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강요된 사랑 - 뻴렛주술 (ILMU PELET ) 본문
강요된 사랑 - 뻴렛주술 (ILMU PELET )
사랑이란 시공을 막론하고 인류가 가장 주목해 온 화두들 중 하나입니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조바심 나게 만들면서도 그 결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거든요. 하지만 사랑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회사나 군대처럼 특정 목적을 가진 집단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그 개인적 방향이 절대 같을 리 없는 두 개인이 아무런 사전합의도 없이 무작정 감정적, 정서적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만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이죠. 그래서 동물들도 화려한 외관이나 멋진 목소리, 또는 냄새와 페로몬으로 상대방을 유혹하고 때로는 힘으로 제압하기도 합니다. 사람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알맹이가 별로 시원찮으면 외모나 학력, 가문, 의상, 명품 액세서리는 물론 타고 다니는 차량과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동원해 상대방에게 어필하려 하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안되면 사랑을 포기해야 할까요? 물론 이 대목에 이르면 납치나 감금 같은 명백한 범죄행위들을 빼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남은 선택지란 이제 산에 들어가 빡세게 금식기도 하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신의 능력, 미지의 힘을 빌리려 한다는 측면에서 이제부터 얘기하려는 뻴렛주술과 일부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금식기도와 달리 뻴렛주술이란 그 의도가 부도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긴 하지만 실행방법은 범죄라고 인정되기 어려운, 그렇지만 걸리면 종교적,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 쉬운 것입니다. 뭐, 주술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인도네시아가 이슬람화 되어가던 과정에서 토착무속은 외래 종교의 수면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아 빤짜실라와 이슬람의 기치가 맹렬히 휘날리는 주류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은밀한 욕망을 기반으로 거대한 주술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뻴렛주술은 토착무속 중 서부자바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강력한 흑마술입니다. 인도네시아 민간에 잘 알려진 흑마술로는 상대방이 병에 걸리거나 나쁜 운이 깃들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도록 저주하는 산뗏(Santet)주술, 영적 존재들에게 산 재물을 바쳐 당대에 즉각적 금전적 번영을 추구하는 재물주술(Pesugihan), 주술을 통해 총칼도 해치지 못하는 금강불괴의 신체를 만드는 일무끄발(Ilmu Kebal) 같은 것들이 있는데 사랑을 강제하는 뼬렛주술 역시 메이저 주술들 중 하나로서 은밀하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뻴렛주술은 기본적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심지어 미워하고 혐오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불 같은 사랑을 일으켜 그 강제된 사랑을 매개로 상대방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그 지위, 재산, 가족, 심지어 기존 배우자까지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바치도록 만드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와 생명을 요구하는 다른 주술들과 달리 뻴렛주술은 일련의 엄격한 금식을 하며 일정 주문을 외우는 게 고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음습하고 파괴적인 파국을 가져온다 해도 그 시전방법은 비교적 깔끔해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더욱이 조직 내 상사나 고객들의 총애나 호의를 얻기 위해 주술을 건 액세서리나 화장품을 사용해 호감 넘치는 외모로 레벨업하는 정도라면 정말 애교로 보아 줄 수도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목적으로 주술을 담은 보석을 몸 속에 심어 획기적인 미모의 향상을 도모하는, 그래서 과거엔 성형수술처럼 성행했던 수숙(Susuk)시술 역시 뻴렛주술의 범주에 속합니다. 저주술 산뗏두꾼들보다 뻴렛 주술사들의 인터넷 사이트가 더욱 성업하는 것은 죽이고 싶은 원수보다 환심을 사야 할 상대방이 더 많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사회를 투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의 무의식에 초자연적인 영향을 가해 그 마음에 사랑의 감정을 강제로 심는 뻴렛주술의 종류는 확인할 수 있는 것만도 백여 가지가 넘지만 가장 유명한 것들로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아지안 자란고양(Ajian Jaran Goyang-날뛰는 준마의 주술)이란 옛날 짝사랑에 빠진 총각들이 상대 처녀의 마음을 굴종시키던 흑마술입니다. 7일간 정해진 금식을 철저히 행하고 매일 41차례 특정 주문을 외우면 마지막 날 밤 상대방 처녀는 당신에 대한 깊은 사랑이 흘러 넘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기 시작합니다. 이 주술에 걸린 처녀는 당신의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그리움에 늘 가슴이 타 들어가는데 당신이 그녀를 차갑게 대하면 급기야 미쳐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인도네시아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상대방에게 복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주술을 더욱 찾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족이지만 서부자바의 인드라마유와 찌레본이 뻴렛주술의 원조격 성지가 된 것은 이 자란고양 주문을 만든 끼 부윳 망운 따빠라는 도인의 묘지가 인드라마유에 있고 그의 비밀 주술서를 손에 넣은 찌레본 인근 쩌르마이산(Gn.Cermai)의 마녀 니니뻴렛(Nini Pelet)이 고대 자바의 왕들을 비롯한 수많은 남성들을 정복해 그들의 생명을 제물로 수백 년 동안 젊음과 미모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뻴렛’이란 명칭 역시 이 마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한편 이에 못지 않게 유명한 스마르 므셈 주술 (Ilmu Pelet Semar Mesem)은 가장 오래된 고대의 주술로 상대방을 미소 하나로 사로잡을 뿐 아니라 시전자가 아우라를 발하며 더욱 현명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도록 해 누구든 그 주변에서 마음의 안정과 행복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니 관료들이나 연예인들, 다단계 사업자들처럼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려야 하는 사람들이 이 주술에 주목합니다. 이 주술이 스마르의 미소 (스마르 므셈)이라 불리는 이유는 전통 그림자극에도 등장하는 고대 자바의 반신반인 스마르(Semar)가 이러한 아우라를 풍겼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바람난 배우자를 돌려세우는 뿌떠르 길링 주술 (Ilmu Pelet Puter Giling), 사랑의 끈을 더욱 바짝 조여 가정의 화목을 증대시키는 깐띨 주술 (Ilmu Pelet Kantil), 왕가의 공주들이 왕자들을 유혹하는 데에 쓰였다는 아스마라가마 주술 (Ilmu Pelet Asmaragama) 등도 세간의 관심을 끕니다.
