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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판 콩쥐팥쥐-흥부전: 바왕메라 바왕뿌띠 본문
바왕메라 바왕뿌띠
바왕메라 바왕뿌띠의 동화는 리아우주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이복자매와 계모의 이야기다.
바왕메라(Bawang merah)는 모습은 마늘 같지만 사실은 작은 빨간 양파 같은 것이고 바왕뿌띠는(bawang putih)는 우리가 일상에 쓰는 마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빨간 마늘, 하얀 마늘이라고 이 동화를 번역하자면 좀 깨는 것 같아 일단 원문 그대로 바왕메라, 바왕뿌띠라고 부르기로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왕뿌띠(마늘)와 바왕메라는 일견 모습은 비슷하고 색깔만 틀린 듯 보이나 그 성격은 이 동화 속 두 소녀들처럼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인도네시아 음식에 두 재료가 함께 쓰이는 것은 전혀 다른 두 소재가 어우러져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인데 이 동화 역시 두 재료가 어우러져 얼마나 좋은 맛을 내는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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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바왕뿌띠란 소녀가 이복언니 바왕메라 그 어머니인 계모와 함께 살았는데 계모와 바왕메라는 악독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왕뿌띠를 마치 하녀처럼 부리며 모든 집안일을 시켰다.
전에 친부모가 살아 있을 때 바왕뿌띠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는 크게 장사를 하며 자주 외지로 다니며 무역일을 했고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바왕뿌띠를 사랑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후 새엄마를 맞았고 바왕뿌띠보다 나이 많은 언니 바왕메라가 함께 들어왔다. 그때부터 바왕뿌띠의 모든 삶이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났다. 이제 바왕뿌띠는 악랄한 계모와 언니 바왕메라에게 천대받으면서 하녀처럼 모든 시중을 들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강가에서 빨래를 할 때 바왕메라가 아끼는 슬렌당 하나가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니 슬렌당이 없어진 것을 안 바왕메라가 불같이 화를 냈다.
”바보 같은 것! 그 슬렌당을 찾지 못하면 집에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마!”
결국 바왕뿌띠는 강변을 따라 내려가며 슬렌당을 찾다가 밤이 깊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서 여전히 강변을 헤매던 바왕뿌띠는 작은 오두막을 발견했다. 가뜩이나 숲속에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무서워하던 바왕뿌띠는 급히 오두막에 다가가 도움을 청했다.
“여보세요. 실례합니다.”
그러자 잠시 후 한 노파가 문을 열여 바왕뿌띠를 맞았다.
“넌 누구니, 아가야?”
“할머니, 저는 바왕뿌띠라고 해요. 강물에 흘러간 옷을 찾던 중에 밤이 깊고 말았는데 하루 밤만 묵어갈 수 있도록 해주실 수 있나요?” 바왕뿌띠는 이렇게 간청했다.
할머니는 흔쾌히 문을 열고 바왕뿌띠를 오두막 안으로 맞아들였다.
“되고 말고. 그런데 네가 찾던 옷이 혹시 빨간 색이었니?” 할머니가 물었다.
바왕뿌띠가 찾고 있던 옷을 할머니가 건져 두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 옷을 돌려주기로 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자기랑 일주일만 같이 지내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에 바왕뿌띠도 아무 의심없이 할머니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찾아준 것을 고마워했다.
일주일을 할머니와 함께 지낸 바왕뿌띠는 이제 집에 가기 오두막을 떠나려 했다. 그 일주일 동안에도 열심히 집안일을 하며 할머니를 봉양한 것에 감명받은 할머니는 바왕메라와 빨간 슬렌당을 돌려주었을 뿐 아니라 다른 선물도 안겨주었다.
“벌써 돌아갈 날이 되었다니 섭섭하구나. 네가 열심히 집안일을 도와주어서 여간 기쁘지 않았단다. 약속한 대로 여기 슬렌당을 잊지 말고 가져가거라. 그리고 저 두 개의 노란 박 중 하나를 선물로 주고 싶은데 어떤 걸 가져가겠니?”
