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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도 차관이 있을까?

beautician 2023. 5. 15. 11:38

인도네시아 청년체육부 조직

 

인도네시아 정부부처들엔 당연히 장관들이 있고 이들을 먼뜨리(Menteri)라 부른다.

영어로 Minister라 번역하는 거 보면 장관 맞다.

 

차관은 와낄 먼뜨리(Wakil Menteri)다. 와낄(Wakil)은 대신하는 사람, 한단계 낮은 직책 등의 의미다.

부통령, 부사장(Wakil President) 등에도 사용되는 단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부처는 한국과 달리 모든 부처에 장관 말고 그 밑에 차관-차관보 식의 직제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인도네시아 정부 관련 기사 번역한 것들을 보면 직책에 대한 의미가 좀 애매하게 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차관 및의  직급은 데퓨티(Deputi)다. 차관 밑이니 차관보인 셈인데 차관보란 차관의 보좌관이란 뜻인 만큼 차관이 없는 부처에서는 데퓨티를 차관보로 번역하긴 어렵다. 그래서 데퓨티를 차관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데퓨티는 사실상 해당 부처의 업무를 크게 분류해 그 중 한 부분을 관장하는 역할이므로 기업으로 치면  '사업본부장' 또는 계열사 사장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한 부처에 차관이 1명 있는 게 보통인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 특정 정부부처의 데퓨티들은 여러 명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투자청(BKPM)에서 장관부처로 승격된 투자부에는 데퓨티가 8명 쯤 있다.

 

데퓨티와 차관의 결정적인 차이는 많은 경우 정치인이나 외부인을 데려와 앉히는 식이 아니라 해당 부처에서 잔뼈가 굵어 승진한 사람들이란 점이다. 이들은 '에셀론 I'(eselon I)이라는 직급을 구성하는데 말하자면 1급 공무원이다. 하지만 eselon I을 1급 공무원으로 번역하는 것도 번역 편의상 그런 것이지 인도네시아의 eselon I과 한국의 1급 공무원 위상과 업무 등을 등치하기는 어렵다. 번역된 직책의 이름이 같다고 해서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데퓨티 밑으로는 디렉뚜르 젠드랄(Direktur Jendral)과 디렉뚜르가 있다.

 

디렉뚜르, 즉 디렉터는 국장으로 번역되고 디렉뚜르 젠드랄은 그 윗 직급인데 청장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국세청장이 재무부의 디렉뚜르 젠드랄이다. 하지만 별도의 청을 담당하지 않으면서도 디렉뚜르 젠드랄이란 직책을 가지고 한 부서를 운영하는 이들도 있어 '국장'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디렉뚜르와 디렉뚜르 젠드랄은 분명한 직급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둘 모두 공무원 위계표시에서는 에셀론 II(eselon II)에 속한다.

 

데퓨티, 디렉뚜르 젠드랄, 디렉뚜르들은 해당 부처에서 엄선된 인원들이고 장관, 나아가서는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승진하는 이들이다. 부패가 창궐한 인도네시아에서 부패하지 않은 공무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장관과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그나마 청렴하고 사회-정치-경제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적은 이들을 이 지위에 발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가장 활발하게 부정부패 사고를 치는 공무원들은  에셀론 III 이하의 직급들인 경우가 많다.

올해 아들이 부를 과시하며 같은 또래의 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혼수상태로 만들어 버린 일로 인해 비리가 드러나 결국 재무부와 인도네시아 공직사회 전체에 비대한 부를 가진 공무원들을 색출해 재산형성과정을 들여다 보게 만든 국세청 총무부장 라파엘 알룬 뜨리삼보도 같은 이가 에셀론 III다.

 

에셀론 III는 현지 기사에서도 '중견 공무원'이라고 표현한다. 군대로 치자면 중령이나 대령급. 결국 에셀론 II 이상으로 올라가야 장성급이란  뜻이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국무부의 차관 체계는 조금 특이하다.

국무부는 Sekretariat Negara라고 하므로 '국가사무처'라고도 번역하는데 대통령 최측근이 장관을 맡아 '장관 중의 장관'이라 불린다는 점에서 미국의 국무장관, 한국의 총리 직책에 가깝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부처에는 일반 장관들 외에 여러 장관부처들 몇군데를 통합 관리하는 '조정장관'이란 직책이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정권 실세로 알려져 있어 국무장관을 '장관 중의 장관'이라 하는 것은 사실 좀 어폐가 있다.

인도네시아 조코위 정권 조정장관들, 마흐푸드 MD, 루훗 빤자이탄, 아이를랑가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장 출신 마흐푸드 MD 정치사법치안조정장관, 군 장성 출신이자 조코위 대통령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던 루훗 빈사르 빤자이탄 해양투자조정장관, 현 정권의 연정에 참여한 핵심 정당인 골카르당 당대표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 경제조정장관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실세 조정장관들이다. 이들 부처의 데퓨티나 국장들 위세도 대단하다.

 

국무부에는 세스멘(Sesmen)이란 직책이 있다. 세끄레따리스 먼뜨리(Sekretaris Menteris), 즉 장관 비서실장이란 뜻이지만 현 쁘라띡노 국무장관이 조코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가운데 부처 실무를 실제로 관장하고 있는 이가 바로 이 세스멘이다.

 

이분도 에셀론 I. 따라서 원래 단어의 뜻보다 하는 일을 감안해 '차관'으로 번역한다.

 

이런 식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부처의 '차관', '국장' 급 공무원들의 위상은 한국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국무부 세스멘 스티아 우타마 차관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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