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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서울신문 스크랩] 인도네시아 ‘꺼자웬’의 중심 족자카르타

beautician 2022. 4. 27. 11:32

 

[이슬람 문명과 도시] (24) 인도네시아 ‘꺼자웬’의 중심 족자카르타

 
입력 :2006-12-05 00:00ㅣ 수정 : 2006-12-05 00:00 
지난 5월 족자카르타 지역의 지진으로 4만여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그곳에서의 유학시절을 떠올렸다.풍성한 문화유적과 다양한 유학생이 어우러진 족자카르타는 ‘자카르타’ ‘아쩨’와 함께 특별주이다.

 

▲ 서까뗀 축제에 구름처럼 모인 족자카르타 시민들 모습.

1945년 8월17일 독립준비위원회 회장과 부회장이었던 수카르노와 핫따가 독립과 함께 신생 인도네시아공화국 건설을 선언했을 때, 족자카르타의 술탄인 하멍꾸부워노 9세가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하는 등 국가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 그 보답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족자카르타를 하나의 주로 승인하면서 술탄이 대대로 이 지역의 주지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1개의 시와 4개의 군으로 이뤄진 350여만명 규모의 족자카르타의 정식 명칭은 ‘욕야까르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거 표기법을 따라 ‘족자카르타’나 줄여서 ‘족자’라 부른다.
 
족자는 세계 유명관광지이기도 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와 쌍벽을 이룬다는 세계 최대의 불교유적 ‘보르부두르 사원’이 있어서다. 여기다 족자는 인도네시아 300여 종족 가운데 45%를 차지하는 자바족의 고향이다.

 

▲ 산더미 밥인 구능안을 사원으로 옮기는 왕궁수비대.

 
#자바식 이슬람,‘꺼자웬’

자바섬의 다른 곳처럼 족자의 주민 90% 이상이 이슬람교도이다. 그러나 아랍지역처럼 실제 이슬람 계율을 지키는 무슬림은 40% 정도다. 나머지는 토속신앙이나 힌두·불교가 적당히 섞인 ‘꺼자웬’을 믿는다. 꺼자웬들이 이슬람을 믿는다고 하는 이유는 정부가 이슬람교·기독교·가톨릭교·힌두교·불교 등 5대 종교만 종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종교를 믿는 것은 의무사항이고 믿는 종교는 이 5가지 가운데 하나여야만 한다.

그러니 꺼자웬도 이슬람교도다. 독립 전에는 독립운동 때문에 종교적 갈등이 묻혔지만, 독립 이후 한때 이슬람 세력 약화를 위해 꺼자웬을 ‘자바종교’로 분리 독립시키려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입장은 언제나 ‘꺼자웬은 신앙이 아니라 문화관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무슬림의 생활을 보면 샤먼적인 행위가 일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자연 속의 신묘한 정령들을 회유하기 위해 바나나잎에다 3가지 꽃과 향·잔돈, 그리고 떡을 싸서 바치는 의식 ‘서사젠’을 행한다. 조상에게 제사 지내고 그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 ‘슬라마딴’도 있다.

그렇다고 이슬람적 전통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자바 사람들의 모든 행사에는 ‘코란’에 명시된 기도문 낭송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 유명 관광지인 족자카르타의 풍물 모습들.

 
#‘가르벅’과 족자카르타 술탄왕국

‘가르벅’은 족자카르타 왕궁 주최로 1년에 3번 이슬람 명절에 맞춰 여는 경축행사다. 이 가운데 예언자 무함마드 탄신일을 맞아 일주일 동안 치르는 ‘가르벅 물루드’가 가장 큰 축제다. 이 행사는 ‘서까뗀’이라고도 불린다.16세기 자바 최초의 이슬람왕국 ‘더막’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는 ‘가르벅 빠사’와 ‘가르벅 버사르’가 있다.

그런데 이슬람 명절을 축하한다는 이들 행사를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비이슬람적인 요소가 더 많아 보인다. 가르벅 버사르 기간에 고대부터 내려오는 궁중악기 ‘가믈란’이 등장하는데 원래 가믈란 연주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 그러나 이슬람을 거부하던 고대 자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포교사 수난 깔리자가의 제안으로 힌두문화를 끌어안으면서 가능해졌다. 족자 지역이 꺼자웬의 중심지가 된 것도 16세기 자바에서 펼친 그의 활동 덕분이다.

또무함마드 탄생 전날에는 술탄을 비롯한 왕궁의 모든 식솔들이 왕궁 근처 이슬람 사원으로 나와 예언자의 탄신을 축원한다. 이 기간에 국가의 안녕과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며 왕궁은 구능안(밥을 산 모양으로 쌓아 수백명이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각종 보물들을 일반 백성들에게 공개한다. 족자 사람들은 구능안은 질병을 예방하고, 보물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의식을 통해 술탄은 권위를 지킨다.

꺼자웬 문화의 극치는 16세기말 족자 외곽지역 ‘꼬따거대’에서 생긴 ‘마따람 이슬람’ 왕국의 문화다. 특히 마따람 이슬람의 3대왕 술탄 아궁 시기는 주목할 만하다. 당시 이슬람적인 왕궁과 힌두·불교의 신비주의에 매료되어 있던 관료들간 대립이 거세지자, 술탄 아궁이 용단을 내려 이 두 문화를 접목시키는데 여기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꺼자웬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이슬람 단체를 꼽으라면 대개 ‘엔우(NU)’와 ‘무함마디야’를 든다. 엔우와 무함마디야 지지자가 2000만명에서 3000만명에 이를 정도니 그럴 만도 하다. 이 두 단체는 성향이 맞지 않다.1920년대 이래 농촌의 전통 보수주의 이슬람 교육기관 ‘뻐산뜨렌’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엔우는 꺼자웬과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도시를 중심으로 전문인력 양성에 치중해 온 무함마디야는 꺼자웬을 관습 타파의 대상으로 여기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다.

그러니 족자에서의 전통 보수주의와 아랍에서의 전통 보수주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우디에서는 우상숭배나 샤먼적인 풍습을 금지하지만, 족자에서는 외려 끌어안으려 한다. 그래서 아랍의 보수주의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가깝지만, 족자의 보수주의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오히려 거리가 더 멀다. 자바식 이슬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 족자에 인도네시아 최고의 국립 이슬람대학이 세워졌다.‘마따람 이슬람’ 시대의 포교사 수난 깔리자가의 이름을 따온 이 대학은 인도네시아 전국 각지에서는 물론, 이슬람에 흥미를 느낀 외국에서도 숱한 학생들이 유학을 오는 학교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느끼는 점은 다른 종족들과 반목하기보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자세, 엄정한 자제력으로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는 절제된 모습, 남을 밟고 일어서려는 경쟁의식을 금기시하는 듯한 생활태도 등이다.

이렇게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타협하는 듯한 사고방식은 그들의 세계관, 종교관, 그리고 의식구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족자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마음의 평안은 어떻게 얻는가.’ ‘우주만물의 절대자에게 돌아가 영원한 삶을 누리는 방법은 없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몇달 전 필자는 다른 일 때문에 다시 족자를 찾았다. 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말리오보로’ 거리의 밤 풍경과 왕궁 주변은 20여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거울에 비친 필자의 얼굴에는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데 족자의 모습은 어쩌면 그대로일까.

제대식 영산대 교수·이슬람문화硏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