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우리 학군단 훈육관님

beautician 2016. 9. 9. 10:00

 

 

수염을 길렀다면 분명히 산적같았을 거라고 확신이 가는 훈육관 전중위에게 교수법을 배운 것이 학군단 2년차였던 것 같습니다. 체육과 출신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아침에는 새파랗던 인중 이하 수염터가 오후가 되면 이미 거무튀튀한 색상으로 짙어져 가는 전중위는 그 당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군 장기복무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직도 군에 남아 있다면 이제 대령 말년쯤 되셨겠지요.

 

돌리지 마!”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내가 독도법에 대한 교수법 시범을 보이고 있던 때였을 거에요. 강단에 올라서 학군단 동료들 앞에서 지시봉으로 차트를 가리키며 강의 시범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교실 맨 뒤에 서 있던 전중위가 그렇게 호통을 치고 있었습니다.

 

비록 유려한 말재주는 없지만 그렇다고 군사학 강의를 하면서 말을 빙빙 돌려야 할정도로 내가 그렇게 말주변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훗날 자대배치를 제 3땅굴을 관장하는 보병 1사단  멸공관으로 받아 2년 동안 외국 손님들과 군장성들을 포함해 매일 수십명, 많은 때에는 수백명의 방문객들 앞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기분 내키면 일본어로도 브리핑을 하게 되는데 아무리 임관 전, 땅굴 부임 전이라 해도 아무려면 말을 뺑뺑 돌렸겠어요?

 

돌리지 말라니까!”

 

의도적으로 핵심만 꼭꼭 집어 내고 있었는데 전중위는 2분도 안되어 다시 그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훈육관님 목소리에 이미 짜증이 잔뜩 묻어 나오는 것이 전투모를 쓴 그의 머리 위로 봄볕 나른한 동산에서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같이 수증기가 올라오는 게 보이는 듯 했습니다. 교실에 앉은 동료들이 킥킥 웃기 시작했습니다.

 

(뭘 더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요. 이젠 핵심을 찌르는 정도가 아니라 굵직굵직한 제목만 읽으며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전중위의 2단 옆차기가 날아드는 건 그로부터 1분도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돌리지 말랬잖아!!”

 

강단 위로 전광석화처럼 날아들어 나를 한방에 KO 시켜 버린 김중위는 분을 못참는 듯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그 콧구멍에서 금방이라도 불길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 자식아!!  지시봉 뱅글뱅글 돌리지 말란 말이야! 어지러워 죽것다!!”

 

아뿔사전중위가 지적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말을 빙빙 돌린다는 게 아니라 강의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시봉을 빨래 쥐어짜듯 손아귀 안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교실 안의 ROTC 동료들은 이제 배꼽을 잡고서 뒤집어지고 있었습니다.

 

니들도 다 똑같아, 이 자식들아!!”

 

홱 고개를 돌리며 고함을 치는 전중위의 안광이 번들거리며 빛났습니다.

나중에 우리도 중위 계급장을 달게 되었을 때 학군단 시절 훈육관 중위들이 사실은 우리랑 나이 차이도 계급 차이도 별로 안 나는 군생활 2~3년차의 초급장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왜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고 마치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소년병 출신처럼 대단하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교실을 휘둘러보는 전중위의 호통 한 번에 교실은 대번에 잠잠해지고 그 안광은 마치 엑스맨의 사이크롭스가 그 외눈에서 쏟아내는 파괴광선처럼 우리 안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듯 느껴졌습니다.

 

지시봉 돌리는 놈이 없나, 발을 건들거리면서 강의하는 놈이 없나, 거기다 말까지 더듬는 놈이 없나, 장교가 되겠다는 녀석들이 고작 그 정도밖에 못하겠어?? 나중에 너희 소대원들이 너흴 어떻게 믿고 적 고지를 치고 올라가겠어?  내가 너희들만 보면….!”

 

흥분한 전중위는 잠시 말을 끊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전중위는 쉽게 흥분하는 버릇이 있었죠. 화가 나면 얼굴이 온통 시뻘개질 정도였죠. 우리는 고혈압을 의심했습니다.

