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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옛날 거대한 호수였던 반둥 지역

beautician 2022. 8. 18. 11:52

반둥 지명의 유래

 

 

옛날옛적 찌따룸(Citarum) 강변 빠순단 땅에 세상 이치에 통달하고 만드라구나 삭티(ilmu sakti mandraguna) 도술을 익힌 음뿌 위스사(Empu Wisesa)라는 이름의 도인이 극강의 미모를 지닌 딸 스까르(Sekar)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자카(Jaka)와 위라(Wira)라는 두 명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땅꾸반뻐라후 화산 폭발과 용암분출로 완전히 파괴된 한 마을에서 부모를 잃은 두 아이를 음뿌 위스사가 거두어 키운 것인데 땅꾸반뻐라후 일대에는 현대에도 지진이 빈발하고 가장 최근엔 2019년 6월에도 한 차례 분화했습니다.

 

자카와 위라는 같은 스승에서 똑같이 배우고 있지만 실력이나 외모의 차이가 상당히 났습니다. 둘 중 자카는 잘 생기고 노는 걸 좋아하는 영리한 아이였고 위라는 우직하고 근면하며 지식과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학구적인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나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는 마치 형제처럼 서로 돕고 비밀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서로 말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승의 딸 스까르에게 느끼는 그들의 감정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스까르를 두고 물밑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위라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이 자카가 한 발 앞서 음뿌 위스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청혼을 넣었습니다. 그의 언변에 마음을 홀딱 뺏긴 스승은 딸에게 묻지도 않고 곧바로 자카의 청혼을 승락했습니다. 그는 호감 넘치는 자카를 스까르도 반드시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음날 음뿌 위스사은 스까르를 불러 자카와 혼인시키겠다는 계획을 알렸습니다. 부모의 말이라면 늘 순종했던 스까르였기에 당연히 따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스까르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의사에 반대를 표했습니다. 그녀는 위라를 사랑하므로 위라가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스까르가 남몰래 위라를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음뿌 위스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자카에겐 이미 약조를 한 상태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공정해야 했으므로 결국 두 사람이 경쟁을 하게 만드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음뿌 위스사는 자카와 위라를 불러 놓고 땅꾸반뻐라후 산의 뜨거운 용암을 식힐 수 있는 사람에게 스까르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걸 꼭 공정한 경쟁이라 하긴 어려웠습니다. 음뿌 위스사는 자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에게 유리한 판을 짜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떠밀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정하지만 자카가 위라에게 절대 질 수 없는, 즉 자카도 위라도,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진 것입니다.

 

자카는 불가능한 주문이라 여기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수백 년째 끓어 넘치고 있던 땅꾸반뻐라후 화산의 용암을 식히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게 가능했다면 과거 자신과 위라가 화산폭발로 쏟아져 나온 용암에 부모와 친지들을 모두 잃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미 딸을 주기로 약속한 음뿌 위스사는 약속을 번복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스승 앞에선 분을 간신히 참으며 경쟁을 받아들였지만 거대한 화산의 용암을 식힐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낙담에 빠져 마을로 내려가 술을 퍼먹고 다른 여자들과 노닥거리며 시간만 축냈습니다. 될 데로 되라는 마음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한편 위라는 모든 생각과 노력을 쥐어짜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했습니다. 그는 매일 땅꾸반뻐라후 화산의 드넓은 분화구를 돌아다니면서 용암을 식힐 물을 어떻게 끌어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우기에 매일 한 시간씩 쏟아붓는 장대비로도 어쩌지 못한 화산의 용암을 모두 식히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일년이 지나도록 그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뭇가지들을 모아 둑을 만드는 강가의 수달들을 보고 불현듯 영감을 얻었습니다. 찌타룸 강을 막아 물길을 화산으로 끌어와 용암을 식히는 방법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위라는 모든 계산을 마치고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화산 분지에 사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그들이 살던 곳은 물 속에 잠길 터였으니까요. 그런 다음 음뿌 위스사로부터 사사받은 도술을 이용해 손으로 산을 한 개 떠 와 찌따룸 강의 물길을 막았습니다. 그러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거대한 분화구 분지까지 강물이 뒤덮자 마침내 용암이 식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호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반둥 호수(Danau Bandung)’라 불렀습니다. 반둥은 ‘둑’이란 의미의 번둥안(Bendungan)에서 온 말입니다. 둑을 쌓아 만든 호수란 뜻이죠.

 

음뿌 위스사가 낸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낸 위라는 이제 스승에게 돌아가 스까르를 달라며 청혼을 했습니다. 자신의 제자가 화산의 용암으로 인해 벌어질 수도 미래의 재앙을 미리 예방했고 그 노력 자체가 자기 딸 스까르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음뿌 위스사는 기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혼인하면서 그 일대의 모든 주민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위라가 미션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낙담하여 그곳을 떠나버린 자카의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위라와 스까르는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또 많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세대가 교체되며 세월이 흐르는 사이 위라가 산을 옮겨와 만든 둑은 물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호수의 물이 모두 빠져나간 땅꾸반뻐라후 화산 인근 지역에 비옥한 땅이 드러났습니다.

 

위라와 스까르의 후손들은 그곳으로 옮겨가 살게 되었고 예전에 그곳에 살았던 이웃주민들의 후손들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권유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후 그곳은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될 즈음ㅇㄴ 옛날 화산을 식혔던 거대한 호수도 더 이상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옛날에 있던 호수를 잊지 않고 그 지역을 ‘반둥’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가 되었지만 전승에 따르면 그곳 원주민들은 모두 위라와 스까르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 위라가 만든 둑도, 그래서 형성된 호수도 이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둑’이란 의미를 담은 반둥이란 지명이 서부자바 고지대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곳에 예전 위라가 만들었던 거대한 둑과 호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전설대로라면 빠다라랑(Padalarang)에서 찌짤렝카(Cicalengka)를 잇는 30킬로미터 구간부터 땅꾸반뻐라후와 소레앙(Soreang) 지역을 잇는 50킬로미터 구간까지가 예전에 번둥안, 즉 반둥호수였다고 합니다.

 

 

반둥호수 상상도

 

 

출처:

https://histori.id/legenda-asal-mula-nama-kota-band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