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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역사-문화 및 영화산업 개요 (2/3)

beautician 2022. 7. 19. 10:51

인도네시아 역사-문화 및 영화산업 개요

2022. 7. 1.(금)

 

 

 

2. 인도네시아의 민속과 무속

 

1) 정치-사회적 다양성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시대를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설립년도부터 계산하곤 하는데 당시 실제로 VOC가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던 지역이 인도네시아에 이미 있었지만 19세기 후반까지도 수마트라 북부 아쩨지역과 발리에서 여전히 정복전쟁이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인도네시아 전 영토가 네덜란드에 복속된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경입니다. 그렇게 보면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이 막을 내린 1949년 12월까지 완전한 식민지 시대는 100년도 채 안되는 기간일 수 있습니다.

 

VOC 주화

인도네시아인들의 특징과 문화는 실제로 고대와 근대에 만들어졌지만 식민지 시대에 네덜란드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면서 그 스팩트럼이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그래서 1945년 인도네시아건국(준비)위원회는 국가이념을 준비하며 가루다 휘장 밑에 bhineka tunggal ika라는 모토를 담습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 모토가 없다면 인도네시아는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거나 현재의 통일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넓은 지역의 너무 많은 민족들이 각자의 역사와 문화, 언어가 다름에도, 인도네시아라는 하나의 국가 시스템 안에 몽땅 때려 넣었으므로 그 모든 '다름'을 아우를 하나의 이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국가 휘장

 

결국 ‘다양성 속의 통일’이란 말은 지역적, 인종적, 종교적 모든 다름을 서로 수용하여 하나의 국가로서 통일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현실세계에서 구현되기엔 매우 어려운 개념이지만 인도네시아는 이 모토를 기반으로 통일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현재의 영토를 갖게 된 것은 네덜란드의 영향이 큽니다. 원래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수마트라와 자바 일부 지역을 간신히 지배하던 중이었고 1948년 네덜란드군 2차 대공세 당시에는 임시 수도였던 족자가 함락되면서 수카르노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국 정부인사 대부분이 나포되어 방카섬에 유치되면서 아예 공화국 자체가 사라질 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이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보급과 지원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도 지리멸렬한 공화국군을 재편성해 끈질긴 게릴라전을 벌인 수디르만 장군으로 대변되는 군지도부가 있었기 때문이죠. 인도네시아 군이 지금도 정치사회적으로 높은 위상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드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역사에 기인합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 전역이 모두 공화국 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깔리만탄, 술라웨시, 말루쿠 등은 오히려 네덜란드 편이 되어 공화국군과 싸웠고 특히 북술라웨시의 미나하사 지역과 말루쿠의 암본 지역 등 일찍부터 포르투갈 등 서양세력과 기독교에 노출된 곳에서는 네덜란드 식민정부 군대인 KNIL에 입대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자 생계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암본 KNIL군은 네덜란드 특수부대의 중추를 이루어 네팔 구르카 부대와 쌍벽을 이루며 태평양전쟁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연합군, 네덜란드군 측의 중요한 전력이 되었습니다. 

 

1949년 12월 당시 인도네시아 합중국 (빨간색이 인도네시아 공화국)

 

1949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주권을 이양할 당시 자신이 지배했던 지역 중 파푸아를 제외한 전체를 인도네시아 합중국으로 독립시켰는데 비록 수카르노가 합중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16개 지방자치정부들 중 원래부터 공화국 지역이던 한 개 주만 빼고는 대부분 네덜란드에 우호적이었으므로 영연방같은 네덜란드연방을 만들어 네덜란드 본국이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습니다. 수적 열세인 수카르노 측이 결국 대세에 떠밀려 친네덜란드 노선에 흡수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공화국은 독립전쟁에 승리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엄청난 배상금을 무는 조건으로 주권을 되찾았지만 사실상 네덜란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다른 주들을 통해 수카르노를 압박해 사실상의 식민지배를 영속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노련한 수카르노는 능수능란한 수완과 외교력을 발휘해 오히려 전체지역을 자바인들이 중심이 된 공화국 깃발 아래로 흡수하며 네덜란드 영향력을 완전히 몰아냈고 1962년에는 네덜란드가 실효 지배하던 서파푸아를 침공해 1969년 흡수, 1975년엔 포르투갈령 동티모르를 침공해 합병합니다. 그 과정에서 네덜란드에게 전쟁보상금 따위 물어줬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당시 인도네시아에 남아 활동하며 경제 주도권을 쥐고 있던 네덜란드 기업들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해 국유화해 버렸죠.

