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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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표시 오류

beautician 2022. 10. 21. 11:37

수라바야의 호텔은 5성급이었는데 욕실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욕조 샤워기
이 부분

욕조 샤워기의 저 표시를 보면 아랫쪽이 빨간 색. 그러니 아래로 돌려야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얘기죠.

하지만 밑으로 끝까지 돌려 아무리 오래 물을 틀어 놓아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방을 바꿔달라 할까 생각하다가 호텔 측에 샤워기가 고장인지 살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직원이 올라오더니 샤워기를 보지도 않고 나에게 설명을 시작합니다.

 

"저게 원래 위로 올려야 뜨거운 물이 나오거든요. 이거 보세요."

 

정말로 저 손잡이를 반대방향, 즉 차가운 물이 나온다고 표시된 쪽으로 돌리니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이런 문의를 해옵니다. 저거 만든 사람이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고장은 아니에요."

 

기가 찼지만 직원이 돌아간 후 곰곰히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자신은 관대하고 공정하고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 없다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건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이면서 여기 눌러 봐, 내가 이렇게 반응할 거고 저길 누르면 내가 저렇게 반응할 거야....이렇게 말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자각을 살짝 잊는 순간 뜨거운 물이 나올 거라 믿고 버튼을 눌렀더니 똥물이 쏟아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그 놈이 거기 왜 그런 스티커를 붙여놓았는지 몰라도 그것도 사실 고장은 아닙니다.

 

 

2022.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