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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한 끄자웬(Kejawen) 입문

beautician 2022. 4. 25. 12:05

끄자웬(Kejawen)이란?

 

 

끄자웬(Kejawen)이란 자바족, 그리고 자바섬에 사는 다른 민족들이 가진 삶에 대한 시각, 즉 생활철학이라 할 수 있다. 즉 종교라기 보다는 문화에 가깝다.

 

끄자웬은 자바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 철학의 집합체로서 각 시대를 풍미한 여러 종교들과도 충돌없이 병행하며 호환될 만큼 보편성을 품고 있다.

 

끄자웬을 집대성한 문헌들도 남아 있으나 생활 속에 녹아 들어 관습이 되었지만 종교의 경지까지 이르진 않았다. 그래서 절대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가진 이슬람이나 기독교 같은 다른 종교들과도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개신교도를 사이에서도 근근히 명맥을 잇고 있는 한국의 점, 주역, 무속사상과 유사한 위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끄자웬은 자바의 철학자들에 의해 특정 종교의 가르침에도 적용되고 사용되고 있어 그렇게 융합된 종교들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유일신(이라기보다는 절대신)의 개념을 받아들여 끄자웬의 가르침이 되어 사람들에게 Sangkan Paraning Dumadhi (신의 종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담론으로 삶의 지침을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Manunggaling Kawula lan Gusthi(신과 종의 합일)을 가르친다.

 

끄자웬의 가르침은 그러한 합일을 통해 다음과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l  개인 스스로를 위한 축복

l  가족을 위한 축복

l  모든 인류를 위한 축복

l  우주를 위한 축복

 

무슬림이면서도 이슬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 아방안(abangan)들과 달리 끄자웬 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에 게을리하는 법 없이 더욱 열성적으로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지만 토착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끄자웬이 타 종교들과 충돟하지 않는 것은 이슬람 끄자웬, 힌두 끄자웬, 끄자웬 기독교, 끄자웬 불교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1916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한 수행자가 버링인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어원

 

끄자웬(Kejawen)이란 단어는 자바섬 지역을 뜻하는 자바(Jawa)에서 유래했고 ‘자바의 전통과 믿음과 관련한 모든 것’이란 뜻이다. 끄자웬(kejawen)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관련 예배의식 용어가 모두 자바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 잘 된 일반명칭이라 보인다.

 

일반적 맥락에서 특정한 가르침, 특히 운명의 규칙을 변화시키고 고귀한 삶의 원칙을 깨닫게 하는 철학으로서의 끄자웬, 종교로서의 끄자웬은 까삐따얀교(agama Kapitayan)를 믿는 이들이 발전시킨 것으로 이미 뼛속부터 자바의 전통이 깊이 스며있는 자바인들이 이슬람이나 기독교를 믿는 상황에서 끄자웬을 종교로 칭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즉 끄자웬은 종교적 신앙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 놓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Kejawen은 Kejawaan, 즉 가장 ‘자바스러운 것’이라 번역하는 것이 더 올바를 수도 있다.

 

통념 상 끄자웬이란 자바인들의 예술, 문화, 전통, 의식, 성격, 철학을 망라한다. 끄자웬이란 말의 의미는 ‘영적인 것’을 뜻하기도 하고 ‘자바인의 영성’을 말하기도 한다. 끄자웬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빠사(또는 뿌아사)라고 하는 금식과 따빠(Tapa) 또는 버르따타라고 하는 명상이다.

 

끄자웬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끄자웬을 이슬람이나 기독교처럼 유일신 종교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관행, 의식, 예배가 결합된 관점과 가치관으로 본다. 끄자웬의 가르침은 신성불가침의 빡빡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균형이란 개념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가르침의 내용은 다르지만 전반적인 구도 자체는 오히려 유교에 가깝다고 하겠다. 끄자웬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하려 포교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정기적으로 더욱 수행하고 정진하려 한다.

 

의식과 예배의 상징은 끄리스 단검, 와양 그림자극 인형 같은 자바의 전통적 물품이나 도구에 응축되고 주문 낭독, 특정 상징을 담은 꽃들의 사용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이러한 상징들은 비록 진정한 끄자웬의 철학적 가르침에 존재하지 않지만 끄자웬을 사머니즘이나 흑마술 관행에 쉽게 사용하는 끄윙이딴(kewingitan-마술의 권위)의 형태를 띄게 된다.