 

결국 적군이었던 지역, 여전히 적대적인 민족들을 통합하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 통일을 지키기 위해 '다양성 속의 통일'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모토 속 ‘다양성’이란 문화, 언어, 인종의 다양성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전쟁 중 속했던 진영, 정치적 지향점의 다양성까지를 아우르는 더욱 포괄적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적으로 편향된 투자와 발전은 자바인 중심의 중앙정부가 가진 한계였습니다. 전국에서 징수한 세금을 자바 발전에만 투입되고 있다는 불만으로 시작된 지역반란이 꼬리를 물었는데 남수마트라의 PRRI 반란, 술라웨시의 뻐르메스타 반란, 남말루꾸공화국 반란이 그런 이유로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독립전쟁 당시부터 이슬람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정부와 무력투쟁을 벌인 다룰이슬람 세력의 전국적 확산, 아쩨 지역과 파푸아에서의 무장반군 활동 등이 계속되었습니다. 정치적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는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명색은 통일된 하나의 공화국이었지만 사실상 지역별, 인종별, 민족별 이권과 지향점이 모두 달랐기 때문입니다.

 

현재 파푸아에서는 여전히 무장반군(OPM)들이 정부군과 교전하고 있지만 다룰이슬림의 저항은 1960년대 초에 대부분 지역에서 진압되었고 아쩨 지역의 무장반군(GAM)도 2005년 분리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제도권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인도네시아군이 철권으로 통치하며 여러 차례 학살사태를 빚었던 동티모르는 1999년 분리독립운동이 벌어져 유엔의 신탁통치를 거쳐 2002년에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이제 분쟁지역은 파푸아만 남았지만 이번엔 제마 이슬라미야 같은 테러조직들이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하며 국가전복을 기도하며 준동하고 있습니다.

 

수하르토 정권 찬양 차원에서 만든 1965년 공산당 쿠데타 재연 영화

한편 그 사이 1965년 10월 1일 수카르노 친위 쿠데타로 간주되는 공산당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수하르토가 권좌에 올라 1967년 대통령이 되어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으로 통치한 후 1998년 자카르타 폭동과 함께 하야한 후 인도네시아도 민주화 시대로 들어섭니다.

 

2) 종교적 다양성의 수용

 

그런데 가장 민감한 종교 측면의 타협과 통일은 오히려 수월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정통 이슬람이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이야기지만 상당수의 이슬람, 특히 인도네시아 인구의 태반을 차지하는 자바에서는 끄자웬 사상이 유일신교인 이슬람과 힌두교 영향을 받은 다신교적 토착무속을 공존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 술탄국 왕실이 용왕쯤 되는 위상의 니로로키둘을 공식 수호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쉑 수바키르와 삽다빨론의 담합

 

끄자웬의 유래와 내용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에도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나와 있지만 그 단적인 모습을 오스만트루크 이슬람 퇴마사 쉑 수바키르와 자바 토착 마물들의 우두머리 삽다빨론이 띠다르산 정상에서 40일 밤낮으로 싸운 끝에 타협한 내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타협의 요점은 자바의 귀신들이 이슬람 전파를 막지 않을 테니 이슬람 포교자들도 이슬람을 강요하거나 전통 신앙과 문화를 파괴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슬람과 무속의 공존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왈리송오들이 한 일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자바의 끄자웬 사상과 이슬람의 유일신 종교가 전쟁이나 사회적 충돌없이 인도네시아 사회에 연착륙하도록 도술을 부린 것입니다.

