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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사랑과 연애가 마침내 끝나면

beautician 2021. 9. 14. 11:18

뻴렛주술

 

 

인도네시아 귀신 이야기가 흥미로운 부분도 있지만 귀신들 종류나 관련 문화가 너무 다르면 한국인으로서 좀 이해가 잘 안되어서 왜 무서워야 하는지 포인트가 잡히지도 않고 급기야 재미마저 없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 블로그엔 귀신 관련 포스팅이 130편 정도 있는데도 별로 조회수가 높지 않아요. 역대 지속적으로 조회수가 나오는 포스팅은 '베트남어 관용표현'(퍼온 글), '인도네싱 코로나 상황 업데이트' 등이었고 귀신 글들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상당한 반응이 있었던 건 뻴렛주술(Ilmu Pelet)에 대한 것이었어요. 뻴렛주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나를 혐오하는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제로 심는 주술입니다. 한번 걸리면 내 사생팬이 되어 날 보지 못하면 밥도 못먹고 바짝바짝 야위어 가게 되는 강력한 주술이죠.

 

바로 눈치챘겠지만 저런 건 사랑이 아니라 고문이자 복수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내가 저 여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뻴렛주술을 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거부하거나 나와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저 여인을 망가뜨리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시전하는 것입니다. 그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으니 웬만한 집념이 없으면 이 주술을 걸 수 없습니다. 상당한 기간의 금식과 목욕재개, 그리고 매일 밤 수십 번 또는 수백 번에 걸쳐 특정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 물론 그 여인의 체취가 묻은 무언가, 즉 옷가지나 머리카락, 지갑, 손수건 같은 것이 매개체가 됩니다. 주술을 담은 소금 같은 것을 여인이 먹는 음식에 뿌리면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됩니다. 이제 주술이 발동되면 그 여인은 내가 말하는 것은 그게 누굴 죽이라는 것이든 뭘 훔치라는 것이든 무조건 듣게 되고 내가 처절하게 거부하고 차버리더라도 끝끝내 나한데 메달리게 됩니다.

 

물론 이건 남자를 대상으로도 마찬가지로 작동합니다.

 

관련된 준비물, 금식방법과 주술의 제반사항은 물론 일부 주술은 관련 자바어 주문도 블로그에 적어놓았습니다. 물론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들 중 몇 되지 않을 겁니다.

 

그 포스팅에 가장 많이 올라온 댓글은 '저 주문을 한글로 어떻게 읽어요'라는 것이었어요. 그 외에도 질문들이 적지 않게 쏟아졌습니다.

 

그걸 보면서 느끼는 건 남녀 사이의 사랑이란 게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과 그 사랑이 양방향이든 혼자 했던 것이든 파국에 이르면, 내가 포스팅에서 강력한 주술이 상대방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릴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극구 주문 읽는 방법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물으며 그 상대방을 망가뜨리려는 악의를 품었다는 것이었어요.

 

요즘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 길거리 헌팅을 하다가도 여성이 동행을 거부허거나 전화번호를 주지 않으면 쌍욕을 하며 때릴 듯 위협하는 사람들이 정말 있는 모양입니다. 상대방에겐 거부권이 없다는 듯 말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뻴렛주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를 인간으로 볼 리 없습니다. 그래서 2014-2015년 릴리에게 뻴레주술을 걸었던 것이 분명한 그 찌레본 출신 남자를 내가 개새끼로 보는 거죠.

 

다행히 릴리는 그후 3-4년 고생하면서 간신히 후유증을 극복했고 올해 두 번째 경찰서 유치장에도 들어갔다가 나와 해당 소송을 멋지게 승리하면서, 하지만 변호사비를 수억 쓴 탓에 당분간 광산수입 대부분으로 그간의 비용을 정산해야 한다면서 씩씩하게 살고 있습니다.

 

닌 덕택에 주술과 귀신의 세계에 입문했고요.

 

여성의 사지만 있으면 뻴렛주술을 걸 수 있다는 두꾼들도 있습니다.

 

 

2021.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