 

끄자웬의 가르침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끄자웬의 많은 종파들이 힌두교나 불교 이슬람, 기독교 등 외래 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융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혼합주의적 특성은 변화하는 시대적 도전에 대해 보다 풍부한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어서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날들

 

마타람 왕국의 술탄 아궁은 무슬림 끄자웬의 기초를 닦은 철학자라고 할 수 있으며 중요한 날을 정해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중요한 날이란 자바인들의 삶 속에서 탄생, 혼인, 사망 등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대게 자바인들은 위의 세 가지 경우를 맞아 새로운 이름을 받곤 한다. 죽을 때 받는 이름은 대개 탄생 시 받은 이름 뒤에 bin 또는 binti를 붙이고 그 뒤에 부모의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예를 들어 오사마 빈 라덴, 즉 라덴의 아들 오사마란 뜻이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은 자바인이 아니어서 아랍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이름을 갖는 게 보통이다.

 

모든 중요한 날들은 자바력 칼렌더에 표시되는데 이를 쁘림본(Primbon)이란 문헌에 중요한 날과 이를 기념하거나 기리는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끄자웬 문화 속 중요한 날들은 다음과 같다.

l  수란(Suran) 새해의 수라월 1일

l  스빠사란(Sepasaran) 생일과 관련 기념행사. 무슬림의 아키카(akikah)에 해당

l  만뜨난(Mantenan) 혼인과 그 관련행사

l  망깟(Mangkat) 사망 관련 행사. 기도하며 축원하는 행사는 껀두리(kenduri), 위릿(wirid), 응아지(ngaji)라고 하며 각각 사망 후 7일, 40일, 100일, 1,000일, 3,000일째에 행한다.

l  머긍 빠사(Megeng Pasa) 루와(Ruwah)달 (또는 아르와 Arwah 달)의 28일과 29일은 주로 망자들을 축원하는 날이며 가족 중 가장 어르신들에게 한 끼 완벽한 밥상을 바치며 예를 다해 인사하는(실라뚜라미 silaturahmi) 문중일(waktu Munjung)이기도 하다. 여기서 빠사(pasa)는 금식을 뜻하는 뿌아사(puasa)와 같은 의미로 보인다.

l  머긍 사왈(Megeng Sawal) –빠사 달(bulan Pasa)의 29이로가 30일. 돌아가신 사람들에게 기도로 축원하며 머긍 빠사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뒤늦게 문중일을 지킬 수 있는 날이다.

l  리아디 꾸빳(Riadi Kupat) 꾸빳 명절–사왈달의 3,4,5일로 자녀가 결혼 전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날이다.

 

끄자웬은 외래 종교와 결합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종교의 주요 기념일들도 끄자웬 문화에서는 똑같이 중요한 날이다. 무슬림 끄자웬에게는 다음과 같은 날들이 중요하다.

l  이둘피트리

l  이둘아다

l  금요 축일

l  물루단(Muludan) 예언자 무하마드 탄신일

l  스까딴 (Sekaten) - 샤하다타인(Syahadatain).

 

끄자웬에서도 금식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슬람의 금식인 뿌아사와 상통하는 점이 크다. 끄자웬의 금식은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l  빠사 웨톤(Pasa Weton) – 자바력 기준 생일에 행하는 금식

l  빠사 쓰께만(Pasa Sekeman) –월 요일과 목요일에 행하는 금식

l  빠사 울란(Pasa Wulan) – 자바력 기준 매월 13, 14, 15일에 행하는 금식

l  빠사 다웃(Pasa Dawud) – 격일 금식

l  빠사 루와(Pasa Ruwah) – 루와월(아르와월)에 행하는 금식

l  빠사 사왈(Pasa Sawal) – 사왈월에 6일간 행하는 금식. 그러나 사왈 월 1일에는 금식하지 않는다.

l  빠사 아삣 까유(Pasa Apit Kayu) –자바력 12월의 첫 10일간 행하는 금식

l  빠사 수라(Pasa Sura) –수라월의 9일과 10일에 행하는 금식

 

