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도네시아판 선녀와 나뭇꾼: 자카 따룹 이야기 본문

인니 민속과 주술

인도네시아판 선녀와 나뭇꾼: 자카 따룹 이야기

beautician 2022. 3. 2. 11:11

자카 따룹(Jaka Tarub) 전설

 

 

자카 따룹 전설은 자바땅의 역사서(Babad Tanah Jawi)에 실린 민화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인 자카 따룹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자카 따룹은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따룹 지역의 젊은이’, ‘따룹 지역의 아무개 청년’ 정도의 뜻을 가진다. 인도네시아 남자들 사이에 흔한 이름인 ‘조코(Joko) 또는 ‘자카’란 결국 미국 슬랭에서 듀드(dude)나 맨(man)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자바어의 조코는 영어의 존 도(John Doe), 라라(Rara)는 제인 도(Jane Doe) 정도로 이름이 정확치 않은 남성 또는 여성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붙이는 호칭인 셈이다. 참고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의 이름풀이는 ‘건강한 청년’이란 뜻이다.

 

조코 따룹은 성인이 되어 끼 아긍 따룹(Ki Ageng Tarub)이라 불리게 되는데 이 이름 역시 ‘따룹지역의 존경받는 남성 지도자’ 정도의 의미여서 그의 실명이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애당초 전설, 민화 속 인물이니 본명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6세기 말에 세워져 17세기까지 자바땅을 지배하는 술탄국 마타람 왕조의 선조 격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어서 이례적으로 민화가 역사로 이어지며 역사 속 실존인물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이 전설 속 사건은 응아위(Ngawi) 거리(Gerih) 지역의 위도다렌 마을(desa Widodaren)에서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 증거로서 자카 따룹의 무덤이 그 마을에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역 노인들은 자카 따룹과 일곱 명의 선녀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위도다렌이란 마을 이름 자체도 선녀를 뜻하는 위도다리(widodari)에서 왔다고 하며 그 단어는 현재 비다다리(bidadari)라는 철자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 마을에는 자카 따룹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는 선녀들 중 한 명의 슬렌당(selendang)을 훔쳤다는 연못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어깨에 걸쳐 몸을 두르는 용도의 천 슬렌당(Selendang) .

 

자카 따룹 전설의 분석

자바땅의 역사서(Babad Tanah Jawi)는 마타람 술탄국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다. 권능왕 스노빠티로부터 시작하는 마타람의 역사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지만 스노빠티 이전의 시대, 특히 마자빠힛 왕국 시대에 대해서는 대체로 가상과 전설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한편에서는 마타람 왕국이 귀족들이 아니라 농부 가족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왕조의 정통성과 자바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마타람 제왕들의 선조에 대해 특별한 신화적 인물로 창조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그래서 본단 끄자웬(Bondan Kejawan)과 결혼한 나왕시(Nawangsih)란 인물이 특별한 여자로 그려진다. 나왕시는 인간과 선녀의 혼혈로 표사되는데 바로 자카 따룹과 선녀 사이에서 낳은 여자아이다. 이런 식의 묘사는 마자빠힛 왕국의 선조로 인간과 신의 혼혈로 그려지는 바라라톤(Pararaton – 자바 까위어로 기록된 중세 자바 문학책)의 켄 아록(Ken Arok)을 연상시킨다.

 

표준 스토리

 

자카 따룹이 7선녀를 훔쳐보는 장면 모음  

 

인도네시아의 고대 전설들이 모두 그렇듯 자카 따룹의 전설 역시 여러 버전이 있는데 자바땅의 역사서에 기록된 표준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자카 따룹은 범상치 않은 도력을 지닌 건장한 젊은이였다. 그는 신령한 산과 정글을 드나들며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산 속에는 아름답고 호젓한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우연히 거기서 목욕을 하는 일곱 명의 선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마음을 뺏긴 자카 따룹은 그중 한 명이 벗어 둔 슬렌당을 몰래 훔쳤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몸치장을 하고 하늘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이 슬렌당을 찾지 못해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으므로 다른 선녀들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놔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곤경에 빠진 나왕울란(Nawangwulan)이란 이름의 선녀 앞에 자카 따룹이 시치미를 뗴고 나타나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었고 이미 밤이 내렸으므로 선녀는 선택의 여지없이 자카 따룹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그들은 여차여차하여 결국 혼인을 하고 딸을 낳아 나왕시(Nawangsih)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왕울란은 그녀의 비밀스러운 행동에 대해 절대 묻지 말 것을 혼인 전부터 신신당부했고 자카 따룹은 흔쾌히 그러기로 약조했다. 나왕울란의 비밀이란 단 한 톨의 쌀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나왕울란은 자카 따룹에게 절대로 밥을 짓는 동안 솥뚜껑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자카 따룹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려고 밥 짓는 솥뚜껑을 살짝 열어보았다. 그 순간 나왕울란이 가지고 있던 그 특별한 능력이 사라져버려 이후 보통 여자들처럼 밥을 지어야만 했다.

 

망연자실한 나왕울란은 결국 자카 따룹을 떠난다.  

 

그 결과 곳간의 쌀이 빨리 떨어지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분투하던 중 나왕울란은 자카 따룹이 몰래 숨겨두었던 자신의 슬렌당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녀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돌아가겠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매번 지상에 돌아와 나왕시에게 젖을 물리겠다는 약조를 달았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자카 따룹이 볏단에 불을 붙이고 나왕시를 그 곁에 놓아두면 나왕울란이 하늘에서 내려와 젖을 물렸지만 결코 다시는 자카 따룹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 전설은 여기까지 것 같은데 2부가 꾸역꾸역 이어진다. 인도네시아에는 이런 식으로 속편이 이어지는 민화들이 적지 않다.

 

나왕시의 혼인

자카 따룹은 나중에 그 지역 지도자가 끼 아긍 따룹(Ki Ageng Tarub)이라 불리게 되었고 마자빠힛의 국왕 브라위자야와 절친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어느날 브라위자야 왕은 자신의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 끼야이 마헤사 눌라르(Kyai Mahesa Nular)를 끼 아긍 따룹에게 가져와 수리를 맡겼다. 성유물의 수리 유지보수는 일반 대장장이가 아니라 원래 도력이 높은 사람이 맡는 법이긴 하지만 그가 늘 사냥만 하고 다닌 게 아니라 끄리스를 벼리는 기술도 배웠던 모양이다.

 

그 끄리스 단검을 가지고 온 왕궁의 사절은 끼 부윳 마사하르(Ki Buyut Masahar)와 그의 수양아들인 본단 끄자웬(Bondan Kejawan)이란 사람이었다. 끼 아긍 따룹은 본단 끄자웬이 사실은 브라위자야 왕의 친아들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본단을 부추겨 그 지역에 함께 살게 하고 나중엔 수양아들로 삼아 아름도 럼부 뻐뗑(Lembu Peteng)으로 바꾸어 주었다. 나중에 나왕시는 어른이 된 후 럼부 뻐뗑과 혼인하게 된다.

 

자카 따룹이 죽은 후 럼부 뻐뗑은 장인의 지위를 이었고 나왕시는 아들을 낳았는데 장성한 후 끼 그따스 빤다와(Ki Getas Pandawa)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끼 아긍 그따스 빤다와는 끼 아긍 셀라(Ki Ageng Sela)를 낳는데 그는 나중에 마타람 술탄국을 세우는 권능왕 스노빠티의 조부가 되는 인물이다. 결국 자카 따룹은 스노빠티의 5대조 할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출처:

https://id.wikipedia.org/wiki/Legenda_Jaka_Tar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