 

자바인들의 핵심사상인 끄자웬에 대해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진심과 관계없는 가식적 평화를 추구하는 생활방식'라 할 것입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서로 동의하고 인정하여 피상적 갈등 없이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물론 진정한 화합과는 매우 거리가 먼 개념입니다. 그래서 '무샤와라'라는 만장일치가 가능해집니다. 무샤와라란 각각의 입장과 지향점이 다른 수많은 주체들 사이에 절대 불가능할 듯 보이는 만장일치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정에 대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불만과 분노가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죠.

 

끄자웬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 왜 현지인들이 앞에서는 수긍하면서도 뒤로 가면 죽어라 말을 안듣고, 하기로 합의하여 결정된 일이 왜 전혀 진행되지 않는지, 범죄나 잘못된 상황이 뻔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왜 지적하는 놈이 없고 총대 매는 놈이 없는지 대충 이해하게 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런 성향을 가진 자바인들이 주도한 탓에 그나마 인도네시아가 현재의 국가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거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대통령들이 수하르토의 마지막 부통령이었다가 수하르토의 하야로 1년 남짓 과도기를 맡았던 하비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모두 자바인이었는데 만약 바딱족이나 미나하사 사람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현재의 영토와 통일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하비비 대통령 시절인 1999년 실제로 동티모르 분리독립이 시작되어 결국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비비 대통령은 술라웨시 고론탈로 출신입니다.

 

인도네시아 역대 대통령

 

그래서 국가이념인 ‘다양성 속의 통일’, 그리고 무엇이든 수용해 화합을 이루도록 강제하는 끄자웬 사상 같은 역사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거의 고스란히 살아남은 민속과 무속은 지금도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3) 주술 시장

 

이슬람의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지만 물밑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토착 무속은 광범위한 문화유산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거대한 주술시장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수요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달레카의 바왕후잔

 

최근 잘 알려진 사례는 지난 2022년 2월 롬복 만달레카 오토바이 경기장에서 열린 MotoGP 세계대회 당시 경기 속개가 어려울 정도로 비가 내리자 빠왕후잔(Pawang hujan)이 등장해 기우제를 지낸 일입니다. 빠왕후잔은 비를 내리게 하거나 비를 그치게 하는 기후 관련 주술사입니다. 실제로 그날 비가 그쳐 경기가 속개되었고 해당 빠왕후잔이 경기당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경기 주최당국으로부터 보수를 받으며 경기 당일 맑은 기후를 담보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비난과 비웃음은 물론 찬사도 쏟아졌습니다. 짐승과 소통하거나 가축들의 병을 고치는 빠왕헤완(Pawang hewan)도 있습니다.

 

이들 빠왕후잔, 빠왕헤완들은 모두 인도네시아 흑마술사인 두꾼의 하위개념입니다. 두꾼들은 초능력자들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영매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행하는 초자연적인 일들은 신들, 즉 귀신들의 힘을 빌어 벌어지는 것들입니다.

 

귀신 자체는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미지의 영적존재가 발현하거나 작용하여 종교처럼 인간들을 구제하기도, 역병처럼 개인이나 사회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한편 주술이란 다분히 인간의 의지와 목적이 개입해 귀신들을 부려 특정 목적을 이루려는 기술입니다. 잃어버린 열쇠를 찾거나 상사에게 조금이라도 덜 혼나기 위해 상사 기분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지극히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 어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어떤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사뭇 중대하고 심각한 일들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주술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을 수 있습니다.

