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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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그대 비탄에 잠긴 밤
‘노모르 양 안다 뚜주 띠다 먼자왑.’
전화기 건너편의 간드러진 전자음성은 내가 건 번호가 응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대사관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이제 와서 딱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사관 핫라인이나 담당영사와의 통화성공율은 실망스럽도록 낮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한 차례 물의를 빚으면 조금 개선되는 듯 하지만 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 늘 시간문제일 뿐이었습니다.
[저도 소식 듣고 대사관에 몇 번 전화했지만 통 받지 않네요.]
[대사관 홈페이지엔 민원을 올릴 게시판이 없는 모양입니다.]
[본국 외교부에선 대사관에 전화하라 하네요.]
[청와대 게시판 본인인증은 한국전화번호로만 가능해요.]
[국가인권위원회엔 글이 올라가질 않네요.]
내 인터넷 포스팅에도 이런 댓글들이 붙었습니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본국 관청들의 정상적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이토록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른 5월의 어느 날, 자카르타 교민들은 이 난리를 치며 대사관과 외교부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던 5월 4일 자카르타 시내 사뜨리오 거리의 한 백화점 1층 로비에서 한국 속눈썹 브랜드의 대대적인 이벤트가 있었는데 나는 그 화려한 행사를 한참 동안 넋 놓고 지켜 보았습니다. 무대 위에선 인도네시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현직 미스코리아가 눈부신 자태를 뽐냈고 매력적인 여가수도 한껏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쟁쟁한 출연진들의 면면에서 주최측 김사장이나 본국 스폰서들의 저력이 엿보였습니다.
“턱 빠지겠어요.”
어느새 바로 옆에 다가온 자그마한 여인의 소근거림에 난 화들짝 놀랐습니다. 설마 내가 침까지 흘리고 있진 않았겠죠.
“아, 헬렌. 여긴 어쩐 일이에요?”
“저분들이 우리 호텔 손님들이에요. 호텔에서도 같은 행사가 내일 있어서 공연을 어떻게 하는지 보러 온 거에요.”
헬렌과는 예전에 같은 교회를 다녔습니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화교인 그녀는 당시 한국남성과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난 그보다 훨씬 전인 그녀의 호텔인턴시절부터 안면이 있었고 연회마케팅 부서에서 그녀의 첫 고객이 되어 당시 내가 총무를 맡고 있던 학군동문회 연말모임을 그녀의 호텔에서 가졌습니다.
“이혼했다고 내가 한국사람들 싫어할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럴 리 없잖아요? 내 아들도 반은 한국사람인데요.”
내 사업이 하향곡선을 그으면서 나날이 흰머리가 늘어나는 동안 30대 후반에 접어들던 헬렌 역시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교인 수가 열 명도 채 안돼 남의 교회 뒷방을 빌려 쓰던 미니교회를 다녔습니다. 교민사회 주류에서 비껴난 패배자들의 모임 같은 것이었지만 서로에게 느껴지던 그런 동질감이 구체적인 위로로 다가왔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자카르타 곳곳에선 내로라 하는 한인교회의 집사와 장로들이 그 옛날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로 나선 엑소더스 시대의 유태민족처럼 교회를 깨고 나오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인회 임원이자 저명한 사업가였던 한 안수집사가 자기 직원들과 협력업체 가족 2백 여명을 거느리고 우리 교회로 대거 몰려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뜬금없는 폭발적 부흥이었지만 그들이 앞서 다녔던 교회는 거의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밀물이 몰려오면 반드시 썰물이 빠져나가듯 몇 개월 후 그들이 또 다시 우르르 몰려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교회는 풍비박산 났고 원래 있던 교인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제 와서 그 유태민족에게 특별히 악감정이 남은 것은 아닙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교회를 선택할 자유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휩쓸려 무너진 것은 불경한 우리 스스로의 탓입니다. 함께 교회를 떠나 가나안을 찾아 가자는 그들의 회유를 거절했으니까요. 그러자 그들은 천추의 대적 블레셋과 아말렉 족속을 만난 모세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철저히 망가뜨렸습니다. 나와 헬렌의 가족은 대체로 블레셋 족속 취급을 당했습니다. 유태민족은 마침내 자기 교회를 세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짓밟은 광야의 이방인들에게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헬렌 가족과 그때 그렇게 헤어진 후 간간이 소식을 듣긴 했지만 직접 만난 것은 그 속눈썹 행사장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렇게 예쁜 여자들도 다 성형빨인 모양이죠?”
