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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메이네 영화보러 가는 날

beautician 2022. 12. 5. 21:01

 

2022년 11월 6일(일)

<블랙 아담> 보러 간 메이네 가족.

 

 

원래는 평일인 11월 3일(목)이나 4일(금) 영화를 보러가라 했지만 메이네는 결국 6일(일)에 <블랙아담>을 보러 갔다. 평일날 아르타가딩에 가서 보라 한 것은 평일 티켓 가격이 그곳은 3만 5천 루피아(약 3천원)이지만 주말에 끌라빠가딩 몰에서 보면 최대 8만5천 루피아(약 8천원)까지 내야 하므로 4인 가족이 볼 때 큰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가 주중엔 퇴근이 늦으니 가족들이 함께 보려면 주말시간이 더 적합하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는 바다. 더욱이 메이의 어머니, 즉 마마 티티(mama Titi)가 함께 가려면 메이가 있어야 한다. 마마 티티는 신분증 검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나보다 몇 년 어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호호 할머니가 되어 있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서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말을 듣고 힘든 인생을 살아온 마마티티에게 아이들 영화볼 때 함께 가서 영화보는 정도의 배려는 해줄 수 있어야 하겠다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데 토요일에 영화보러 갈 줄 알았던 아이들은 일정이 일요일로 밀렸다고 알려왔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메이는 토요일에 갑자기 미용실에 미용가위를 배달하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난 잠시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 미용실에서 미용가위를 요청한 게 대략 2-3개월 전. 수량이 적어 내가 중국에서 수입해 주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미 빠사르바루 도매시장에 들어와 있는 한국 가위를 메이가 구매대행 해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미용실이 직접 메이와 거래하도록 매칭시켜 놓은지 오래. 가위 공급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어야 하는 일인데 지난 토요일 또 배달을 한다는 것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 미용실에서도 카톡이 들어왔다. 메이한테 수고비를 얼마 주면 좋겠냐고 묻는데 왜 일은 메이에게 시키고 수고비를 나에게 묻는지 모르겠다. 난 거기에 대한 권리가 없으니 메이에게 직접 얘기해 보라 했더니 미용실 측에선 이렇게 말한다.

 

"100만 루피아 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솔직히 기가 찼다.

몇 개월간 심부름을 시키면서 아직 수고비를 한 푼도 치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제 아마 막판인 모양인데 100만 루피아라면 3개월로 나누어 한달에 33만 루피아, 약 3만원도 안되는 돈. 여섯 번 심부름을 하며 미용가위를 구매대행하고 가위에 문제가 있다하여 중간에서 품질문제를 해결해 준 친구한테 대략 8만원 쯤 수고비를 주겠다는 거다. 여섯 번 오가며 든 메이의 택시비만 해도 100만 루피아쯤 되는 상황인데 말이다.

 

"미리 수고비를 정하지 않았던 건가요>"

"메이가 아무 말도 없던데요?"

 

여기서 화가 터졌다. 물론 상대방에게 화를 내진 않았다. 거기서 대화를 중단했을 뿐이다. 

어린 현지인, 그것도 내가 소개해 준 친구를 쓰면서 날 존중한다면 초장에 미리 조건을 정해 서로 나중에 섭섭함이나 애매함이 없도록 했어야 했을 터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메이가 아무 말 없어 아무런 조건도 정하지 않았고 이제 딜이 끝나는 시점에서 100만 루피아만 줄 테니 나한테 동의하라는 것이다.

 

"300만 루피아 달라고 해! 그리고 넌 왜 일을 할 때 미리 조건도 정하지 않고 일부터 해주는 거야? 그러다 떼인 게 한 두번이야? 왜 일을 그따위로 하냐고! 돈 받아내! 그건 네 자존심이자 내 자존심이기도 해. 그 돈 못받으면 나한테 연락도 하지 마!"

 

메이한테 그렇게 소리쳐 댔지만 차차, 마르셀을 만나고 밥 같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난 내가 메이네 집이랑 그런 일로 등질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 상황이 너무 속상했다. 물론 메이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는 바 아니다.

 

"미스터르 친구잖아요. 내가 돈 얘기 하면 나중에 미스터르가 나쁜 얘기 들을까봐 그랬어요."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난 메이가 좀 더 야무지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곤 한다.

아무튼 그 토요일 나한테 그 소리를 듣고 미용실에 마지막 가위 배달을 간 메이는 내가 소리친 대로 300만 루피아 즉 25만원 정도를 달라고 했던 모양이고 그 자리에서 받지는 못했지만 몇 시간 후 해당 금액을 송금받았다고 내게 알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메이가 가족들을 데리고 끌라빠가딩 몰에 영화보러 간 것이다.

 

난 평일 4인 가족이 영화를 보고 저녁 먹을 정도의 비용을 미리 차차 손에 쥐어준 상태였다. 하지만 메이는 300만 루피아가 생겼으니 좀 비싼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밥도 좀 비싼 걸 먹기로 했던 모양이다. 뭐,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잘 못하는 것이긴 하지만 당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줄 수 있고 날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속상하지 않게 만드는 거다.

 

 

2022.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