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 민속과 주술

자바 태고의 왕 아지사카 전설

beautician 2022. 2. 24. 12:12

자바의 선구자 아지사카(Aji Saka)

 

구글에서 ‘아지사카’라고 검색어를 쳐보면 일본에 그런 이름의 지역이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나온다. 인도네시아 전설 속 아지사카에 대한 한국어 게재물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전혀 모르는 아지사카란 인물. 그러나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동화와 전설, 그리고 그림자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고대 인도네시아에 힌두불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자바어가 성립되는 모습이 이 전설 속에 살짝 엿보인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많은 전설들이 그렇듯 아지사카 역시 여러 버전들이 있고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큰 도력을 가진 인물로 자바의 왕으로 군림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지사카의 기원

아지사카(Aji Saka)는 부디 마제티(Bumi Majeti)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부미 마제티는 원래 신화 속 낙원으로 묘사되기도 하므로 아지사카는 신성을 지닌 인물임을 시사한다. 다른 판본에서는 마제티가 자바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지사카가 잠부위파(Jambuwipa-지금의 인도)의 사캬 족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샤카족(Shaka-Scythia)은 석가모니의 출신 부족이기도 한다. 아지사카란 이름은 그래서 ‘샤카 족의 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한편 사카(saka)가 자바어의 saka 또는 soko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중요한’, ‘기원’, ‘유래’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따라서 아지사카는 ‘태고의 왕’ 또는 ‘최초의 왕’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아지사카의 전설은 인도네시아에 힌두불교가 전래되는 모습을 시시하기도 한다. 한 영웅이 자바섬에 도착해 이곳을 다스리던 악한 거인 왕을 물리치고 문명과 질서를 가져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아지사카는 사카력(曆)의 창시자 또는 자바섬에 인도식 달력 체계를 도입한 첫 번째 왕으로 묘사된다.

 

와양 그림자극에 등장하는 아지사카는 조금 더 이슬람과 고대 인도문화가 어우러진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일단 전설과 와양 그림자극의 아지사카를 각각 나누어 보도록 자하.

 

 

1. 전설 속의 아지사카

 

자바에 문명을 도입

아지사카는 부미 마제티(Bumi Majeti) 출신의 도력 높은 젊은이로 도라(Dora)와 슴보도(Sembodo)라는 충직한 두 명의 심복을 거느렸다. 두 심복들도 서로 거의 같은 기량의 높은 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지사카가 마제티를 떠나 세상을 유랑하려 할 떄 도라에게는 자신과 동행하도록 하고 슴보도에게는 마체티에 남아 중요한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지키라고 명했다. 자기가 직접 달라고 하지 않으면 절대 내주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판본에 따라 도라와 슴보도(또는 삼바다 Sambada)가 둘 다 마제티에 남았다고도 하도 둘 다 아지사카를 따라 나섰다가 아지사카가 메당까물란 왕국에 들어가기 전 먼저 들른 끈뎅산(Pegunungan Kendeng)에 슴보도를 남겨놓고 그에게 성유물 끄리스를 맡겨 두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모든 판본에서 공통적으로 슴보도는 성유물 끄리스를 지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슴보도에게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맡기는 아지사카

 

자바섬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은 후 그곳에서 처음 세력을 이룬 것은 야만적, 폭압적이며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인 데나와(Denawa) 족이었다. 이후 인간들이 만든 메당까물란이란 왕국이 크게 번영했는데 그곳의 현명한 왕 쁘라부 데와타쯩까르(Prabu Dewata Cengkar)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또 다른 판본에서는 그가 식인 거인왕으로도 묘사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왕실 요리사가 왕의 음식을 준비하다가 사고를 냈다. 칼질을 하다가 실수로 잘린 손가락이 왕의 음식 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걸 모른 채 그 음식을 너무나 맛있게 먹은 데와타쯩까르 왕은 주방장을 불러 물은 끝에 자신에게 소름끼치도록 절정의 맛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음식 속에 들어간 손가락, 즉 인육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점차 인육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매일 인육을 요리해 식탁에 올리라고 요구했으므로 재상은 어쩔 수 없이 매일 백성들을 잡아 인육으로 조리한 음식을 왕에게 바쳐야 했다

 

자애롭던 쁘라부 데와타쯩까르 왕의 성품은 180도 달라져 잔인하고 무자비하 폭군이 되었다. 그는 백성들을 이전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식인을 하면서 점점 몸이 커지더니 거인처럼 거대해졌고 급기야 인간을 산 채로 뜯어먹기에 이르렀다. 백성들을 공포에 떨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왕에게 맞서지 못했다. 재상 역시 왕을 거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 영웅이 나타나 왕국와 백성들을 구원해 주길 갈망했다.  

