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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주술] 일무 끄발

beautician 2018. 2. 27. 10:00

일무끄발 - 금강불괴 신체술

 


끄발이란 기본적으로 '굳건히 지켜낸다'는 의미입니다. 병에 몸이 상하지 않는다는 다야끄발(daya kebal)은 면역력을 뜻합니다. 병장기로 몸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의미의 일무끄발(Ilmu kebal)은 영력이나 신령한 힘을 통해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능력 또는 그런 주술을 뜻합니다.

 

일무끄발은 뻔데꺼르(pendeker)의 기사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뻔데꺼르란 무술고수, 선구자, 위대한 선생, 영웅을 뜻합니다. 인도네시아 TV에 등장하는 스노빠티(마따람 왕국의 권능왕-Penembahan)나 가자마다(마자빠힛 왕조의 재상) 같은 뻔데꺼르들은 고대복장을 하고서 장풍을 날리고 경공술을 시전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강점기에 점령군과 맞섰던 영웅들도 대부분 뻔데꺼르라고 불립니다. 그들은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가진 적들과 맞서 싸우고 월등한 화력과 장비를 가진 네덜란드군을 맨손으로 상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데꺼르가 승리하려면 상대방을 죽이는 기술보다 자신이 죽음을 피하는 기술, 죽음에 이르지 않는 기술 죽음을 극복하는 기술이 더욱 필요할 것임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라운 무공뿐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일무끄발로도 무장했다고 전해집니다. 다시 말해 도검불침 금강불괴의 신체를 이룩한 것이죠.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주술과 부적을 통해 귀신과 신령의 힘을 빌어 얻어집니다. 그래서 주술사 두꾼이 개입하고 지맛이라 부르는 부적이 등장합니다. 그 지맛이 깨지면 주술도 깨어져 비로서 창칼이 몸을 상하게 하므로 무엇이 지맛인지는 철저한 비밀이 되어 숨겨집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지맛은 주술이 깃든 보석이거나 화려하게 장식된 끄리스 단검이곤 합니다.

 

물론 금강불괴의 무림고수라 해도 상대편 대군을 매번 물리치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결국은 수에 밀리고 지략에 빠져 적의 수중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일무끄발의 진면목은 그럴 때 더욱 드러납니다. 어떤 고문을 해도 미소를 흘릴 뿐이고 칼은 물론 총탄조차도 통하지 않으니 도무지 처형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런 황당할 때가 또 있을까요?

 

이게 같지만 중부자바에서 흔히 행해지는 차력쇼 '꾼뚤'행사도 기본적으로 이런 일무끄발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도 TV뉴스에서도 일무끄발의 실례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1. 께말이드리스(Kemal Idris)증언

께말이드리스는 일제강점기 PETA 의용군 출신 장교로 군시절 절친으로는 렝꽁전투에서 전사한 다안모곳, 인도네시아 첫 정보사령관 줄키플리 루비스 대령 같은 이들이 있었고 독립전쟁과 숱한 반란의 시대를 거쳐 훗날 1960년에 별 셋 중장인 예비전략군사령관으로 군생활을 마감하고 유고슬라비아 대사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독립전쟁 중 잠시 휴전을 맞았던 1948 9월 중부 자바 마디운에서 공산당 반란이 일어나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후 진압되었지만 잔당들을 소탕하는 것은 그 후 몇 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당시 께말이드리스는 소령 계급을 달고 빠띠(Pati) 지역의 PKI반군들을 진압 중이었는데 빠띠에서 사로잡은 PKI 간부 중 한 명이 일무끄발 능력이 있어 처형하려고 수 차례 사격하고서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유엔 제3국 감시단으로 동행한 호주군 장교도 이 장면을 보고 어리둥절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주술을 이해하는 한 초급장교가 있어 탄약 한 발을 꺼내 흙에 몇 번 문지른 후 다시 권총 탄창에 넣어 총을 쏘자 그제서야 가슴의 관통상을 입고 고꾸러졌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자서전 '혁명 속의 전쟁'(Bertarung dalam Revolusi)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2. 시삐뚱의 일화

Si Pitung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인데 인도네시아 측에서는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스코틀랜드 영웅 월리스에 필적하는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네덜란드 식민정부 측 기록에는 무정부주의 악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침략자와 결탁한 부자들, 기득권층을 공격해 약탈한 것을 바타비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때 수까르노하타공항을 이전할 계획이 있어 마룬다로 옮기려 하다가 나중엔 까라왕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마룬다 이전계획 당시 신축공항 이름을 시삐뚱 공항으로 하려 했습니다. 그는 그 정도로 유명하고 사랑받는 바타비아의 로빈훗이었죠. 그에 대한 영화도 몇 편이나 나왔습니다.


 

그는 서부자카르타 라와벨롱지역 출신입니다. 지금의 심뿌룩인다, 뻐르마타히조 인근이죠.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었고 나이삔이란 스승에게서 일무끄발의 술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총독부 경찰총감까지 직접 나서 부대를 움직여 그를 잡으려 했지만 총칼로 그를 해할 수 없어 결국 매번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스승을 잡아 그의 금강불괴의 비밀을 알아내 결국 그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동인도회사(VOC) 기관지 Hindia Orlanda지에도 실려 있습니다.  1893 10 18일자 해당신문에 따르면 시삐뚱은 죽기 직전 머리를 짧게 자른 상태였다고 합니다. 삼손이 생각나는 대목이죠. 일무끄발의 관점에서 보면 삼손의 긴 머리칼이 바로 일무끄발 주술의 지맛(부적)이었던 겁니다.