헬렌의 뜬금없는 질문에 난 잠깐 사래가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은 성형공화국으로서 이름을 떨쳤고 실제로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한 인도네시아인들의 후기도 심심찮게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시장이 형성되자 성형 에이전트 사무실이 자카르타 시내에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날 행사에도 강남 성형외과 광고배너들이 여러 개 걸려 있었습니다.
그 이벤트를 주최한 김사장이 메이크업 브러시와 인조 속눈썹을 들고 처음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난 내 미용거래선들을 소개해 주며 그의 정착을 도왔지만 그의 첫 현지 교두보는 정사장이라는 고향친구였습니다. 김사장은 성과를 내지 못한 정사장과 결별하던 과정에서 나를 만났고 나도 그때 정사장과 처음 안면을 텄습니다. 오랫동안 현지에서 백수처럼 지냈던 정사장은 그렇게 또 수입이 끊겼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 후 그는 어떤 인연을 통해 한 강남 성형외과의 에이전트가 되어 자카르타 시내 한 복판에 그럴듯한 사무실을 내고 성형수술 희망자들을 모집해 한국에 보내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미스터 정? 모르겠는데요? 성형도 내가 아는 한 미스터 킴 사업이에요. 이번에 같이 온 성형외과 원장님이 지금도 호텔에서 손님들 상담하고 있거든요.”
난 김사장과 정사장이 성형사업으로 다시 손잡은 것을 헬렌이 모르고 있는 것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돈벌이가 된다면 의리 정도는 언제든지 내팽개치는 세상이지만 당시 브러시와 속눈썹 매출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던 김사장이 오랜 고향친구가 모처럼 차지한 밥그릇마저 뺏으려 들 리 없었습니다. 저 성형외과 광고배너들은 김사장이 차려놓은 밥상에 얹어놓은 정사장의 숟가락일 터였습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헬렌은 급히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예의 그 원장님이 호텔 서비스에 뭔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호텔 일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나 역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급히 몰을 나서야 했습니다. 베트남 출장이 코 앞에 닥쳐와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황에서 활로를 찾아 떠나는 이번 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길어질 예정이었고 그 전에 자카르타에서 처리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습니다.
이틀 후인 5월 6일 밤 늦게 헬렌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뭇 다급했습니다.
“혹시 미스터 킴을 좀 설득해 줄 수 있어요?”
이민국과의 문제로 당초 계획했던 호텔 VIP 행사를 부득이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김사장이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것입니다.
“이민국하고 무슨 문제가 생긴 거에요?”
“미스코리아랑 여가수, 메이크업 아티스트, 성형외과 사람들 전부 관광비자로 들어왔다는 거에요.”
난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행사무대에 오르려면 공연비자를 받았어야 했습니다. 이민국이 곱게 지나갈 리 없는 명백한 비자법 위반이었어요. 그런데 매일 수천 명씩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이민국이 일일이 모니터링 할 리 없었으니 달랑 3박4일 일정의 팀을 공연 중 덮쳤다면 분명 사전제보가 있었을 터였습니다.
“일단 전화는 해 볼게요. 그런데 누가 찌른 거래요? 미스코리아 일행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이민국 직원들이 여가수를 직접 위협했어요. 미스코리아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마침 그때 다른 곳에 있었고요. 이민국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첫 날부터 공연사진을 찍어 증거를 완벽하게 확보한 모양이에요.”