 

그때 아지사카와 도라가 메당까물란 왕국에 도착했는데 적막하고 음습한 분위기에 흠칫 놀랐다. 한 메당까물란의 왕이 인육을 즐기는 폭군이란 말을 들은 아지사카는 왕을 칠 계략을 세웠다. 그는 재상을 만나 자신을 왕의 식사재료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재상은 왕국의 백성도 아닌 젊은 아지사카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지사카가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왕을 처치할 자신이 있었다.

 

데와타증까르 왕은 잘생긴 젊은이가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하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먹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말의 인간성이 남아 있던 왕은 왕국의 백성도 아닌 이가 스스로 먹잇감이 되겠다고 하니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지사카에게 그 대가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지사카는 자신의 머리에 두른 터번의 첫 길이 만한 땅을 달라고 했다. 왕은 무슨 소원이 그렇냐고 코웃음치며 그 요구를 승락했다. 어차피 아지사카가 왕의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리면 그 땅 역시 왕의 소유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쁘라부가 아지사카의 머리에 두른 천을 받아 땅을 재려는데 갑자기 천이 딱딱하고 두꺼워지더니 한없이 길어지며 폭도 넔어져 도성을 뒤덮었고 거구의 데와타쯩까르도 턴에 밀려 남쪽 바다까지 밀려나버렸다. 아지사카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 왕은 바다 속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를 밀어내던 천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그를 칭칭 감아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 식인 습관으로 인간이 아닌 미지의 존재가 되어 버린 데와타쯩까르는 죽지 않고 한 마리의 거대한 흰 악어로 변해버렸다.

 

쁘라부 데와타쯩까르를 남쪽 바다에 내동댕이 치는 아지사카

 

쁘라부 데와타쯩까르를 몰아낸 아지사카는 스스로 메당까물란의 왕이 되었다.

 

자바 문자의 기원

대관식을 마친 후 아지사카는 도라를 시켜 마제티에 가서 자신의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마제티에 간 도라가 슴보도를 만나 아지사카의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달라고 요구하자 슴보도는 아지사카 자신 외에는 다른 이에게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내주지 말라는 아지사카의 당부를 기억하고 도라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도라 역시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이 각각 아지사카에게 받은 명령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띤 언쟁 끝에 결국 칼을 뽑아들고 무력으로 맞붙었다. 그들은 서로 돈독한 친구였으나 아지사카에 대한 충정이 우정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전투는 점차 치열해졌고 마지막에 서로 궁극의 도력을 끌어내 하늘과 땅을 쪼개듯 싸우다가 동시에 서로의 목숨을 끊고 말았다. 두 사람의 도력이 우열을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라와 슴보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지사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충직한 심복을 서로 싸우게 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슬퍼하며 한 수의 시를 지었다. 이 시문은 자바문자의 알파벳 배열이기도 한데 그 자체가 완벽한 시문이 된다. 하나짜라카(hanacaraka)라고도 부르는 이 시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Ha Na Ca Ra Ka = ono wong loro (ada dua orang) 두 명의 사절

Da Ta Sa Wa La = podho kerengan ( mereka berdua berantem / berkelahi )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Pa Dha Ja Ya Nya = podho joyone ( sama-sama kuatnya ) 같은 기량으로 서로 싸우니

Ma Ga Ba Tha Nga = mergo dadi bathang lorone ( maka dari itu jadilah bangkai semuanya / mati dua-duanya karena sama kuatnya) 모두 죽고 마는구나

 

거대한 뱀 자카 링룽(Jaka Linglung)

자카 링룽의 이야기는 아지사카 전설의 외전 격이다.

 

다다빤 마을의 한 노파가 알을 하나 발견해 헛간에 두었는데 얼마 후 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뱀 한 마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놀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뱀을 죽이려 했으나 뱀은 신기하게도 사람의 말을 했다. “난 아지사카의 아들이다. 나를 그에게 데려가 다오.”

 

놀란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며 뱀을 도성으로 데려갔다. 아지사카는 그 뱀을 보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남쪽바다의 흰 악어를 죽일 수 있다면 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말했다. 흰 악어는 폭군 쁘라부 데와타쯩까르가 변한 마물로 남쪽 해안 마을들을 위협하곤 했다.

 

뱀은 곧바로 가공할 힘을 발산하며 거대한 흰 악어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 마침내 숨통을 끊었고 아지사카는 약속대로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아지사카는 그에게 자카 링룽(Jaka Linglung)이란 이름을 주었는데 ‘멍청한 남자’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궁전에 들어온 자카 링룽은 궁에서 기르던 모든 가축들을 게걸스럽게 잡아먹어 왕의 진노를 샀다. 왕은 비전의 도술로 그를 꼼짝도 못하게 꽁꽁 묶어 뻐상아(Pesanga) 정글로 추방하는 벌을 내렸다. 아지사카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자카 링룽을 아지사카는 정글 속에서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더 많은 짐승과 사람들을 헤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를 주었다. 오직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어느날 정글 속에서 아홉 명의 남자아이들이 놀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이리저리 뛰며 비 피할 곳을 찾았다. 운 좋게도 그들은 동굴을 하나 발견해 아홉 명 중 여덟 명이 그 동굴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하면서 피부병이 있던 다른 아이 한 명을 더럽다며 동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갑자가 동굴의 입구가 닫히면서 여덟 명의 아이들이 동굴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 동굴은 자카 링룽의 입 속이었고 여덟 명의 아이들은 자카 링룽의 밥이 되었다.

