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말 상아인지, 플라스틱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수라바야 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자카르타 시내에서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Jl. Surabaya라는 거리가 있는데 그곳엔 골동품상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거기라면 제대로 된 상아파이프를 구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를 넘고 있었습니다. 막히는 길을 뚫고 도착한 그곳은 이미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달랑 한군데만 열고 있었습니다.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들었죠. 거기서 구할 수 있었던 것들은 모두 자잘한 것들 뿐이었어요. 시간에 쫒겨 부득이 이것들을 사다 주었지만 릴리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실패로 끝난 상아파이프 구매작전 이후 몇 개월이 흘러 난 호치민에 갔었는데 거기 벤탄시장에서 제대로된 상아파이프를 만났습니다.
"이거 상아 맞죠?"
"아뇨. 나무로 만든 건데요?"
뭐라? 내가 아무리 물건 보는 눈이 없어도 나무랑 상아는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은 극구 목제제품이라 우기고 있었습니다.
베트남도 상아제품은 더 이상 생산해서도, 판매해서도 안되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공안처럼 보였던 걸까요?
"그래요, 그럼, 나무로 만든 이 상아파이프..., 아니 나무파이프 살게요. 싸줘요."
그렇게 해서 말도 안되게 싼 가격으로 구매한 상아파이프는 자카르타 귀임 후 내 집 장식장 위에서 하루 밤을 묶고 다음 날 릴리의 손에 넘겨졌어요. 릴리는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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