이런 문제는 사과나 해명으로 끝날 리 없습니다. 그런 정도의 비자법 위반을 초기에 무마하는 비용은 보통 일인당 2천불 정도였는데 하물며 현직 미스코리아와 한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의 몸값은 그 몇 배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사장이 숨어버린 건 결국 비용문제를 피하려는 것이겠지만 주최자인 그로서는 시간적으로 궁지에 몰릴수록 감당해야 할 비용은 오히려 더욱 커질 터였습니다.
“미스터 킴 하는 행동이 무책임한 전남편을 닮았어요.”
헬렌은 전화를 끊기 전 그렇게 덧붙였습니다.
사건이 벌어지자 불안을 느낀 성형외과원장 일행은 귀국일정을 앞당기며 호텔에 방값차액의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4박 5일간의 호텔비를 미리 받아 챙긴 김사장은 미스코리아와 여가수를 동원한 별도의 VIP 행사를 해주는 조건으로 정작 객실과 관련 서비스를 호텔로부터 무상협찬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 행사가 취소되었으니 오히려 호텔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원장일행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하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습니다. 그런데 헬렌은 그 상황의 어떤 부분에서 전남편의 무책임을 떠올렸던 걸까요?
들키지만 않았다면 깔끔하게 지나갔을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김사장은 챙긴 돈의 몇 배를 토해내야 할 판이었습니다.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내가 설득한다 해서 꼭꼭 걸어 잠근 김사장의 지갑이 쉽게 열릴 리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의 휴대폰은 그날 밤 내내 꺼져 있었습니다.
헬렌은 치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일이 벌어져 원래 자기 휴무일인 화요일을 반납한 상태였습니다. 나 역시 목요일엔 호치민행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날인 5월 7일도 거의 다 지나 저녁이 다가왔습니다.
[세 명 모두 이민국에 잡혀갔어요.]
헬렌의 카톡 메시지에 난 경악했습니다. 현직 미스코리아가 비자법 위반으로 외국 이민국에 억류되었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스코리아는 어제 밤 귀국했어요. 잡혀간 사람들은 다른 여자 두 명과 미스터 킴이에요. 미스터 킴이 어제 마지못해 이민국에 출두했는데 자기도 근로비자 없이 일하고 있던 게 들통났대요.]
맙소사.
[이민국 직원들이 아침에 두 여자분 여권을 압수했는데 김사장이 해결을 장담하면서 여권을 주라 했대요. 그러더니 그 바보가 자기 먼저 체포된 거에요. 결국 여자분들도 아까 낮에 모두 잡혀 갔어요.]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이제 와서 헬렌이 내게 상황을 설명한들 난 이민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도 아니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 역시 아니었습니다. 미스코리아도 억류되었다면 협회나 소속사, 또는 정부에서 일국의 대표미인 일행이 외국 이민국 유치장에 밤새 갇혀 있도록 놔둘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스코리아의 발 빠른 탈출은 나머지 사람들에겐 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큰일이군요. 그럼 이제 방법이 없네요. 게다가 난 내일부터 출장이에요.]
[호텔도 체크아웃 한 손님들을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난 저 사람들을 저렇게 팽개칠 수 없어요. 아까 이민국 유치장에 가보니 여자들은 펑펑 울고만 있었어요. 미스터 킴마저 잡혀갔는데 이제 미스터 배도 손 떼버리면 저 사람들 어떻게 해요? 한국사람들끼리 어쩌면 그럴 수 있어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두 한국여성들을 위해 성공률도 매우 낮아 보이는 ‘공익적 목표’, 즉 ‘죽어도 돈이 안될 일’을, 내가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며 해야 한다고 헬렌은 강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겐 고작 일의 문제였지만 저 두 여성들에겐 생존의 문제일 터였습니다.