 

 

 

2. 와양 그림자극 속의 아지사카

한편 와양 그림자극 속의 아지사카는 일반 전설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신의 자손 아지사카

와양 그림자극에서는 롱고와르시토(onggowarsito) 버전과 응아시난(Ngasinan) 지역 버변의 스랏 뿌스타까라자 뿌르와(Serat Pustakaraja Purwa)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아지사카는 여기서 바라타 아지사카(Batara Aji Saka), 자카 셍깔라(Jaka Sengkala), 음뿌 셍깔라(Empu Sengkala), 쁘라부 위사카(Prabu Wisaka)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의 아버지 바타라 앙가잘리(Batara Anggajali)와 할아버지 바타라 라마야디(Batara Ramayadi)는 바타라 구루(Batara Guru)라는 주신을 중심으로 한 모든 신들을 위해 신령한 장비를 만들어주는 대장장이 신이었다.

 

바타라 구루

 

바타라 앙가잘리는 힌두교도 왕이 다스리는 나즈란 왕국(kerajaan Najran)의 데위 사카 공주와 결혼했다. 나즈란 왕국의 왕 쁘라부 사킬(Prabu Sakil)은 예전에 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바타라 앙가잘리가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지사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바타라 구루의 부름을 받아 하늘의 신령한 성유물들을 만들게 되었으므로 아지사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어느날 아지사카는 왕국의 제왕인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가 보니 아지사카는 바다 위의 허공에서 손으로 신들의 병장기를 만들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곧바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아지사카는 아버지의 놀라운 도력에 감명받아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를 거절하면서 사실은 아지사카의 할아버지인 바타라 라마야디가 훨씬 더 높은 도력을 가진 신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찾아가니 아지사카는 하늘 위에서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천상의 무기들을 척척 만들어내고 있는 할아버지 바타라 라마야디를 발견했다. 아지사카는 자신이 손자임을 밝히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바타라 라마야디는 그 부탁을 거절하면서 자신보다 더 높은 도력을 가진 바타라 구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모든 신들의 신인 바타라 구루가 아지사카를 제자로 받아들일 리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바타라 구루가 자기 아들을 가르쳤는데 지금 신들 사이에 가장 도력이 높은 바타라 위스누(Batara Wisnu)라고 귀띔해 주었다. 바타라 위스누는 마침 지상의 이스라엘(Israil) 땅에 내려가 있었다. 아지사카는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바타라 위스누를 찾아갔다. 거기서 바타라 위스누는 이스라엘 민족의 우스마나지 대신관(Pendeta Usmanaji)과 지혜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아지사카는 자신을 소개하고 바타라 위스누에게 스승이 되어달라 부탁했고 바타라 위스누는 이에 응해 아지사카에게 신들의 도술과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아지사카는 우스마나지 대신관으로부터도 영력과 신학을 배웠다. 나중에 바타라 위스누가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자 아지사카는 이스라엘 땅을 주유하기 시작했다.

 

자바땅 테라포밍

그렇게 주유하던 중 아지사카는 천상의 신들이 마시는 영원한 생명수 띠르타마르타 까만달루(Tirtamarta Kamandalu)를 손에 넣게 되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생명수를 마시면 영생할 수 있었다. 생명수를 마신 아지자카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세상을 유랑하면서 도술과 영력을 극한까지 닦아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걷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던 아지사카는 자바땅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음뿌 셍깔라’라는 이름의 수행자 행세를 했다. 음뿌 셍깔라는 당시 자바 땅에서 설치며 기염을 토하던 온갖 마물과 악귀들에게 날짜 세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은 ‘빠사란’(Pasaran)이라고 알려진 자바의 5요일 날자 계산법을 만든 것이다. 그런 다음 음뿌 셍깔라는 그간의 고행을 통해 배운 특별한 술법을 사용해 자바땅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음뿌 셍깔라는 자바땅에 올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에 지배당하고 있었는데(그렇다면 대략 예수님 시절?) 로마인 2만 명 정도를 데려와 자바땅에 살게 했다. 하지만 자바땅은 그들이 살던 곳과는 생활환경이 전혀 달랐고 자바땅의 마물들이 그들을 괴롭혀 병들고 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의 숫자는 200명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모두 로마로 돌아가 자바땅은 다시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로마인들의 이주가 실패하자 음뿌 셍깔라는 자바땅 다섯 방위에 제물을 바치며 그 땅의 음습함을 한껏 줄여 인간들이 살기에 쾌적한 곳으로 변모시키려 했다. 말하자면 테라포밍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제물을 바친 후 음뿌 셍깔라는 이번엔 힌두스탄, 즉 인도에 가서 자바섬에 보낼 사람들을 모으려 했다.

