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딸 결혼식 참석하러 출국하는 아침 본문
2년반 늦어진 딸 결혼식 위해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아침.
사람 계획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고 기약하기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는 시간.
계획대로였다면 2020년 4월에 싱가포르에서 조촐한, 그러나 사뭇 국제적인 행사가 될 터였다.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날아가는 것 말고도 한국에서도 본가와 처가에서 여러 명이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 될 예정이었고 당연히 그들을 위해 결혼식 이외의 시간계획이 세워져야 했다. 그래서 원래는 좀 더 북적거리고 흥청거렸을 딸의 결혼식.
하지만 3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은 그 계획을 모두 무산시켰고 딸도 싱가포르에서 해두었던 모든 예약을 몇 차례 연기한 끝에 결국 취소하고 계획보다 1년 후인 2021년 4월에 오빠와 시동생 부부 등 간촐한 증인들과 함께 싱가포르 당국에 혼인신고를 하는 것으로 일단의 절차를 마쳤다. 양가 부모들조차 참석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난 딸 부부를 만날 수 없었다. 그 후 처음 만난 것이 지난 2022년 6월 말 발리에서였다. 이번 결혼식을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두 번째 웨딩화보를 찍으러 발리에 오는 길에 우리 부부도 함께 일주일을 함께 지난 거다.
혼인신고 후 다시 1년반이 지나서야 이제 사돈 측에서 절반의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식 전통에 따라 손님접대 위주의 피로연 방식. 기본은 토요일 아침으로 계획된 티 세레머니(Tea Ceremony). 그런 다음 그날 저녁 피로연 본행사. 우린 사돈댁 행사에 신부 부모로 가는 것인데 어차피 대접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행사가 되도록 돕겠다는 마음이니 일정은 사돈댁에 다 맡기기로 했다.
아마 우리도 서울이나 자카르타에서 이런 식의 피로연을 몇 개월 후 갖게 될 것이다.
자카르타 출발 전 공항게이트 앞에 앉아 사돈에게 무슨 선물을 들고 가야 할지 잠시 고민하면서 생각나는 짧은 소회는 역시 계획과 전혀 달리 전개되는 삶은 다이내믹해서 좋은 건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 늘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지 하는 생각 사이를 오갔지만 결국 그게 어차피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측면에서 굳이 가치판단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돈어른에게 줄 선물을 대신 골라보라고 했더니 사위가 500불짜리 헤네시 코냑을 샀다고 한다. 딸은 시어머니에게 드릴 설화수 화장품. 그 정도면 좋다 싶었다.
마침 KL행 GA820 가루다 항공기 게이트가 열렸다.
2022. 10. 13 아침
수카르노-하타 공항 제3터미널 9번 게이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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