특정한 날에 행하는 금식 외에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그 진지함의 표시로 하는 금식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l  빠사 무띠(Pasa Mutih) – 소금, 반찬, 간식 없이 백미만 먹고 맹물만 마시는 식의 금식. 실제로는 금식이 아니라 다이어트인 셈

l  빠사 빠띠그니(Pasa Patigeni) - 먹지도 마시지도 잠도 잘 수 없는 금식. 방안에 빛이 들어오면 안된다.

l  빠사 응에블렝(Pasa Ngebleng) – 먹거나 마시거나 잘 수 없고 배변 용도 외에는 방을 나갈 수 없다. 잠깐 자는 것은 허용된다.

l  빠사 응알롱(Pasa Ngalong) – 먹거나 마실 수는 없지만 잠시 잠을 자는 것은 허용되고 외출도 가능하다.

l  빠사 응로웟(Pasa Ngrowot) – 밥을 먹어서는 안되지만 과일과 야채는 먹을 수 있다.

l  빠사 웅온(Pasa Wungon) - 먹고 마시는 것이 금지되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온 정신을 원하는 바에 집중한다.

l  빠사 따빠 제젝(Pasa Tapa Jejeg) - 먹거나 마시지 않은 채 최소 12시간을 선 채로 있어야 한다.

l  빠사 응로웡(Pasa Ngelowong) - 스스로 세 시간 또는 여섯 시간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해 먹거나 마시지 않는 금식. 말하자면 간헐적 금식.

 

 

주요 경전과 가르침

 

끄자웬은 특별히 경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함축적으로 기록한 다음과 같은 문헌들이 있다.

 

l  까까윈(Kakawin – 까위 문학)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고대 메트룸(metrum) 문학서로 여행서 형식 속에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고대 자바어와 고대 자바어 기호로 쓰였다.

l  마짜빳(Macapat 짜라깐 Carakan 문학) – 메트룸 안야르 (신규) 문학 서적으로 82권 이상으로 이루어지며 자바 기호, 자바어로 쓰여져 있고 일부는 뻬곤(Pegon) 문자로 되어 있다.

l  바바드(Babad - 역사)

l  술룩 (Suluk) - 초자연적인 도를 거쳐 고귀한 한자와니(hanjawani 훌륭하고 도덕적) 인격을 형성하는 절차서로 이를 통달한 사람은 초자연적인 힘을 얻는다고 믿어지며, 자바어와 자바어로 쓰여진 총 35권 이상의 책, 일부 뻬곤 문자를 사용하여 작성되었다.

l  끼둥(Kidung – 기도) – 신도들이 신에게 바치는 여러 기도들과 독특한 운율로 읽어야 하는 기도와 주문 모음집. 자바 기호와 자바어로 쓰여진 7권의 책

l  삐울랑(Piwulang - 가르침) – 문자 그대로 ‘반복된다’는 의미로 Pituduh(질서)와 Wewaler(금기)를 가르치는 책이다.

l  쁘림본(Primbon - 총서) – 규례와 관습의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총서. 우주의 흐름을 일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서삼경 중 주역에 가까울 듯

 

위의 문헌들은 고대 음식조리법부터 방중술에 이르기까지 자바인의 삶 모든 측면을 다루며 주로 상징과 암시를 통해 조언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몇몇 끄자웬의 분파들

 

끄자웬엔 수백 개의 종파들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종교와 혼합되어 있거나 서로 상호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종파들이 삶의 균형에 주목하고 특정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그중 가장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는 종파들은 다음과 같다.

부디 다르마(Budi Dharma)

 

l  까우루 버기아(Kawruh Begia)

l  마네게스(Maneges)

l  빠드뽀깐 짜끄라끔방(Padepokan Cakrakembang)

l  빵에스투(Pangestu)

l  수마라(Sumarah)

 

삽다빨론(Sabdapalon)의 가르침을 따르는 삽도빨론(Sabdopalon) 종파도 있는데 삽다빨론은 이슬람 전파시기 왈리 송오를 도우려고 오스만투르크에서 파견한 쉑 수바키르와 일대 결전을 벌였다는 자바 마물들의 왕을 뜻한다. 이 부분에서 끄자웬의 성격 일부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