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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꾼당 (Malin Kundang) 이야기

beautician 2022. 2. 22. 11:58

말린 꾼당 (Malin Kundang) – 인도네시아 동화

 

옛날옛날 수마트라 빠당 지역 아이르 마니스 해변(Pantai Air Manis) 어촌 마을에 만데 루바야(Mande Rubayah)라는 과부가 말린 꾼당(Malin Kundang)이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아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말린 꾼당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부지런하고 순종적인 아이였습니다.

 

늙은 만데 루바야는 자신과 외동아들의 생계를 위해 과자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한번은 말린이 중한 병에 걸려 몸져누웠고 목숨마저 위태로웠으나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담긴 간병을 받아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병석에서 일어난 아들을 더욱 더 사랑했고 아들 역시 그런 어머니를 더욱 공경했죠.

 

그러다가 말린이 성인이 된 어느날 아이르 마니스 해변에 큰 배가 항구에 들어왔는데 말린은 그 배를 타고 도시로 가고 싶다며 어머니의 허락을 구했습니다.

 

“가지 말거라, 말린, 타지에서 너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길까 두렵구나. 그러지 말고 그냥 여기 어미와 함께 지내자꾸나.” 말린이 떠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슬픈 마음을 감추지 않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에요” 말린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달랬습니다. “어머니,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 지 몰라요. 이곳은 일년 내내 큰 배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기도 하잖아요. 난 우리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어머니, 허락해 주세요.” 말린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 허락하마. 하지만 빨리 돌아오거라. 어미가 널 항상 기다리마.”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허락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자꾸만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가누며 아들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먹을 음식을 바나나잎으로 정성스럽게 싸서 일곱 뭉치를 만들어 여행을 떠나려는 말린에게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말린 꾼당은 어머니를 고향에 홀로 두고 타지로 떠났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만데 루바야에게 하루하루가 더욱 길어진 듯 느릿느릿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아들이 이제 어디쯤까지 갔을까 하며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고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늘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항구에 타지의 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아들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혹시 우리 아들 말린을 보았나요? 그 애가 잘 지내고 있던가요? 언제 돌아온답디까?”

 

하지만 배를 타고 온 선장이나 선원들 중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말린은 아무런 소식이나 물건도 어머니에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록 만데 루바야는 늘 아들의 소식을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더 나이를 먹고 노인의 허리도 더욱 굽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말린을 태워갔던 배의 선장이 만데 루바야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만데, 소식 들었어요? 당시 아들이 엄청난 부자 귀족의 딸과 결혼을 했어요.”

 

“말린, 어서 돌아오거라, 아가. 어미는 이미 너무 늙어버렸어. 말린 언제 돌아오느냐…?” 만데는 매일 밤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반드시 돌아오리라 믿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배 한 척이 해변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해변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그 화려한 배가 어느 술탄이나 왕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군거렸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축제를 하듯 즐거워하며 그 배의 입항을 환영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도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아들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언젠가 빨리 돌아와 자신을 찾아봐 줄 것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선장으로부터 말린의 소식을 들은 이후 또 다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마침 큰 배가 도착한 것입니다. 만데 루바야는 아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리란 큰 기대를 품었습니다.

 

배가 선창에 닿자 한 쌍의 젊은이들이 배의 난간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이 햇살을 받아 광채를 띄었습니다. 사람들의 환대에 그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빛났습니다. 만데 루바야도 사람들 사이를 뚫고 배에 가까이 갔다가 배의 난간에 선 젊은 남자를 보고 심장이 멎을 듯 놀랐습니다. 그녀는 그 젊은이가 자기 아들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배에서 내린 다리를 타고 선창으로 내려오자 주변에 모여드는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만데 루바야가 누구보다도 빨리 아들 말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어디론가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듯 곧장 말린를 꼭 껴안았습니다.

 

말린 꾼당을 껴안은 만데 루바야와 이 모습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며느리

 

“말린, 내 아들아. 내 아들, 맞지?” 기쁨에 겨운 만데가 흐느낌을 참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리 오랫동안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니?”