바왕뿌띠는 사례를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할머니의 성의를 생각해서 거절할 수 없어다, 그런데 집까지 들고가야 했으므로 너무 무겁지 않아 보이는 작은 것을 골랐다. 바왕뿌띠에게서 작은 박을 선택한 이유를 들은 할머니는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바왕뿌띠는 자신이 찾아온 슬렌당을 바왕메라에게 돌려주었다. 며칠 만에 돌아온 것인데도 바왕메라와 계모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밀린 집안일들 다시 바왕뿌띠에게 떠넘겼다. 바쁜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바왕뿌띠는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박을 요리하려고 반으로 갈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 안에서 금덩어리와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본 계모는 시기심이 치밀어 올라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모든 금과 보석을 빼앗고는 그 박을 어디서 구했는지 말하라며 윽박질렀다.
바왕뿌띠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탐욕스러운 계모는 바왕메라에게 바왕뿌띠가 했던 것과 똑 같은 일을 시켰다. 그러면 바왕메라가 더 많은 금과 보석이 들어있는 큰 박을 들고 오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슬렌당을 강물에 흘려보낸 바왕메라는 하류의 강가 오두막집에서 그 할머니를 만나 일주일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바왕메라는 바왕뿌띠와 달리 너무 게을러 할머니의 일을 전혀 돕지 않았다. 일주일 후 바왕메라가 집에 돌아가게 되었을 때 슬렌당을 돌려준 할머니가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자 바왕메라가 따져 물었다.
“할머니, 일주일 함께 있어 주었으니 나한테도 박을 하나 선물로 줘야 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박을 내놓고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바왕메라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큰 것을 고르더니 고맙다는 말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달려갔다.
바왕메라가 큰 박을 들고 돌아온 모습을 본 어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박에서 바왕뿌띠보다 더 많은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횡재하는 모습을 바왕뿌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바왕뿌띠에게는 어마어마한 빨래감을 안겨 강에 빨래하러 보냈다. 그런 다음 계모와 바왕메라는 방안에 박을 가지고 들어가 방문까지 철저히 걸어 잠갔다.
그러나 마침내 열어본 박 안에서는 금은보화 대신 수백 마리의 독사들이 쏟아져 나와 계모와 바왕메라를 물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을 도울 수 있는 오직 한 사람 바왕뿌띠를 강가로 빨래를 보낸 것, 금방 방을 박차고 나갈 수 없게 방문을 걸어 잠근 것을 후회했으니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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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왕뿌띠와 바왕메라의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계모, 이복자매, 박 속의 보물 같은 이미지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콩쥐팥쥐와 흥부전을 대충 섞어 놓은 것 같다.
현대적 측면에서 보면 이 동화는 가정폭력의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세월호 참사나 모 연예인 자살 당시 그간 양육에 나몰라라 하며 자녀를 십 수년 방치했던 친모가 자녀의 사망보험금을 타거나 유산을 받으려고 나타나는 행태의 원형을 머나먼 적도 너머 나라의 오래된 동화에서 만나게 된다는 면에서 인간의 파렴치함 역시 옛날부터 국제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씁쓸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불쑥 떠오르는 생각들.
1. 왜 두 이복자매를 바왕뿌띠와 바왕메라에 비교했을까? 매우 절묘한 비유였다고 보는데 늘 같이 섞여 있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두 개체를 비교하기에 마늘과 바왕메라를 배치하는 것 이상은 있을 수 없다.
2. 박 안에 당연한 내용물 대신 보석이나 독사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정시분석학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왜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을 하필이면 박 안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했을까? 흥부전을 포함해서.
3. 인도네시아 사회에서(특히 리아우 지역에서) 계모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애로운 새엄마도 얼마든지 많은데. 리아우는 역사적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기독교, 중국, 싱가포르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인데 그런 배경이 이 동화에도 영향을 주었을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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