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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이 만드는 인도네시아 귀신 드라마

beautician 2022. 7. 21. 11:18

간조로 물이 빠진 마야 리조트 앞 해변

발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사누르 마야 리조트 호텔에서 금요일 새벽 일찍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자카르타로 돌아가아 하는 시간.

이날 영화인들에게 인도네시아 역사문화 강의를 하는 일정이 없었다면 토요일인 다음날 아내와 함께 비행기를 탔고 돌아왔을 것이다. 하루를 앞당긴 귀임이라 어쩌면 큰 차이 없는 일이었지만 다음날은 내 생일. 내 딸은 발리 일정을 계획할 당시 처음부터 발리에서 내 생일축하를 하려 계획했던 것이지만 아쉽게도 정작 내 생일에 난 아내와 딸 부부를 놔두고 자카르타에 돌아와 있게 되었다.

물론 한국손님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인도네시아 일정을 잡을 떄 내 일정은 그들의 고려사항이 아니었고 내가 하필 그 시기에 발리에 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정과  내 일정이 공교롭게도 정확히 겹쳤다. 그들은 금요일 귀국. 그래서 강연시간을 늦출 수도 없었다.

어차피 발리 일정이나 내 생일과 관계없이 삶은 계속되는 것이고 보수를 받는 강연일정은 가능하면 걸러서는 안된다. 당장의 강연료뿐 아니라 어쩌면 앞으로의 일거리와 관련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경험으로도, 경력으로도 분명히 도움이 될 터다.

인도네시아 무속설화를 바탕으로 OTT용 드라마를 제작하겠다는 현지 한국영화사가 초청해 들어온 감독, 작가 등 영화인들을 위한 시간. 8개월 전 소나무시네 김감독이 해당 영화 시나리오 작업 참여를 제안한 적 있었는데 후속 이야기 진행이 없다가 갑자기 강연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현지 교민사회나 귀국자들은 물론 본국의 인도네시아 관련 학자들을 통틀어 현지 무속과 귀신 관련 전설과 문화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므로 난 이 사람들 출장목적에 딱 부합하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영화작업에 참여하게 될지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내가 딸이 준비한 발리 일정을 중간에 끊고 돌아와 강연을 한다는 것은 딸 노력을 얼마간 무산시키는 것 같아 비행기에서 내내 일말의 죄책감을 달래야 했다.

늘 마감에 시달리다보니 발리 출장 직전엔 출판진흥원 6월 보고서를 송고한 후 플라즈마 에어게이트의 허가등록절차 보고서를 보냈다. 결국 강연자료는 오롯이 발리 일정 중 준비해야 했다. 거의 매일 저녁시간에 원고와 PPT를 준비하여 A4 30장 분량을 마친 것이 자카르타 귀임 하루 전. 솔직히 내가 그 정도의 자료를 내 머리 속과 블로그에 축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래도 2015년 이후 나름 수많은 출처의 자료들을 조사하고 번역한 경력이 벌써 8년 차인데 어쩌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순델볼롱이 인도네시아에서도 특정 귀신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는 점에서 큰 문제 없어보이지만 그 말 뜻이 '구멍난 창녀'라는 점에서 그 이름을 드라마 제목에 곧바로 사용하는 건 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한 콘텐츠라면 별 문제 없을 듯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콘텐츠 제작을 할 때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은 SARA 규정을 준수하느냐, 신성모독으로 오해받을 만한 소지는 없는가 하는 것 정도다. 

특정 종류의 귀신을 칭하는 것으로 알려진 순델볼롱이 사실은 수많은 꾼띨아낙들 중 특정개체를 지칭하는 말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정 개체를 말할 경우 13세기 드막왕국에서 발생한 순델볼롱이 어떻게 현재에 존속하는지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한 설정과 적절한 설명도 필요하다. 결국 꾼띨아낙 특정개체의 캐릭터와 관련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창작해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발리 휴가를 중간에 돌아와 딸에게 실망을 안긴 민큼 이번 강연은 반드시 내실있고 의미 깊은 것이어야 했다.

 

오전 9시20분 비행기가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짐을 찾아 택시 타고 MOI 집에 도착하니  벌써 10시반, PPT 작동이 잘 되는지 확인하고 해당 파일의 바로가기 아이콘을 윈도우 바탕화면에 뽑아 놓은 다음 PPT를 넒기고 화면을 지적하는 포인터를 찾아 작동확인. 그런 절차를 마치자 곧바로 강연미팅 출발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의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한 강연이 꽤 유익하고 재미있었다는 영화인들 반응.

다행히 발리에서 매일 작업한 노력과 딸을 조금 실망시킨 조기 귀임이 어느 정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2022.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