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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 호수 전설 (Legenda Danau Toba) 본문

인니 민속과 주술

또바 호수 전설 (Legenda Danau Toba)

beautician 2022. 3. 10. 12:01

또바 호수와 사모시르 섬

  

또바 호수  

 

또바 호수는 북부 수마트라 수퍼불칸(Gunung Supervulkan) 화산 칼데라에 생성된 거대한 호수로 폭과 길이는 각각 30km, 100km에 달하고 수심은 500미터가 넘습니다. 얼핏 보기에 바다처럼 보이는 이 곳이 사실은 거대한 호수라는 점이 놀랍고 엄청난 양의 담긴 이 호수가 해수면 보다 900미터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호수의 가운데엔 적지 않은 크기의 사모시르 섬(Pulau Samosir)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 바딱족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호수에 대한 전설은 버전에 따라 그 디테일이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신비한 힘을 가진 물고기 여인과 그의 철없는 아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물론 이 전설에 등장하는 아들처럼 발암 캐릭터가 꼭 한 명 이상 등장하는 것도 인도네시아 전설 대부분의 공통점이라 하겠습니다.

 

또바 호수와 사모시르 섬에 대한 북부 수마트라의 민화는 대략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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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수마트라의 한 마을에 또바(Toba)란 이름의 농부가 비옥한 계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부이기도 했습니다. 농사만 지어서는 영주에게 바치는 세금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얼마 없었으므로 그는 들판에서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다시 낚시도구를을 챙겨 얼마 멀지 않은 강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야 그럭저럭 생활이 쪼들리지 않을 수 있았습니다.

 

당연히 그는 낚시엔 이골이 나서 매일 얼마든지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었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이 먹을 만큼만 잡는 것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미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저녁 내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있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려 했습니다. 생선반찬 없는 밥에 나물만 놓고 저녁을 먹어야 할 판이었죠.

 

그래서 막 낚시대를 거두려던 순간 강 한가운데에 던져 놓은 낚시줄이 팽팽해졌습니다. 물고기가 물린 겁니다. 순식간에 그간의 짜증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들떴습니다. 낚시를 문 물고기가 만만찮은 크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수면까지 끌려 나온 커다란 물고기는 큰 지느러미와 꼬리를 파닥이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또바는 물고기가 줄을 끊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급히 땅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물고기의 입에서 낚시바늘을 뽑으면서 기쁜 미소를 지었습니다.

 

물고기가 또바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뻥끗뻥끗 했지만 또바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물고기들이 뭔가를 빤히 바라보는 건 당연한 일인데 어부가 거기 특별한 의미를 담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물고기가 설마 물고기가 낚시꾼을 설득하려는 거겠어요? 아무튼 그는 지금까지 잡아본 것들 중 가장 큰 물고기를 낚았다는 기쁨에 쾌재를 불렀고 이 물고기를 잘 손질해 구워서 식탁에 올릴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를 지어졌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올 무렵 저녁노을도 거의 사라지고 하루가 완전히 저물고 있었습니다.

 

북부 수마트라 바딱 사람들의 전통가옥. 집 아랫부분을 창고로 쓰곤 한다.  

 

그는 물고기를 곧바로 부엌으로 가져가 구워 먹으려 했는데 마침 불을 피울 장작이 다 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 아래 창고로 내려가 장작을 더 가져왔는데 부엌에 돌아와 보니 그 물고기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물고기가 있던 자리에 값나가는 금화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또바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며 부엌을 구석구석 뒤져 보았지만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금화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간 또바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긴 머리를 한 여인이 방 안에 서서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빗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돌아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또바는 한 눈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여기 계시는 거죠?”

귀신이라면 저렇게 아름다울 리 없다고 생각한 또바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묻자 여인은 미소를 띌 뿐이었습니다. 물론 나라면 귀신이니 저만큼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미 밤이 깊었으니 등불을 밝혀 달라고 했고 또바가 어리둥절하면서도 요청한 대로 등을 밝혀 주자 함께 부엌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불 위에 앉힌 솥에서 밥이 익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아까 강에서 잡은 큰 물고기의 현신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부엌의 금화들은 자신이 사람으로 변하면서 벗겨진 물고기 비늘이 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간 댁에서 함께 지내도록 부탁드릴 정도의 사례는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함께 살기 시작했고 몇 주 후 그녀는 또바의 간곡한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혼인의 조건으로 단 하나의 전제를 달았는데 그것은 또바가 평생, 자신이 물고기의 현신이란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바는 기꺼이 그 조건에 응했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원래 물고기였다고 말한다면 이웃들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길 게 뻔했으니까요. 그들은 그렇게 혼인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 년 후 그들 사이에 남자아기가 태어났는데 그들은 아기에게 사모시르(Samosir)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너무 귀여워하며 키운 탓에 아기는 성정이 무르고 게으른 소년으로 커갔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장성하자 어머니는 논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메일 음식을 나르는 일을 시키려 했지만 사모시르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직접 매일 음식을 날랐습니다. 또바는 그런 아내를 딱하게 여겼습니다.

 

“언제까지나 저렇게 버릇없게 키울 수는 없어요. 당신이 한번 단단히 버릇을 가르치지 않으면 사모시르는 어른이 되어서도 안하무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것이요.”