- 상대방을 죽이거나 병들게 하는 산뗏저주술,

- 도검불침 금강불괴의 신체를 이루어 궁극적으로 불사를 꿈꾸는 일무끄발,

- 무술을 아득히 뛰어넘는 도술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일무삭티,

-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 억지로 상사병을 심어 그(녀)의 일상과 인생을 파괴하는 뻴렛주술,

- 귀신이나 신령한 물건을 통해 현생의 부를 추구하는 재물주술 뻐수기한

 

이 중에는 수요자가 직접 시전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부터 반드시 도통한 두꾼을 통해야만 하는 전문적이고도 복잡하며 매우 위험한 주술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산뗏저주술이나 뻴렛주술을 당할 때 이를 방어하거나 치료, 복원시키는 것 역시 두꾼들이 하는 일입니다.

 

주술에 대해 깊이 들어가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일단 몇 가지 단적인 사례들을 들어봅니다.

 

입주가정부로 일하던 어린 시골소녀들이 박봉과 가혹한 처우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밤을 틈타 도주했는데 그들이 지내던 방 벽걸이 달력 뒤편에 이상한 도형이나 읽을 수 없는 글이 휘갈겨져 있다면 그것은 그들 고향에서 전해지는 비전의 저주술을 시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업장에서 일부 현지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욕하고 모욕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의 잃어버린 손수건, 입을 닦은 냅킨, 빗에 남은 머리칼 등이 어느 산뗏저주술 두꾼의 손에 들어가 이미 몇 번인가 당신을 향한 저주술이 시전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진 않았었나요?

 

인도네시아 부적

 

당신 사무실에서 일하는 현지 여직원이 비록 히잡을 쓴 독실한 무슬림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당신 눈에 들기 위해 찌레본 뻴렛주술사에게서 받은 주술이 담긴 화장품, 핀, 브로치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오지 광산에 들어가면 산속 마을이나 베이스캠프에서 누군가 내민 새까만 커피 속에 당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거나 어지럽힐 목적의 주술이 담긴 가루약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고 그걸 마신 당신이 광산에서 내려오기 전 평소 같으면 절대 수긍할 리 없는 내용의 계약에 서명했거나 고개를 끄덕였을 수 있습니다.

 

4) 인도네시아의 귀신들

 

인도네시아인들의 사고 속 귀신들은 원래부터 정글 속이나 어둡고 축축한 곳에 일반 생명체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던 미지의 신통한 존재와 사람이 죽어 만들어진 유령 또는 원혼으로 나뉩니다. 잘 생각해 보면 한국도 그런 식 같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nbsp;<망꾸지워>&nbsp;속의 꾼띨아낙(왼쪽)과&nbsp;<수숙 뽀쫑>&nbsp;포스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들은, 자바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체계인 만큼 귀신들조차 자바 귀신들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칩니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꾼띨아낙과 뽀쫑은 사람이 죽어서 현신하는 것들입니다. 꾼띨아낙은 전통적으로 출산 또는 임신 중 사망한 여성의 원귀로 알려져 있어 자녀를 가져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고, 그래서 임산부들을 공격하고 아기들을 납치해 자신이 키우려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성을 띈 귀신들을 모두 꾼띨아낙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델볼롱도 꾼띨아낙의 한 계열로 분류됩니다.

 

뽀쫑은 망자를 매장하기 전 염하여 까인까판이란 광목천으로 감싼 상태를 말하는데 죽음을 가장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모습이어서 인도네시아인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상입니다. 뽀쫑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생전에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거나 매장 전 딸리뽀쫑이라는 끈을 풀어주지 않을 경우 영혼이 시신을 떠나지 못해 그 끈을 풀어줄 사람을 찾아 무덤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목 밑에 내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태아나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 흡혈귀 빨라식, 꾸양, 뽀뽀, 레약 등은 특정 흑마술을 익힌 흑마술사가 그 대가로 얻게 된 저주로 변한 모습입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사람도, 귀신도 아닌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동남아 각국에서 이런 비슷한 개념의 머리통 귀신들이 날아다니는데 태국에서는 크라슈, 말레이시아에서는 뻐낭갈, 캄보디아에서는 ‘압’이라 부릅니다.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의 날아다니는 머리통 귀신

 