 

내가 너희들만 보면 가슴이 다 벅차온다, 이 자식들아!!”

 

잠깐만…. 이게 문법에 맞는 얘깁니까?

내가 너희들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든가, 속이 터질 것 같다든가, , 이런 말로 매듭지어져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전중위는 자신이 한 말이 우리 마음 속에 아로새겨지도록 하려는 듯 잠시 말을 끊고 엄숙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 보고 있었지만 그건 오히려 역효과였습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참으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는데 결국 교실 저 뒤쪽에서 쿡쿡 거리며 웃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교실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고 그 결과 격노한 전중위에 의한 대학살이 도래하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웃음조절밸브가 고장 나 버린 우리들은 좀처럼 웃음을 멈출 수 없었지요. 그리고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그 날 전중위는 헐크가 되었습니다.

 

 

 

그는 혈기와 열정이 넘치는 훈육관이었습니다. 그 열정이 너무나 넘친 탓에 전중위는 대충 무대포에 말이 1분 이상 길어지면 앞뒤 정리가 잘 안되는 전형적인 야전부대 타입의 장교였지만 그 스스로 ROTC 선배로서 학군단 후배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은 학군단 생활 2년 동안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실제로 교육 후 여분의 시간을 내 후보생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는 편이었고 나 역시 전중위와 많이 대화했고 조언과 도움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늘 좋은 얘기를 해주려 노력하고 가능하면 후보생들 마음에 와 닿는 명언을 말하려 했던 전중위는 그러나 때로는 그런 노력이 좀 과한 바도 있었어요.

 

열병, 분열 훈련을 할 때였습니다.

80년대에 대학에 들어온 386 세대라면 대부분이 고등학교 시절 교련복을 입고 나무를 깎아 만든 M1 모형소총을 들고 쎄빠지게 열병, 분열 훈련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우리도 그런 세대였고 이제 ROTC 학군단에 입단해 제대로 된 전투복을 입고서 (열병, 분열 때 사용하는 소총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M16 모형소총이었지만) 훈련에 나섰지만 왜 그렇게도 기적적으로 발이 잘 안맞는지 미스터리일 지경이었습니다. 1년차 후반기에 여러 명의 동료들이 국군의 날 행사에 차출되어 3개월 가까이 여의도 광장에서 발을 맞춘 바도 있었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1.2년차 다 합쳐 120명도 안되는 인원의 열병, 분열 훈련의 처음 몇 번은 그런 난장판도 없었습니다.

 

전중위 열받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지요. 전중위의 독려 속에서 수없이 훈련이 반복된 끝에 이제 제법 각이 나오기 시작했고 줄줄이 좌향 앞으로 갓의 대목에서도 열과 오가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전중위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사열대 앞에서 우리들이 올린 경례를 멋진 거수경례로 답하는 대목까지도 나름대로 별 문제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열대를 지나면서부터 또 다시 몇 명의 발걸음이 꼬이면서 행군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중위의 예의 2단 옆차기가 날아 듭니다. 사열대 단상에서 하늘 높이 발사된 전중위는 우리들 대오 한 가운데로 미사일처럼 날아 들었지요.

 

이 노무 자식들!! 장교가 되겠다는 놈들이 발도 못맞춰서 어디다 쓰겠어?? 잘 나가다가 중간에 그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 거야?  용두사미 하지 말고…!”

 

또 뭔가 나올 대목입니다.

 

용두사미 하지 말고 어두육미 하란 말이얏!!!”

 

우리들 뒷골에 띵~하며 마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용두사미 하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둬라…., 뭐 대충 이래야 말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어두육미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무시무시한 안광으로 우리들을 준엄하게 둘러 보고 있는 전중위 앞에서 후보생 동료들은 또 다시 얼굴이 새파래질 정도로 웃음을 참으려 비지땀을 흘리며 애썼습니다.

 

그 후 상무대를 거쳐 각자 자대로 배치된 우리들은 군생활 내내 어두육미 해보려 애를 썼고 아직 군에 남아 마침내 별을 단  동기도 나왔고 다들 나름 어두육미를 노력하고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2016. 8. 23 (R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