 

사실 또바의 마음 속엔 새삼 불만이 스믈스믈 생기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날 때 얻었던 그 금화 무더기는 신부의 지참금인 셈이었지만 경작할 땅을 더 사고 집을 고치고 사모시르를 키우면서 그 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습니다. 더욱이 신비한 배경을 가진 아내가 뭔가 신통력을 부려 집안에 더욱 큰 행운을 가져올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것을 빼고는 여느 시골 아낙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더욱 실망한 것은 사모시르를 키우면서 버릇을 고쳐주지 않는 양육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내의 근본이 원래 물고기였기 때문에 사람의 자식을 키우는 것엔 재주가 없는 것이라고 또바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또 다시 음식을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라는 어머니의 말에 사모시르는 귀찮다고 거절했지만 이번만은 어머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남편이 얘기한 대로 사모시르의 버릇을 고쳐보려 했던 것입니다. 계속된 어머니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들고 집을 나선 사모시르는 몸서리를 치며 짜증을 냈고 급기야 심부름을 가는 도중에 배가 고파오자 아버지에게 드릴 밥과 반찬 등 찬합의 음식 대부분을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몹시 배가 고파 논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들이 찬합을 가져오는 모습에 크게 기뻐했지만 그 안의 음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표정이 변했습니다. 찬합에 남은 것은 아들이 먹고남은 찌꺼기뿐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아버지는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아들의 뻔뻔한 태도가 일을 키웠습니다. 사모시르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중간에 음식을 먹은 것이 왜 잘못이냐고 대들었던 것입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아버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처음으로 손찌검을 하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못된 녀석! 아무리 물고기가 낳은 자식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 하는구나!”

 

아버지에게 맞아 뺨이 시퍼렇게 된 사모시르가 울면서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 달려나왔습니다. 그러자 사모시르는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이르면서 아까 아버지가 한 말까지 전했습니다. 어머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습니다.

 

“정말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니?”

“그렇다니까요. 엄마, 그런데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세요?”

 

어머니는 남편이 결국 자신과 한 맹세를 어겼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을 아직까지 이어주고 있던 단 하나의 약속이 깨진 것입니다. 먼 하늘에서 우뢰가 울었습니다. 그녀는 사모시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잘 듣거라. 지금 곧바로 저 뒷산을 타고 올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라. 거기 있는 나무들 중 가장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해. 절대 지체하면 안돼.”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사모시르는 엄마의 그런 무섭고도 비장한 표정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뭔가 더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언덕을 달려 올라갔습니다. 평생 처음 어머니의 말에 순종한 것입니다.

 

아이가 뒷산 정상의 큰 나무 가까이까지 간 것을 본 어머니는 집 근처 강가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강변 물내음이 짙어질수록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그녀는 원래 바다와 같이 큰 사랑을 마음 속에 담고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매일 강가에 나타나는 또바를 오랫동안 봐왔고 성실한 그가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늘 깊은 연민을 품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일부러 그에게 잡혀 그의 집에 가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원래 이곳엔 산불이 나고 기근이 닥칠 운명이었고 여러 왕국들의 전쟁에 휘말려 모든 주민들이 도탄에 빠져 죽어갈 터였지만 그녀의 존재가 그 모든 악운들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구태여 남편에게 구구절절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그런 힘이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비록 지상에서 물고기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천계의 공주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지상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또바의 말 한 마디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두 뺨을 흘러내렸고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온통 번개로 가득 찼습니다. 강물 속에 발을 딛자 그녀는 곧바로 예전의 큰 물고기로 변했고 앞을 가늠할 수도 없는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강물이 차오르며 범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불어난 강물은 모든 계곡들을 집어 삼켰고 급기야 논으로 밀려든 물길에 휘말린 또바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불어난 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수위가 올라 모든 마을들을 삼키고 마침내 거대한 호수를 이루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수마트라 메단 지역에 있는 또바 호수(Danau Toba)입니다. 그 호수 한 가운데에 있는 섬 이름은 아이의 이름을 따 사모시르 섬(Pulau Samosir)이 되었고요.

  

또바 호수 전설 아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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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어난 불이 사모시르가 타고 오른 언덕 정상의 나무까지 삼켰는지 이 전설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닥친 재앙을 바라보면서 사모시르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고작 아버지 드릴 점심 찬합을 중간에 먹어버렸다는 이유로?” 논에 밀어닥친 산더미 같은 격류를 맞은 또바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요. “고작 물고기 얘기를 좀 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가해를 가하거나 약속을 깨뜨린 사람들은 늘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한 짓에 비해 너무 과한 대가를 요구한다고 말이죠. 성마르고 화를 잘 내고 계산적이고 때로는 제멋대로에 폭력적이기도 한 바딱 사람들 남성중심적 성향이 살짝 엿보이는 민화지만 사실 그런 성향은 세계 어느 민족이나 조금씩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를 잡아먹으려 했던 또바의 청혼을 덥썩 받아준 물고기 공주는 대범한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인도네시아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인 자카 따룹(Jaka Tarub)의 전설에서 날개옷을 잃은 선녀는 그래도 최소한 쌀 한 톨로 밥 한 솥을 짓는 재주가 있었는데 또바의 물고기 부인은 그런 재주조차 없었던 걸까?

 

그녀가 또바와 결혼한 후 물고기 요리는 더 이상 그들 가족의 식탁에 올라오지 않았을까?

 

이 전설의 중심인물은 아무리 봐도 그 물고기 공주인 것 같은데 이 전설의 결과 호수와 그 가운데 섬에 남편 또바와 아들 사모시르의 이름이 붙으면서도 정작 그 물고기 공주의 이름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바 호수 전설 기념우표  

 

인도네시아의 전설은 이 또바 호수의 기원에 대한 민화를 포함해 세상 모든 여인들은 누구나 까발려서는 안되는 절대적 비밀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며 그걸 함부로 발설한 사람에겐 재앙에 가까운 무서운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끝)

 

참고자료

https://jateng.tribunnews.com/2021/08/29/dongeng-asal-usul-danau-toba-dan-pulau-samosir-cerita-rakyat-sumatera-utara?pag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