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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하벨라르

막스 하벨라르 번역

beautician 2017. 7. 23. 11:00


요즘 집에 돌아오면 새벽 2시까지 매달리고 있는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의 번역.

오늘처럼 쉬는 날이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번역을 시작합니다.

늘 번역을 해왔지만 몇 십 페이지를 간단히 끝내버리는 매뉴얼이나 참고자료의 번역이 아니라 본격 문학작품의 번역은 꽤 버겁습니다. 게다가 그게 170년 전에 쓰여진, 그것도 원판은 네덜란드어로 쓰여진 책의 영문번역본의 한글번역이라면 더욱 그렇죠. 문학작품이 몇 단계의 다른 말 번역을 거치고 나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는 양승윤 교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능한한 원본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애당초 아마존 통해 구매한 영문판 원서 말고도 구글에서 수배한 오래된 문어체의 영어번역서에, 그라메디아에서 산 인도네시아어 번역본까지 세 개를 참고하며 번역을 진행합니다.


시작한 지 한달 반쯤 되어 가는데 총 340페이지 중 현재 50% 진행율.

중간에 르바란 휴무도 있어 비교적 빨리 진행한 편인데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20 챕터 정도 남아 있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 챕터의 번역이 일주일 가량 걸리기도 하니 말입니다. 번역이란 게 참 지난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작품과 작가를 깊이 알게 되는  뜻깊은 과정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면 그 뜻을 번역해 독자들이 100%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시간이 드는 이유죠. 물론 글을 가다듬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명색이 세계 100대 문학선집에 늘 꼽히는 '문학작품'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매뉴얼이나 계약서 번역하는 식의 문장을 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단지 문제는 아마존에서 구매한 영어판 책자가 좀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감수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원고를 부랴부랴 찍어낸 것처럼 제본도 엉성하지만 무엇보다도 내용상 오탈자가 많고 문체가 조악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번역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부분도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대충 뭉뚱그린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갑자기 다른 얘기가 나오기때문에 분명한 오역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고하게 되는 구글 대조본은 너무 오래된 문어체여서 그걸 번역하려면 저절로 사극 말투가 나오려 합니다.  하지만, 물론, 내용을 분명히 파악하는 데에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도 분명치 않은 부분들은 부득이 인니어판 번역본까지 꺼내들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책의 반 정도를 번역하고 나니 좀 지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승윤 교수님 말씀대로 좀 될 때 다그쳐 하지 않으면 나중엔 자꾸 뒤로 미루게 될 뿐임을 경험상 잘 알고 있습니다. 쓰다가 지쳐 나중에 쓰겠다고 제켜 놓은 소설들, 수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얼마전 컴퓨터 정리하다 보니 중편(원고지 700-800장) 정도 되는 것들이 10편 정도 있고 원고지 1,600장을 넘어가는 장편도 두 편 있더군요. 어떤 것들은 미완결이고 어떤 것들은 완결을 내고 감수를 보다가 중단한 것들이에요. 원고지 수백장이 넘으면 오탈자 수정하기 위해 한번 되읽는 것도 1-2주 걸리는 일이 되거든요.


이 막스 하벨라르의 번역도 A4로 300장 전후가 되겠지만 순수히 번역부분만 치면 200장 남짓, 200자 원고지로는 1,500장 전후가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영어판 원본의 문제 때문에 준비한 대조본들을 모두 검토해야 하니 시간이 너무 걸리는 일이 됩니다.

이게 언젠가 돈이 되어야 할 텐데 명 짧은 놈은 그 전에 죽겠더군요.


이런 부분들도 있습니다.




진이 다 빠집니다.


아무튼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죠.

9월말까지는 반드시 끝내야 하니까요.



2017.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