이외에 숲 속의 마물 건드루어, 아기 모습을 한 도둑귀신 뚜율, 아기를 납치해 야자나무 꼭대기에서 귀신들의 음식을 먹여 키우는 웨웨곰벨, 자손들의 부를 현세로 훔쳐와 시전자를 부자로 만들어주면서 생명의 제물을 요구하는 부토이조 등은 원래부터 어둡고 깊은 정글 속에 존재하던 고대의 악마라고 여겨집니다. 사람이었던 적이 없는 존재들이죠. 이들은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이프리트 급 이교도 악마로 분류되어 제도권 안으로 편입됩니다.

 

인도네시아에 수많은 민족과 종족들이 살고 있는 만큼 인류의 유래에 대한 수많은 전설들이 있고 각 지역마다 독특한 귀신들이 있습니다. 다 합치면 족히 수천 종류의 귀신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중 나름 유명한 것은 빨렘방의 물귀신 반유, 바딱족 지주들의 재산을 범하는 이들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리는 버구간장, 기차길에서 사람들 귀를 막아 기차에 치이게 만드는 주릭봉에, 날아다니는 빨라식과 달리 머리통만 굴러다니는 순다의 군둘 쁘링이스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인지도는 자바의 귀신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숲 속 주민들인 빠당 지역의 오랑부니안, 발리의 토냐(‘토뇨’라고도 함), 정글에 들어온 사람을 따라 웃다가 지쳐 죽게 만드는 술라웨시 동남부 똘라키 족의 마물 오니투멍아네, 숨이 멎을 듯한 극강의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홀려 정사 중 목숨을 빼앗는 남부 술라웨시의 깐돌레 등은 외부인은 물론 그 지역 사람들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결국 귀신들조차 자바 귀신들의 인지도에 밀려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서부 깔리만탄 주도 뽄띠아낙

 

 

사람이 죽어 발생한다는 꾼띨아낙의 경우에도 서부 깔리만탄의 주도 뽄띠아낙이 그렇게 이름 붙여진 배경을 보면 사실 그 원형이 사람의 원귀가 아니라 정글 속에 존재하고 있던 고대로부터의 존재라는 심증이 강해집니다. 뽄띠아낙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771년부터입니다. 개척자들이 처음 들어가 나무를 베고 길을 낼 때 숲 속의 귀신들과 마물들이 출몰해 개척자들을 괴롭혔고 특히 처녀귀신의 폐해가 컸습니다. 하지만 밤의 정적을 깨는 귀신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화포를 쏘아 대며 개척지를 확대해 나가자 결국 귀신도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처녀귀신의 본거지가 있던 곳에 사원과 궁전을 짓고 그 사건을 잊지 말자며 그 도시의 이름을 뽄띠아낙, 즉 처녀귀신이라 명명했습니다. 뽄띠아낙은 말레이시아어로 꾼띨아낙과 같은 뜻입니다. 즉, 도시 이름 자체가 처녀귀신인 겁니다.

 

하지만 순델볼롱은 앞서 언급한 드막 왕국 후궁의 원귀가 원형인 만큼 인간이 죽어 발생한 원혼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순델볼롱은 원래 꾼띨아낙의 부류 중 하나의 특정 개체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의 군집 또는 귀신의 한 종류로 분류됩니다. 이는 순델볼롱이 재물주술에 동원되면서 그 추종자들이 죽어 순델볼롱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순델볼롱은 비록 무시무시한 귀신이지만 서민 친화적이어서 순델볼롱이 출몰한 길거리 식당이나 가게는 처음엔 그로 인해 대소동이 나더라도 결국은 대박이 터져 큰 돈을 벌게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착안한 순델볼롱 재물주술도 성행합니다. 이 재물주술을 따르는 이들은 얼굴에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그들의 영혼은 사후 순델볼롱의 하수인이 되어 영겁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들이 죽어 염을 하기 전 시신을 닦을 때 등에 커다란 원형의 멍울이 보이는데 매장한 후 사람들이 무덤으로부터 40걸음을 떼는 순간 그 검은 원은 커다란 구멍으로 변합니다. 몸에 구멍이 뚫리며 순델볼롱이 되는 것이죠.  남자들의 경우에는 두꾼을 통해 순델볼롱과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방식으로 부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5) 퇴마

