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새벽 공감 본문
새벽에 눈을 뜨면 더 이상 다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몇 주 정도 계속됩니다.
이른바 새벽잠이 없어지는 나이가 된 겁니다.
이건 아마도 이번에 어머니 상을 치르면서 오랜만에 간 한국에서 익숙치 않은 본가나 처가에 머무는 동안 조금 더 심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 경부터, 때로는 그보다 한 시간 정도 빠른 4시쯤부터 시작하게 된 하루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물론 힘든 점은 아마도 물리적, 산술적으로 정해져 있을 적정 수면을 취하지 못했으니 어느 시점에서 체력저하와 졸음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낮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필요하면 한 두 시간 잠을 잘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기며 뭔가 보고서나 원고를 생산해 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낮시간을 졸면서 보내긴 마음편치 않은 일입니다.
좋은 점은 하루가 길어졌다는 것이죠, 특히 평소라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업무량을 오전 시간에 쳐낼 수 있게 됩니다. 기사 한 개 번역하기 어려웠던 오전시간에 기사 세 개쯤 번역하면서 이메일을 쓰거나 거래선과 전화나 문자로 이야기하는 업무들을 모두 해치우곤 합니다. 그러니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 오늘 내가 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럼 10분쯤 뒤척이며 일어날 준비를 한 후 침대에서 빠져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죠.
작가에게는 좋은 일일까요?
전날 밤 12시 전후에 잠이 든다면 새벽 4-5시 기상이 그리 힘든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할머니, 노교수님, 선인들 생각이 납니다.
그들이 새벽을 달린 것은 어쩌면 부지런해서라기 보다는 생리적인 결과물이었던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이나 신앙심 좋은 분들이 쓴 책이나 칼럼에 '새벽을 여는 기도', '새벽 묵상'처럼 새벽에 뭔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걸 떠올리며 다 그게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는 게 억울했던 걸까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의 나이든 담임목사들이 새벽기도회를 강조하면서 젊은 전도사, 협동목사들과 어린 신도들을 고문하는 것이겠죠. 젊은 사람들 잠 좀 자게 놔둡시다.
그러고 보니 새벽마다 날아오던 유익한 카톡들도 기억납니다.
새벽 4-5시 사이에 성경말씀을 보내주고, 책에서 읽은 좋은 사연, 명언, 심지어 멋진 풍경사진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때문에 카톡 소리를 죽이거나 잠자기 전 핸드폰을 꺼야만 숙면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한지 한참 후에야 들어오기 시작하는 그 성경구절과 명언과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저 인간들이 나랑 별로 다를 바가 없구나', 또는 '나도 이제 저 인간들 세계에 들어서고 말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나다. '커가면서'가 아니라 '나이가 많이 들고 나서도' 뭔가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자꾸 생깁니다.
오늘도 랩톱 작업을 시작할 즈음 새벽 4시경 긴 성경구절을 보내온 한 어르신의 카톡을 보면서 어딘가 짠한 마음이 생기며 단톡방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정성을 들여 지인들 하나하나에게 그 시간에 따로 문자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짠한 마음은 그분보다는 아마 나 자신에게 77.8% 정도 향했던 것 같고요.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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