 
또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의 몸을 지켜주던 부적을 누군가 탈취했기때문에 죽음을 맞았다고도 하고 총독부가 군대를 동원해 시삐뚱의 무덤을 지키고 바타비아 사람들의 성묘를 금지한 것은 강력한 일무끄발 능력을 가진 시삐뚱이 되살아날 것이란 민중의 믿음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합니다. 그가 사용한 금강불괴술은 특별히 일무라웨론떽(Ilmu Rawe Rontek) 이라 불린다 하는데 이는 흡혈귀처럼 목과 몸을 완전히 분리해 놓지 않으면 이 주술의 시전자가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재구성된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총독부 히네 경감이 그를 쏠 때 금으로 만든 탄환을 사용했고 그가 쓰러지가 즉시 목을 잘라 목과 몸을 각각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매장했다고도 합니다.

 

이 주술은 궁극의 흑마술로 이 술법을 오래 사용하면 실제 성격이 난폭하고 잔혹하게 변한다 합니다. 물론 시삐뚱이 독실한 무슬림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기 절대 동의하지 않고 있죠. 그가 살았던 마룬다 집은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는 관광지가 되어 있습니다.


3.
뻐르메스타 반란군의 악당 얀 띰블렝

 

1958년에 2월 빠당을 중심으로 한 중부 수마트라에서 PRRI(인도네시아 공화국 혁명정부) 반란이 일어나고 같은 해 3월에는 남부 술라웨시에서 뻐르메스타 반란이 시작됩니다. 이 반란들은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비해 자바섬을 벗어난 지방지역의 발전이 크게 낙후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것들입니다. 해당 지역 군사령부가 주축이 된 이 반란에서 해당지역들은 지방세수를 중앙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각 지역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이 요구사항의 골자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돈 없이는 국가가 성립될 수 없었으니 수까르노의 중앙정부가 진압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기 욥 와로우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나도 소재 KNIL의 미나하사 병사들이 네덜란드군에게 반란에 개입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고 시마뚜빵과 나수티온 등이 국회와 대립각을 세울 때 그는 남부 술라웨시 제7군 참모장으로서 당시 군부의 편에 서서 국회를 위협했던 제7군 사령관 가똣 수브로또 대령을 체포하면서 중앙정부에 충성했지만 PRRI-뻐르메스타 반란이 벌어지자 펜체 수무알, 알렉스 까윌라랑과 함께 뻐르메스타 운동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고 PRRI의 부총리 겸 건설부장관의 자리를 맡는 등 시류를 유연하게 타며 승승장구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60년 중앙정부의 진압군이 북부 술라웨시를 점령했을 때 자신과 대립하던 얀 띰불렝의 뻐르메스타군 제999여단 제7 대대에게 그해 4월 체포되어 6개월 동안 감금되었다가 1960 10 15일 살해당하게 됩니다



펜쩨 수무알 대령이 와로우를 구출하기 위해 얀 띰블렝과 그의 부대를 10 8일 한 회합에 불러내지만 그 의도를 눈치챈 얀 띰블렝은 극렬히 저항하다가 사살당했고 그 자리에서 살아서 빠져나간 잔당들이 수무알 대령의 병력이 도달하기 전, 근거지에 감금하고 있던 와로우를 끌어내 살해했습니다. 얀 띰블렝은 금강불괴 주술이 걸린 반지부적을 사용해 소총 실탄도 그의 몸을 관통할 수 없었으므로 그를 죽일 때 특별한 방법이 동원되었다고 하며 그가 잔혹한 성품도 오랜 기간 사용한 주술의 부작용이었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4.
정규 군사훈련 과목으로 고려되었던 산뗏저주술과 일무끄발 주술

 

이것은 2013 10월 이스틱랄 사원에서 금요일 낮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통합군 사령과 물도꼬(Moeldoko)대장과은 가스구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부터 군대에서 금강불괴신체술과 산뗏저주술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가스꾸스 통신은 인도네시아 인터넷 판 선데이서울이므로 정말 이런 인터뷰가 있었는지 좀 의심해 봐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5, 고론탈로의 사나이

이 사건은 인도네시아의 한 공중파 방송 정규 뉴스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술레웨시 북부 고론탈로 (Gorontalio) 지역에 살던따르잔이라는 남자는 빌린 돈을 갚으라며 집에 찾아와 고 독촉하는 독촉하는 이웃과 아마도 겁을 줄 목적으로 그와 동행한 경관 한 명을 때려 살해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 남자에게 수 차례 경고한 끝에 처음엔 팔과 다리나중엔 몸통을 향해 비교적 근거리에서107발의 총알을 쏘았지만 그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습니다그러던 중 금강불괴술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한 그의 약점이 반지형태의 부적임을 한 이웃으로부터 들어 알게 된 경찰은 반지를 조준사격해 깨뜨렸고 그러자 따르잔은 고꾸러져 경련을 일으키다가 곧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일무끄발(Ilmu Kebal), 일무끄삭띠안(ilmu Kesaktian) 또는 일무까우라간(Ilmu Kauragan)이라고도 하는 이 금강불괴술은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역사 속에 녹아들어 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습니다그리고 금강불괴술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적이나 성물을 전해준 두꾼의 경고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지 않거나 평생 여자를 품지 않거나 특정한 장소에 가지 않거나 특정한 물건을 손대지 않는 등 일정한 금기를 지킵니다그 금기는 삼손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끄리스단검이나 반지 같은 성물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앞서 언급했던 시삐뚱의 경우 고도의 금강불괴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금기를 지켜 평생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이 일무끄발이 아직도 수면 밑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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