 

그래서 힌두스탄의 수라띠 왕국(Kerajaan Surati)에 도착한 그는 왕을 만나 자신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런데 마침 수라띠 왕국의 쁘라부 이와사카 왕은 음뿌 셍깔라의 아버지 바라타 앙가잘리의 화신이었으므로 그는 음뿌 셍깔라를 맞아 크게 기뻐하며 라덴 아지사카(Raden Aji Saka)라는 이름을 주고 왕세자로 삼았다.

 

라덴 아지사카는 쁘라부 이와사카의 도움을 받아 힌두스탄의 집 없는 사람들, 신관들, 가난한 백성들을 모아 자바땅에 살게 할 목적으로 먼 길을 떠났다. 부유한 사람들도 적잖게 자기 이름을 올리고 함께 그 행렬에 올랐다. 그래서 아지사카는 그 행렬을 지휘할 10명의 젊은이들을 지도자로 뽑아 생활방식, 영력, 의료, 통치기법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1만 명 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자바땅에 당도했다. 아지사카는 그들을 열 개 집단으로 나누어 자바땅 각 방향으로 흩어져 살도록 했다. 그 열 개의 집단은 아지사카가 사사한 열 명의 젊은 지도자들이 각각 이끌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고 생육하여 번성하여 자바땅에 가득 찼다.

 

사카력(曆) 창시

자바땅에 사람들이 번성하게 한 후 아지사카는 이스라엘 땅 옆의 응아르비(Ngarbi)족의 땅(지금의 아랍지역)에 가 그곳에서 응아르비 민족의 최고고문이 되어 수십년을 지냈다.

 

그런 후 다시 자바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들뜬 마음으로 보러 왔을 때 인간들의 문명이 무너지고 규칙도 지성도 없이 짐승처럼 살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들을 이끌어 문명과 생활방식을 가르쳐줄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지사카가 세운 10명의 젊은 지도자들의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지사카는 그곳에 메당까물란 왕국(Kerajaan Medang Kamulan)을 세우고 스스로 쁘라부 위사카(Prabu Wisaka)란 이름의 왕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문명과 생활방식을 가르쳤고 날짜를 세는 방식도 다시 가르쳤다. 이번엔 5요일 시스템과 함께 7요일 시스템도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두 개의 요일을 갖게 되었고 그 두 요일 시스템의 조합은 결국 35개 요일 체계가 되었는데 그것을 지금도 자바에서는 슬라빤(selapan)이라 부르고 있다.

 

그는 달의 공전을 계산해 이를 기준한 음력을 만들어 짠드라 셍깔라(Candra Sengkala)라고 불렀고 지구에서 바라본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양력을 만들어 이를 수리야 셍깔라(Surya Sengkala)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 후 그는 짠드라 셍깔라와 수리야 셍깔라의날자 계산법을 연계했고 주간, 5요일 체계인 빠사란(pasaran), 35요일 체계인 슬라빠난(selapanan)을 체계화했다. 이렇게 쁘라부 위사카가 만든 날짜 계산법은 이후 사카력(曆-Kalender Saka)이라는 이름이 붙어 후세에 전해졌다.

 

쁘라부 위사카는 혼인하여 많은 자녀를 낳았고 그중 한 명에게 왕좌를 넘겨준 후 다시 아지사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 세상을 주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때가 오자 바타라 구루가 그를 신으로 승격시켜 천상으로 이끌어 바타라 아지사카라는 이름을 주었다.

 

와양 그림자극에 등장하는 아지사카는 자바 전설에 비해 훨씬 거대한 세계관을 토대로 아랍과 자바 사이, 천계와 인간계 사이를 오가는 스케일을 보여준다. 하지만 식인왕 쁘라부 데와타쯩가르나 충직한 두 명의 심복 도라와 슴보도가 등장하지 않는 이 이야기가 과연 자바 전설 속 아지사카와 같은 인물을 다룬 이야기인지 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참고:

https://id.wikipedia.org/wiki/Aji_Saka

https://www.daerahkita.com/artikel/325/kisah-aji-saka-dan-asal-usul-aksara-jawa-hanacaraka-cerita-rakyat-jawa-tengah

https://bp3d.boyolali.go.id/index.php/artikel/item/144-legenda-ajisaka-dan-asal-mula-aksara-jawa

https://www.kozio.com/cerita-rakyat/#Cerita_Rakyat_Aji_S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