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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뜨렝갈렉(Trenggalek)의 망간광산

beautician 2014. 7. 8. 14:03


이번엔 Kapok Fibre 건으로 방문했던 동부자바의 수라바야와 그 인근지역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뜨렝갈렉이라는 이름의 까부빠뗀(Kabupaten)이 나옵니다.

한국으로 치면 '군'단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전통적으로 좋은 망간광산들이 많이 산재합니다. 2008년도에 릴리의 조카 딴띠(Tanti)와 함께 현장을 가보았습니다.

딴띠는 자카르타의 뜨리삭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재원이고 지금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인 Bank Indonesia에 근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릴리의 광산조직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기도 해요. 늘 잘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광산으로 올라가는 길엔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물론 데이빗은 열쇠를 가져왔죠.








현장엔 이미 채굴하고 있는 회사들도 있었고 원시적 채굴방법으로 이런 포대를 만들어 업자들에게 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석탄이나 니켈같이 지표면에서부터 전체면적을  포크레인으로 파서 채굴하는 노천광들과는 달리 망간이나 납 등은 주민들이 특별한 장비없이 채굴할 경우엔 이렇게 광맥을 따라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우기가 되면 갱도는 물에 잠기고 때로는 갱도가 붕괴해서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종종 신문기사에 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이 이렇게 마구 파해쳐져 있는 모습은 좀 안타까웠어요. 게다가 우리가 survey 하러온 이 부지는 누군가 허가를 받아 놓고 대지 위의 나무들만 베어서 팔고 실제로 광산을 개발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정글이어야 할 이 산 위엔 큰 나무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이 친구랑 현장 다니던 시절이 많이 그립네요.








참 위험하게들 파고 들어갔습니다.


밤길을 가다 이런 구멍에 빠지면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긴 아무런 위험표지판 같은 것이 없었어요.





저 아래에선 다른 광산업자들이 좀 제대로 채굴을 하고 있었어요.











얜 가끔 이렇게 포즈도 잡아 주고요.




이 날은 일단 좋은 망간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는 것만 확인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해에 인디아인 라오라는 브로커와 함께 이 지역을 다시 찾았습니다.





오른쪽의 이 친구는 Rao라는 인디아인입니다.

뭄바이에서 크게 사업을 하다가 수백만불의 빚을 지고 인도넨시아에 넘어왔었죠. 한동안 릴리의 좋은 친구였고 인도네시아에서의 광산사업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릴리가 유치한 Nava Bharat과의 계약을 가로채 그들의 현지대행업무를 하다가 잠비(Jambi)에서 석탄으로 6백만불 정도의 손해를 회사에 입힌 후 어디론가 잠적해 버린 인물이죠. 하지만 2009년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열심히 광산을 돌아다니며 광권개발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새하얀 작디쉬 할아버지는 Nava Bharat에서 직접 보낸 수석 지올로지스트입니다. 매우 지혜롭고, 그러나 그가 말하는 영어는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던 채식주의자 할아버지.,




왼쪽의 암석괴물이 라오를 잡아 먹으려 노려보고 있습니다.



























여긴 2008년에 딴띠와 갔던 바로 그 산이죠.






내 에이거 등산용 신발.  이 신발로 인도네시아 전국의 광산들을 다녔습니다.


산에 오르면 정말 좋은 것은 광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근사한 경치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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