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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브로커에게 호구잡히지 말자

beautician 2022. 7. 3. 11:28

기차여행

 

 

오랜만의 기차여행.

마지막으로 기차를 탔던 게 파산을 겪은 후 절치부심 반둥 코린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가던 2003년이었으니 벌써 20년 전이다. 당시 특급열차인 아르고도 타봤고 무궁화급인 빠라향안(Parahyangan)도 타보았는데 객실 내에서 풍기던 지린내, 소독약 냄새 등으로 기차에 대한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당시 기차를 타던 시기에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마음도 기차여행에 대한 무겁고 어두운 인상을 남게 했을 것이다.

 

이번 기차여행도 그리 썩 내킨 것은 아니다.

자카르타에서 2-3주 후에 해도 되는 미팅을 J가 급한 마음에 굳이 스마랑까지 가서 바쁜 일 하는 사람(브로커)를 붙잡고 시간을 내달라고 매달리는 식이어서 우리 측이 시간에 쫒긴다는 약점을 스스로 여실히 드러냈다. J는 정말 마케팅에는 잼병. 그러면서도 스스로 늘 신의 한 수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약점이 드러나니 당장 스마랑에서 만나기로 한 상대방이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기차를 탄 수요일날 저녁으로 미리 잡아 두었던 미팅을, 다른 일정으로 어렵다며 목요일 아침으로 미룬 게 그 첫 신호. 결국 수요일은 아침에 자카르타를 출발해 이른 오후에 도착한 후로는 아무런 할 일도 없는 느슨한 일정이 되어버렸다. 정작 어제는 당일치기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와 미팅하고 당일 돌아가라 하더니 결국 스마랑 1박이 불가피해지고 말았다..

 

또 하나는 갑자기 관련 주무장관 부탁이라며 한국 가는 인니 영화인팀들 비자와 한국도착 후 일정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이 영화가 본문과 관계 있을까?

 

5년 넘게 접촉하려 애써도 눈길 한번 안주며 중립과 공정성을 지키던 장관이 그런 요청을 할 리도 없었다. 만약 정말 이게 그 장관의 요청이라면 J는 당장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사사로운 사람이 그의 프로젝트를 6년 넘게 막고 있었다면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마 장관님이 당신들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모양'이라는 스마랑 브로커의 말에 이게 그 친구 독단으로 J의 약점에 편승해 편의를 제공받으려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사람의 능력을 왜 영화인 접대로 평가하겠다는 걸까? 그러니 말이 안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게 장관 요청일 리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부탁의 액면가는 J가 하려는 사업의 허가 주무부처 장관의 요청. 진위 여부를 크로스체크 할 수 없는 부탁인데 액면가를 무시하고 거짓이라고 간주해 거절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브로커의 급발진이 분명하다.

 

안해도 될 미팅을 스마랑까지 찾아가 하겠다며 비행기 티켓이 없어 기차 티켓을 산 바로 그 시점에 호구잡혀 버린 것이다.

 

스마랑 현지에서 도와준다는 다른 한국인이 이런저런 조언을 하지만 그가 하는 말과 브로커 본인의 말의 온도차가 난다.  어쩌면 그로서는 만난지 한달도 안된 J보다 20년지기 사업파트너인 그 브로커에게 팔이 굽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중에 얘기해 본 그는 그런 장난을 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그 브로커의 문제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어이 스마랑에 가겠다며 내 조언을 무시하는 J는 무슨 대단한 구국의 결단급 사업적 결정을 한 것처럼 굴지만 지난 2016년 이후 늘 그랬던 것처럼 몇몇 유력인사들에게 줄을 대고 과시하는 노회한 현지 브로커에게 또 다시 돈을 뜯기는 길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자기 스탠스를 지키려 했다면 스마랑에 가서는 안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내 탓을 한다. 내가 다음 주에 절대 미룰 수 없는 가족행사 일정이 있어 미팅에 참석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금주에 스마랑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내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마랑에 가는 것처럼. 그는 늘 그런 식으로 모든 귀책사유를 남에게 돌린다. 뭐,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이전에 한 열 명쯤은 만났으니 굳이 놀랄 일도 아니다.

 

물론 브로커를 대한다고 해서 꼭 돈을 뜯기는 것은 아니지만 약점을 노출하고 호구 잡히는 순간 브로커가 뜯어먹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건 개인이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다. 만만해 보이면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스마랑까지 다섯 시간 달려가는 기차여행을 마냥 즐길 수 없다. 오히려 그런 J와 나란히 앉아 가는 것이 무척 불편할 뿐이다. 5년째 자기 일을 돕고 있는 사람의 조언을 들어야 마땅한 상황에 한달 전 만난 사람의 말을 더 믿는, 그래서 늘 안좋게 끝나고 나중에 욕을 해대기 시작하던 그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란 걸 스마랑 가는 기차 속에서 다시 예감하고 있었다.

 

 2022. 6. 22

 

PS. 아니나다를까, 22일 도착 당일 나올 수 없다던 그쪽 한국인이 갑자기 저녁시간이 된다며 저녁식사를 초대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에 J에게 10억 루피아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동업자에게 요청해야 하는 금액인데 동업자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J에게 부탁한 것이다. 동업자도 빌려주지 않은 돈을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요구한다? 분명히 호구 잡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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