 

말린은 누더기를 걸친 노파가 자신을 끌어안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노파가 자신의 어머니란 것을 믿을 수 없었어요. 그가 뭔가 말하려고도 하기 전 그의 아름다운 부인이 노파에게 침을 뱉으며 말했습니다.

 

“이 흉측한 노파가 당신 어머니라고? 왜 처음부터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당신 어머니가 우리와 같은 높은 귀족이라고 하지 않았어?” 부인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말린은 놀란 듯 어머니를 밀쳤고 만데 루바야는 해변 모래사장에 뒹굴었습니다. “이 여자는 미쳤어! 이 사람은 내 어머니가 아니야!” 말린은 거칠게 자기 어머니를 부인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아들의 행동을 믿을 수 없어 주저앉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말린, 말린아, 내 아들아, 난 내 어미야. 아들아. 왜 나한테 이리 하느냐? 응?”

 

하지만 말린 꾼당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인에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말린은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는 어머니를 쳐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친 여자야! 내 어머니는 당신같이 생기지 않았어. 비천하고 더러운 여자가!” 그 말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만데 루바야는 모랫바닥에 엎드려 울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마을사람들도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역시 그 젊은이의 모습에서 예전 같은 마을에 살았던 말린 꾼당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허겁지겁 서둘러 배에 올랐고 그들의 배는 급히 닻을 올리고 항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슬픔에 가득 찬 만데 루바야를 위로조차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만은 그렇게 홀로 모래사장에 남겨졌습니다.

 

그녀가 잠시 혼절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말린의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 멀리 항해해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수평선 저편에 그 배의 하얀 돛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이 자신에게 그런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올리며 아픈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원했습니다.

 

“하나님! 만약 저 젊은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면 아까 제가 한 행동을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저 젊은이가 내 아들 말린 꾼당이 맞다면, 신이시여, 당신의 정의를 바로 세워주세요!”

 

그녀는 이렇게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화창한 햇살이 비치던 바다 한 가운데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폭풍우에 말린의 배는 가랑잎처럼 갈팡질팡 흔들리다가 번개가 내리 꽂히면서 단번에 두 동강이 났고 그 선체와 파편들은 파도를 타고 아이르 마니스 해변으로 밀려왔습니다.

 

밤새 포효하던 폭풍우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잠잠해졌습니다. 해변에 가까이 밀려온 배의 잔해들은 밤사이 돌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린이 타고 있던 배였습니다. 그 돌과 바위들 중엔 사람의 모습을 닮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불경한 행동을 한 말린의 저주를 받아 돌로 변한 것이었습니다. 물 속에 반쯤 잠긴 그 바위 사이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 물고기들은 말린 꾼당의 부인이 저주를 받아 변한 것으로 물고기가 되어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아이르 마니스 해변가의 배와 인간을 닮은 바위들 사이로 큰 파도가 칠 때면 어디선가 사람들의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것은 마치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며 부르짖는 말린 꾼당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돌이 된 말린 꾼당일까?  
말링꾼당과 배의 잔해들

 

출처: 히스토리닷아이디

https://histori.id/kisah-malin-kundang-anak-durhaka/

 

 

읽고나서 드는 생각

 

1. 모계사회인 미낭까바우에서 어머니에게 불경스럽게 군다는 것의 의미?

2. 불효자를 친엄마가 저주하여 죽게 하는 것을 인도네시아인들 또는 미낭까바우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3. 왜 말린 꾼당은 그냥 그렇게 배와 함께 가라앉아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해변으로 밀려와 석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4. 어머니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면 말린 꾼당은 왜 배를 몰아 아이르 마니스 해변까지 온 것일까?

5. 빠당 어촌마을의 가난한 말린 꾼당이 큰 도시로 나가 귀족가문의 영애와 결혼하면서 자신도 높은 귀족 가문이라고 속일 정도였다면 말린은 이미 크게 성공한 상태였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그건 미낭까바우 사람들이 계산과 사업에 능하다는 뜻이 될까?

6. <판데르베익호의 침몰>(함카 1939)에도 자이누딘이 하야티에게 보낸 편지 중 외지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노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이 말린 꾼당 전설의 데자뷰일까?

 

말린 꾼당 기념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