 

두꾼들은 귀신을 불러들여 그들을 부릴 뿐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기도 합니다.  물론 분신사바나 코쿠리상 놀이, 위자보드와 유사한 즐랑꿍 초혼술로 일반인들도 귀신을 불러낼 수 있지만 그러다가 규칙을 어기거나 귀신에게 속아 제대로 돌려보내지 못해 곤경에 처하면 이를 퇴치하거나 사람들을 보호하는 술법을 쓰는 것 역시 두꾼들입니다.

 

<즐랑꿍의&nbsp;목걸이>

 

최근 인도네시아에 강성 이슬람이 부흥하면서 이슬람 퇴마사들이 약진해 퇴마행위 뿐 아니라 정신건강을 위한 종교적 테라피도 시전하는데 이들을 루키야(Ruqyah)라고 합니다. 한동안은 호러영화에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주체도 두꾼이 아니라 루키야나 우스탓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퇴마행위가 일어나는 곳은 주로 ‘끄수루빤 마쌀’이라 부르는 집단 빙의가 일어나는 학교나 공장입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환경에서 자주 벌어지는 집단 빙의 현상은 미스터리하기 짝이 없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잠꼬대를 하듯 헛소리를 하거나 비명을 지르곤 합니다. 한국 기업들 중에서도 이런 현상을 겪은 곳이 적지 않고 심하면 공장을 재가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필자가 근무하던 곳에서도 1994년에 집단 빙의사태가 벌어져 상황이 잦아들기까지 며칠 간 조업을 중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직원들의 종교에 따라 우스탓은 물론 목사와 신부도 불러 축성과 기도를 했지만 나중에 두꾼이 와서 검은 염소를 잡고 그 머리와 다리를 잘라 1층 여자 화장실 어딘가에 묻은 후에야 사건이 일단락되었습니다.

집단빙의&nbsp;현장

 

집단 빙의사건은 학교, 공장에서 주로 벌어지지만 공포영화 시사회나 젱롯 전시관 같은 곳에서도 개별적인 빙의사건이 발생하곤 합니다. 현지 한국인들 중엔 거의 대부분이 귀신을 본 적이 없지만 이런 빙의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해본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귀신을 보았다는 목격담은 물론 뽀쫑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한 지역이 공포에 질려 술렁거리거나 아무리 봐도 빈 병인데 그 안에 뚜율귀신을 잡아넣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021년 4월경에는 자카르타 근교인 데뽁에서 이웃들의 돈을 훔치는 돼지요괴 바비응예뻿이 나타났다고 해 이슬람 교사인 한 우스탓이 중심이 되어 일단의 남자들이 한 밤중에 발가벗고 새끼 멧돼지를 몰아 잡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 지상파 뉴스를 따온 유튜브 영상에서는 고론탈로에 살던 한 남자가 빚을 받으러 온 이웃과 경찰을 살해한 후 자신을 잡으러 온 경찰들에게 도검불침 일무끄발 주술을 시전해 경찰들이 100발 넘는 총을 쏘아도 죽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귀신과 주술은 좀 더 사람들 실생활에 밀착되어 있어 이와 관련된 콘텐츠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고 호러영화들도 매년 로컬영화들 사이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30일에 개봉한 호러영화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는 2017년 흥행수위를 차지했던 CJ ENM 투자작품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의 기록은 물론 인니역사상 최고기록인 2016년 코미디 영화의 670만 명을 넘어 920만 명의 관객이 들어 모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왼쪽부터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2022), <와르꼽 DKI 재탄생: 귀뚜라미 대장님 1부>(2016), <사탄의 숭배자>(2017)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