오래 전, 교회채널을 통해 약혼자이자 동역자라고 스스로를 밝힌 생면부지의 여전도사로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고서 한 목사를 구명하려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파송교회에서 받은 선교비를 도박과 차량부품수입사업에 투자했다가 비자법 위반으로 이민국 유치장에 수감된 상태였습니다. 명백한 불법행위와 꼼짝 못할 증거들로 그는 결국 실형을 살아야 했고 차량부품이 가득 든 컨테이너들은 그를 이민국에 몰래 고발한 도박친구들의 주머니 속으로 고스란히 떨어졌습니다. 검찰에 송치되기 전 면회하러 간 나를, 목사는 오히려 한없는 의심의 눈초리로 대했습니다. 그곳엔 철창을 사이에 두고 억류된 외국인 남녀들이 이리저리 엉켜 있었고 귀퉁이엔 칸막이도 없는 구식 변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목사는 그곳에서 잠시 잠든 사이 핸드폰을 도난 당한 상태였습니다. 무법천지 아수라장이었죠. 무대 위에서 섹시함을 뽐내던 여가수 일행이 이제 그런 곳에서 밤을 지낼 참이었습니다. 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일단 어떻게든 해봅시다. 아침에 다시 통화해요.]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정사장의 명함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동업하는 거라면 정사장 역시 친구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을 터였습니다. 역량과 정보를 합치면 방법이 보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마침내 통화가 연결된 정사장의 반응은 전혀 기대와 달랐습니다.
“난 그 친구랑 연락 끊고 산 지 오래입니다. 지금 그 친구가 뭐 하는지도 몰라요. 이민국에 잡혀간 건 안된 일이지만 범법행위를 했다면 응분의 죄값을 치러야죠. 미스코리아 만이라도 무사히 귀국한 게 다행이라 생각하세요.”
등덜미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연락을 끊고 산다던 그가 미스코리아의 출국사실 같은 최신정보들을 꿰고 있었습니다. 동업한 것이 아니라면 두 사람은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었는데 뒤늦게 물량공세를 펴며 시장을 잠식해 오던 김사장에게 정사장이 극도로 배신감을 느꼈을 개연성은 충분했습니다. 난 비로소 이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감을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정사장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돕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펼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름대로 현지인맥을 자랑하는 교민들끼리의 분쟁은 많은 경우 경찰이나 이민국 직원을 매수해 우선 상대방을 다짜고짜 인신구속 하는 선제공격으로 시작하곤 합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것이죠. 김사장에게 쓴 그 카드를 정사장이 내게는 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고 내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난 접근방법을 바꿔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성기를 오래 전 지났더라도 아직 활동중인 연예인이라면 소속사가 있을 터였습니다. 그 소속사 연락처를 찾는 과정에서 그 여가수가 과거 1세대 걸그룹 출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 본국 연예계 소식에 대해 그간 너무나 무지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팀 동료들과 함께 칼군무를 추면서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녀가 험악한 이민국 유치장에서 철저한 무방비상태로 그날 밤을 보낸다는 사실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현실성이 오히려 구원의 열쇠가 될지도 모릅니다. 난 입력창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올린 사진, 우리가 좀 써도 되겠지?”
유명 뉴스채널의 자카르타 통신원으로 있던 선배가 그렇게 물어온 것은 그날 자정쯤의 일입니다. 난 저녁 내내 온 천지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연사진을 포함한 게시물을 올리며 본국 네티즌들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가 앞의 게시물들을 순식간에 덮어버려 의미 있는 반향을 불러내기엔 전혀 역부족이었습니다. 난 마지막 방편으로 통신원 선배에게도 연락을 넣었습니다. 시큰둥해 하던 그 선배가 본사 데스크에 문의한 후 갑자기 적극적으로 사진을 요구하는 것은 이게 기사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어쩌면 돈을 받고 팔아도 될 특종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사람이 살고 볼 일입니다.