한편 자기 딸이 가족도 아닌 외간남자만 감싸고 돌며 부모를 거슬러 집안의 돈과 재산을 빼돌려 그 남자에게만 퍼날라 주려 한다면 뻴렛주술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인들의 일반적 반응입니다. 따라서 뻴렛주술에 빠졌는지 판단하는 분별법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있는데 대개 생활리듬이 깨진 채 제정신이 아닌 듯 말귀도 못 알아듣고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실제로 매체나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뻴렛주술의 사례에서 무서울 정도의 짝사랑과 그로 인한 강박관념으로 추하게 망가져 가는 피해자들이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보다 분명한 주술의 영향 아래 두려면 그 방식은 좀 더 음습해집니다. 기본적으로 뻴렛주술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아 결국 아는 사람의 등 뒤에서 은밀하게 시전되는데 주술이 담긴 재료를 음식이나 음료에 섞어 먹이거나, 저주술의 경우처럼 상대방의 침이나 분비물 등 체액, 머리칼, 손톱, 체모 또는 속옷을 주술의식을 통해 태우거나 주술적 힘이 담긴 함에 봉인하는 방식으로 주술의 위력을 극대화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뻴렛주술은 범죄의 경계를 살짝 넘어가기도 합니다.
뼬렛주술 피해자들의 인격과 의지가 파괴되고 생활이 망가져가는 모습은 주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마약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터무니없는 기행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여 최면술이나 독, 약물을 통한 정신지배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실제 피해자들은 혹독한 정신적 고통과 심각한 후유증을 겪습니다. 뻴렛주술이 정말 무서운 점은 그 효과와 후유증이 거의 영구적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뼬렛주술을 건다는 건 매우 위험한 공격행위인 것이죠. 스스로에게 뻴렛주술을 심는 수숙의 경우에도 후유증이 남습니다. 어떤 여인은 병들고 늙어버렸지만 그 부작용으로 90살이 넘어도 평안히 죽을 수 없어 결국 그때의 두꾼을 불러 수숙을 제거하자 다음날 비로소 죽을 수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물론 불경한 주술을 몸에 담고서는 무슬림의 죽음을 맞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말하고자 만들어진 얘기라고 생각됩니다.
뻴렛주술의 남용과 파괴적인 부작용에 비해 인도네시아인들이 말하는 예방책은 매우 소극적입니다. 다른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니 말입니다. 즉 누군가의 사랑고백을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모욕감을 주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주술로부터의 안전이 담보될까요?
뻴렛은 다른 주술들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강제로 얻어내려는’ 목적을 가집니다. 그래서 뻴렛주술이 성행한다는 것은 사랑과 호의를 얻는 것이 그토록 중요함을 웅변하는 동시에 그것들이 그토록 얻기 힘든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뻴렛주술에 의존하는 사람들 마음은 상당부분 이해하면서도 필연적 부작용인 상대방의 정신적 피폐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파렴치함도 살짝 엿보게 됩니다. 주술의 효과가 있고 없음을 차치하고 뻴렛주술이 정신건강에 이롭지 못함은 자명해 보입니다.
뻴렛주술처럼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현지 무속과 주술은 사실 우리 주변에 바짝 다가와 있습니다. 처우에 불만을 품고 나가버린 뻠반뚜가 자기 방 달력 뒤에 그려놓은 이상한 그림들과 도형들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걸까요? 노사분규를 겪고 있는 사업장의 엄격한 사장과 완고한 관리자들은 앙심을 품은 직원들로부터 이미 몇 번씩이나 산뗏저주를 맞은 건 아닐까요? 오더 캔슬 당한 저 업체 사장은 밤새 찌레본이나 수카부미의 용한 두꾼에게 달려가 내 헝겁인형에 바늘이라도 꼽으려 들진 않을까요? 탕비실에서 내오는 저 커피에 직원들이 주술 걸린 설탕을 넣지 않았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부서 여직원과 동거하기 시작한 매니저가 회사 시스템이 망가질 정도로 자기 애인만을 싸고 돌며 다른 직원들의 원성을 사는 건 사실 뻴렛주술에 걸린 꼭두각시가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쁘게 차려 입은 사무실 여직원은 오늘도 상냥한 미소로 인사하지만 사실은 내 호감을 얻기 위해 뻴렛주술이 걸린 브로치로 질밥을 고정하고 그런 립스틱으로 입술을 발랐을지 모릅니다.
이슬람을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현지 무속을 공부하는 것 역시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일 테니까요.<끝>
'인니 민속과 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링크] 흑마술을 신용하고 긍정하는 사람들 (0) | 2018.08.13 |
---|---|
[인도네시아 주술] 일무 끄발 (0) | 2018.02.27 |
귀신 (0) | 2017.05.20 |
[한인뉴스연재] 집단빙의 III (0) | 2017.04.12 |
[뻴렛주술]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의 고사 (0) | 2017.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