움은 물론 안도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원고를 읽고 나름 재수정 요청이나 오탈자 검토결과를 빨리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양승윤 교수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원고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이번 두 챕터에서도 제가 명백한 번역오류를  많이도 저지른 걸 보고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애를 먹었던 제 3장의 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으신 내공에 놀랐고, 전에도 느낀 거지만 제 4장의 문서목록들이 정리된 상태를 보고 아마도 교수님께서 별도의 제대로 된 대조본을 가지고 계신 거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글대조본과 인니어판에는 해당 문서목록 대부분이 생략되어 있어 영어판 원본밖에 사용할 수 없었는데 거기 적혀 있지 않던 화자의 코멘트들이 교수님 원고에 등장하고 있어서 그리 생각했습니다. 제 실력뿐만 아니라 제가 선택한 영어판 원본책자가 아무래도 좀 부실하다는 생각에 새삼 많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구글대조본을 인터넷에서 찾아 본격적으로 대조하기 시작한 것인  제8~9장 쯤부터이니 거기부터는 그나마 오역이 많이 줄지 않을까 합니다.


수정할 부분이라 생각되는 곳을 감히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1. 1쪽 위에서 9번째 줄 :

저는 제 아이들이 등하교 길에 그 사내를 다시 만날까봐 학교에 보내지 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꺼림칙했습니다.

이 부분은 그 사내를 만날까봐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훗날 머플러 두른 남자처럼 될 친구를 사귈까봐 자퇴시킬까 생각해 봤다는 맥락이라 생각됩니다만...


2. 1쪽 위에서 14번째 줄 : 노좀상 -> 노점상


3. 9쪽 아래에서 13번째 줄 :

베치가 무이식 중에 빵 부스러기를 흘리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이 부분은 베치가 후리츠의 시낭송을 들으면서  빵을 든 손에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가 빵을 으스러뜨리는 장면이라고 이해했습니다만....


4. 10쪽 위에서 9번째 줄 :

북동단의 도시유명한 술라웨시 커피 집산지의 하나(~~로가 반복)


5. 10쪽 아래에서 5번째 줄 :

경험이었다. -> 경험이었습니다


6. 11쪽 위에서 10번째 줄 :

머플러 사내의 라틴어를 보면서 저는 제가 가진 지식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면서 ~면서 반복됨)



반제품도 되지 못한 번역초안을 넘겨드려 교수님 부담을 더욱 늘리고 있어 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출판사에서 번역료 절반도 9월 8일 입금받았음도 보고드립니다.


늘 건강 유의하시고요.

감사합니다.



양교수님은 늘 나와, 서문을 써주실 한인니문화연구원의 사공경원장님, 그리고 출판사 시와진실의 편집장님, 이렇게 3명에게 회람메일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내가 위의 이메일을 보낸 다음날 나만 attention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배 후배님, 산골 마을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책 쌓아 놓은 다락방 창문을 열어 제치고 가을의 이른 아침을

맞이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 작은 수고는 배 후배님의 번역을 토대로 한다는 것을

전합니다. 평생한 교수로서 나름대로 정확하게 학점을 주자면 B+입니다.

나는 A+를 주지 않거나 최소한 남발하지 않습니다. 명예교수 강의 5년

동안에는 더러 A+학점을 주었습니다. '잘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학점은

정확하게 준다'가 이문동 35년 원칙이었답니다.

 3-4학년들이나 대학원생들도 번역은 아무리 잘해도 반토막입니다.

원저자와 번역자가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같지 않고, 언어가 다르고,

언어의 뉴앙스가 다릅니다. 한국인 2세로 하바드대 교수를 하는 20대

후반의 총명한 여교수를 한국문학의 글로벌화를 위해서 초청했습니다.

일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배 후배님의 B+는 양 교수한테는 훌륭한 학점입니다. 

 산골 마을에 벌초해야할 산소가 열 군데 있습니다. 그 중에는 오래된

윗대 조상님들 산소는 산 하나만큼 큽니다. 호랑이가 출몰할 만한 산을

배 후배님이 사투를 하며 2.2마력짜리 무거운 예초기로 깎아 나가는

것입니다. 양 교수가 좀 높은 곳에 올라앉아 내려다 보며, 그리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1.5마력의 예초기와 낫으로 다듬는 것입니다.

 정본 원본을 펴놓고 있습니다. 두꺼운 네덜란드어 사전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밤중에라도 기꺼이 내 전화를 받아주는 네덜란드어 전공

후배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용비어천가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도네시아어에 자신있는 서른 살 박사 강사가 혼자서 번역할 수

있는 작업이 결코 아닙니다. 배 후배님은 지금 잘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한 줄씩 다듬고 있습니다. 시간으로 치자면, 매번 20-30분

정도입니다. 오래 집중을 하고 있으면, 두통이 옵니다. 두통이 올

낌새가 있으면 얼른 일어납니다. 그래서 느려터진 것입니다. 대신

정확도를 최대한 높이고 싶습니다.

 아래와 같은 후배님의 재 심사요청 부분은 아마도 보다 정확할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에 맞추어 재수정하겠습니다. 나아가서, 신, 하나님,

주님 같은 표현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등 보다 나은 표현 방법도

발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 행 하면, 쓸데없는 다른 일 제쳐 놓고 배 후배님과

소주 한 잔 해야 겠습니다.

 보람찬 하루를 여시기 바랍니다.

 

 양 교수 보냄.

 


참으로 마음 따뜻해지는 말씀입니다.

노교수님은 중후하면서도 겸손에 인색치 않아 더욱 몸둘 바를 모르게 하시죠.


팀을 이뤄 일을 한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특히 존경하는 분들과 함께 일하는 건 더욱 그렇죠.

그리고 더욱 제대로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먹게 합니다.

번역 시작한지 4개월을 지나면서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로 최근 진도를 못내고 있었는데 교수님께 저런 회신을 받고 나니 다시 한번 마음 다잡고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월 중순경 다시 뵐 때쯤엔 내 선에서의 번역은, 즉  내 예초작업은 다 끝나 있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2017.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