인터넷 교민 커뮤니티에 올린 내 포스팅도 아침이 되자 그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유명 걸그룹 멤버였던 채은정씨 일행이 5월 7일 자카르타 남부이민국 유치장에 구금되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그날 밤 귀국할 예정이었습니다.
사뜨리오 거리 찌뿌뜨라 백화점 1층에서 열린 코리아속눈썹 홍보행사에서 공연한 현지한국학교 출신 미스코리아 류빈양을 비롯해 걸그룹 칼레노의 채은정씨, 메이크업 아티스트 써니윤씨가 공연비자가 아닌 일반 도착비자로 입국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주최측 김사장도 이민국 조사 중 체포되어 수감되었습니다.
주최측에 분명한 귀책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사건을 무마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류빈양은 사건 전날인 6일 밤 귀국해 자칫 현직 미스코리아가 이민국에 억류되는 초유의 사태를 모면했습니다. 호텔 측은 7일 저녁부터 한국 대사관 핫라인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꼭 이럴 때마다 대사관 전화가 내내 불통인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주최측의 실수로 위기에 처한 한국여성들이 아무쪼록 오늘 밤 이민국 유치장에서 험한 일 겪지 않기를 기도하며 혹시 대사관 관계자께서 이 글을 읽는다면 호텔 매니저 미스 헬렌에게 경과와 상황을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한 시가 급합니다!
그러나 다음날인 5월 8일 아침까지도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걸그룹 시절의 여가수를 기억하는 교민들이 내 포스팅을 읽고 안타까운 마음에 청와대며, 인권위원회와 외교부 홈페이지로 내달리는 동안, 정작 현지 대사관 핫라인은 내내 불통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같은 내용의 민원을 대사관에 이메일로 반복해 보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호치민행 비행기표는 결국 새로 사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수수료를 물면서 이틀 뒤 일정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의미 없는 희생이 될 게 뻔했습니다.
[지금 아침식사 배달하러 이민국 가는 중이에요. 밤새 진전 있었어요?]
헬렌도 오래 전 남편의 지인이 장기 불법체류로 체포되어 벌금을 물고 추방될 때 공항 억류시설을 방문하며 돌봐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임신 중이던 그녀에겐 분명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었을 텐데 호텔이 손을 뗀 후에도 그녀는 억척스럽게 여가수 일행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여성이라는 연대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아들과 반쯤은 동포인 한국인들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아직 대사관과 전화통화가 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 통신원 선배라는 분은요?]
[한국엔 기사를 보낸 것 같은데 대사관과 연락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 잠깐만요.]
헬렌의 카톡이 멈췄습니다. 그녀의 운전 중 카톡 교신장면은 분명 곡예에 가까웠을 터라 사고가 난 건 아닐까 걱정되던 찰라 헬렌의 멘션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어요. 영사님이 오늘 이민국에 가신데요.]
[헐!]
영영 전화불통이던 대사관이 헬렌에게 전화한 것은 십중팔구 내 포스팅을 읽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단번에 영사를 움직일 만큼 위력적일 리 없었으므로 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무튼 이제야 계획대로 가는 거네요 난 빨리 여자들한테 소식 전하러 갈게요.]
헬렌은 활짝 웃는 이모티콘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난 누가 대사관의 등을 떠밀었는지 이내 알 수 있었습니다. 통신원 선배의 뉴스채널이 여가수의 구금기사를 처음 내놓자 이를 받아 쓴 한글기사 백여 개가 댓글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본국 인터넷 포탈에 범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가수는 아직도 많은 팬에게 사랑 받고 있었습니다. 본국 팬들의 문의와 질타가 소속사와 매체, 그리고 관련 관청에 아침부터 빗발쳤습니다. 그녀는 이민국 유치장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참담한 처지를 비통해 했겠지만 사실은 그녀 스스로의 존재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김사장을 구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영사가 직접 찾아간다면 절대 빈 손으로 돌아올 리 없습니다.
