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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상아 파이프

beautician 2014. 7. 25. 13:19


광산을 하다보면 돈이 들어가야 할 곳도 선물이 들어가야 할 곳도 릴리에게는 산적해 있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릴리가 급히 전화를 걸어와 상아파이프를 구해달라 부탁했습니다. 옛날에 토속공예품점에서 많이 봤던 기억이 있어 흔쾌히 OK 했지만 금액이 만만치 않으리란 우려가 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공예품점에 상아파이프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코끼리의 상아를 채취하거나 그것으로 뭔가 공예품을 만드는 것은 이미 국제협약에 의해 세계적으로 금지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몽인시디거리의 빈따라(Bintara) 상점이나 빠사라야백화점 5층, 사리나백화점 등을 뒤져보았지만 허접한 소형 담배모양 파이프를 발견한 게 전부였어요. 



사실 정말 상아인지, 플라스틱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수라바야 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자카르타 시내에서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Jl. Surabaya라는 거리가 있는데 그곳엔 골동품상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거기라면 제대로 된 상아파이프를 구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를 넘고 있었습니다. 막히는 길을 뚫고 도착한 그곳은 이미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달랑 한군데만 열고 있었습니다.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들었죠. 거기서 구할 수 있었던 것들은 모두 자잘한 것들 뿐이었어요.  시간에 쫒겨 부득이 이것들을 사다 주었지만 릴리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실패로 끝난 상아파이프 구매작전 이후 몇 개월이 흘러 난 호치민에 갔었는데 거기 벤탄시장에서 제대로된 상아파이프를 만났습니다.


"이거 상아 맞죠?"

"아뇨. 나무로 만든 건데요?"


뭐라? 내가 아무리 물건 보는 눈이 없어도 나무랑 상아는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은 극구 목제제품이라 우기고 있었습니다.

베트남도 상아제품은 더 이상 생산해서도, 판매해서도 안되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공안처럼 보였던 걸까요? 


"그래요, 그럼, 나무로 만든 이 상아파이프..., 아니 나무파이프 살게요. 싸줘요."


그렇게 해서 말도 안되게 싼 가격으로 구매한 상아파이프는 자카르타 귀임 후  내 집 장식장 위에서 하루 밤을 묶고 다음 날 릴리의 손에 넘겨졌어요. 릴리는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 파이프 걸개는 나무로 만든게 맞아요.



201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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