헬렌은 이번엔 해물볶음밥을 들고 이민국에 점심배달을 갔다가 뜻밖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던 면회를 거절당한 것입니다. 영사 방문이 불발했거나 뭔가 예기치 못한 다른 문제가 생겨 상황이 악화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오후 네 시 정각 반가운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여자들이 다시 호텔로 돌아왔어요.]
헬렌이 이민국에 갔을 때 영사가 면회 중이었던 것입니다. 외교관의 방문이란 그렇게 중량감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만? 김사장은요?]
[얘기 듣지 못했어요.]
[아무도 김사장 걱정은 하지 않는군.]
그러다가 그날 저녁 날아든 이메일에 난 깜짝 놀랐습니다. 발신인은 대사관이었습니다.
보낸사람: 인니(대)
날짜: 2014년 5월 8일
목요일, 19시 48분
19초 +0900
제목: [RE]도움 요청 – 여가수 채은정씨
이민국 구금
안녕하십니까.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입니다.
메일로 도움 요청한 사건은 당관이 어제 오후부터 지속적으로 주시하던 것으로 금일 오전 총영사 및 담당영사가 이민국 관계당국자 면담을 통해, 16시경 최종적으로 구금되었던 한국인 3명을 석방하고 출퇴근 조사토록 조정했습니다. 다만, 이민국 조사가 아직 완료되지 않아 출국일정은 미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끝.
석방된 한국인이 세 명이니 김사장도 포함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지고 볶지 않았어도 알아서 처리하려던 참이었다는 논조에는 실소가 터졌습니다. 교민민생에 관해선 대체로 불통의 담을 쌓았던 대사관이 전날 오후부터 도대체 무슨 수로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겠죠. 하지만 접수민원에 대해 이례적으로 경과보고를 해준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여가수 일행의 석방은 자국민보호라는 대사관 본연의 기능이 효과적으로 발동되어 일궈낸 성과였으므로 나 역시 네티즌들과 함께 갈채를 보내며 환호했습니다. 이제 헬렌은 치과에 갈 수 있게 되었고 나도 비로소 출장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난 며칠간 내가 이민국과 대사관에 물밑작업 한 거 모르죠? 오늘 김사장 일행 전부 빼냈어요. 쉽지 않았어요. 내 인맥 다 동원하고 돈도 엄청 썼어요. 못 믿겠으면 영사님께 직접 물어 보세요.”
그날 밤 늦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온 정사장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일반인이라면 영사에게 절대 그런 질문을 할 수 없으리라 믿으며 그는 사건해결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물론 그는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리 없습니다.
“그걸 왜 나한테 설명하는지 모르겠네요. 김사장한테 직접 얘기하거나 인터넷에 글로 올리면 될 텐데.”
“어제 당신하고 통화한 게 있으니 오해를 풀려는 것 아니오? 내가 말은 그리 했어도 고향친구를 외면할 리 없잖아요?”
이번 사건으로 실형을 살거나 최소한 추방당할 거라 믿었던 김사장이 유유히 걸어 나오자 정사장이 크게 당황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는 반격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김사장이 내막을 눈치챘다면 가만 있을 리 없었으니까요. 그는 씨알도 먹힐 리 없는 그런 해명을 제3자인 내 입을 빌어 김사장에게 전하면서, 동시에 어제 내게 바닥을 드러낸 자신의 민낯도 내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었겠죠. 그는 나를 허수아비 핫바지로 보았습니다.
“뭐, 그러셨겠죠. 수고했어요.”
여가수 일행을 도우려 했던 것이지 배후의 교사범을 잡으려 했던 게 아니었으므로 굳이 정사장과 진실게임을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잘 모르는 듯, 속아넘어가는 듯 어수룩하게 살아가는 것은 문제와 분쟁을 피하는 쉬운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나를 핫바지로 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날인 5월 9일 저녁 마그립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지질 때, 헬렌은 여가수 일행의 출국허가가 났음을 알려 왔습니다. 그 결정을 얻기 위해 여가수의 소속사나 주최측 김사장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두 한국여성이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무혐의처분을 받은 여가수 일행과는 달리 김사장은 비자법과 노동법 위반으로 추방이 결정되었습니다. 여가수 일행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추방되는 김사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가수의 소속사는 팬들에게 심려 끼쳤음을 사과하면서 ‘한국대사관의 영사님들, 현지교민과 현지언론 등 도움주신 많은 분들께 대신 감사말씀 전한다’며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난 호치민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와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난 어쨌든 ‘현지교민’이란 집단명사에 대충 뭉뚱그려져 소속사의 감사를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동분서주했던 헬렌에게는 그 누구도 감사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여가수가 고맙다고 해요?]
[그럴 경황이나 있겠어요?]
헬렌은 여가수 일행이 출발하던 9일 밤 카톡 교신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절박함에 내몰렸던 당사자들에겐 물밑에서 움직이던 나나 헬렌, 그리고 교민들의 손길이 보였을 리 없었습니다.
[한국사람들 참 대단하단 생각 들어요.]
[?]
[자국 여성들 돕겠다고 그렇게들 나서 주니 말이에요. 부러워요.]
그 말에 난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만약 여가수마저 먼저 탈출하고 무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만 구금되었다면 과연 대사관과 네티즌들이 그렇게까지 나서 주었을까요? 일이 원만히 해결된 것은 아름다운 여가수가 사건의 중심에 있어 네티즌들의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스코리아가 억류되었다면 영사가 아니라 대통령까지 나섰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배 나온 중년남성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그런 원조와 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현지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나온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은 그런 비정한 현실을 반증합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합니다.
비행기에 탑승한 나는 창가에 앉아, 지금쯤 한 숨 돌리고 있을 정사장을 떠올렸습니다. 김사장은 추방명령을 받고 시간에 쫓겨 짐 싸기 급급했겠죠. 하지만 연말쯤이면 다시 자카르타에 돌아와 성형모객 사업을 재개하면서 경찰이나 이민국 직원을 매수해 정사장에게 보낼지도 모릅니다. 추방형이란 입국금지기한이 정해져 있고 보석이나 가석방처럼 그 기한을 단축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으니 말입니다. 김사장의 패자부활전과 정사장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나도 이제 호치민에서 패자부활전을 치러야 합니다. 인생의 패배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미스코리아와 여가수가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친 것이 사실이고 놀라운 성취를 이룬 수많은 영웅들이 자서전을 펴내며 영광의 팡파르를 울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치이고 밟히고 넘어져버린 패배자들이 온천지에 넘쳐나는 것은 딱히 놀랄 일도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모세와 여호수아들이 유태민족을 광야로 이끌고 나올 때, 하필이면 난 줄곧 패배자 쪽에서 추락을 거듭해 급기야 블레셋과 아말렉 족속이 되었다가 마침내 허수아비 핫바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생업의 활로를 찾아 패자부활전의 칼을 갈아야 할 시기에 누굴 돕겠다고 나선 것은 분명 주제넘은 짓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난 헛웃음을 흘렸습니다.
기내방송 지시에 따라 핸드폰을 끄려 할 때 헬렌의 카톡멘션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헬렌과도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또 다시 오랫동안 서로의 안부도 모른 채 지내게 되겠죠.
[여가수가 내 이름을 잊어도 난 당신의 선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생각해 보면 여가수 일행이 비탄에 잠겼던 그날 밤, 그들에게 탈출구가 열린 것은 천사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백화점 로비에서 장난스럽게 웃던 헬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헬렌은 옷 안에 날개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다음 멘션이 들어왔습니다. 한국사람들만 쓰는 그 표현은 주먹을 불끈 쥔 이모티콘과 함께였습니다.
[파이팅!]
활주로를 날아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난 크게 위로 받은 듯 푸근한 마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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