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통번역의 미래 본문
번역
옛날에 소설 쓰고 수필 쓰던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 이유는 소설, 수필은, 물론 때로는 사전 취재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머리 속 구상이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었으므로 랩톱을 열고 워드 프로그램을 띄우자마자 작업이 가능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요즘은 주로 조사보고서나 기사를 쓰다보니 사전에 광범위한 번역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6월까지 하던 영화진흥위원회 월간 보고서는 한달 내내 모은 관련 기사들을 토대로 200자 원고지 50-70장 정도를 쓰는 것이었는데 하루에 하나 이상의 관련기사들을 번역해 두는 게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번역하다 보면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기사들이나 자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클릭수를 노리는 기사들은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매일 아침 5~8개 정도의 주요기사들을 뽑아 그 중 1-2개를 번역해서 발주처에 제공하거나 밴드에 올리는 작업을 하는데 앞서 언급한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 바보같이 낚이지 않기 위해, 또는 힘들여 반쯤 번역한 기사가 전혀 예상과 다른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그 내용을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글번역기가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절대 완벽한 번역을 기대할 수 없지만 최소한 단시간에 전반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글번역기 만한 게 없죠. 특히 어느 정도 번역기가 이상한 번역을 만들어내는 패턴을 파악하면 구글번역기 번역결과물이 엉망진창일지라도 그게 무슨 얘기인지 얼추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5-8개의 번역기사 후보들을 선정하기 위해 20개 정도의 기사들을 둘러 볼 때엔 구글번역기 도움을 크게 빌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인터넷 번역기들이 좀 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번역기나 AI가 어떻게 인간 감정과 뉘앙스, 소소하고 섬세한 표현들을 해낼 수 있냐며 번역기는 번역가의 보조물일 뿐 번역가를 대체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상영관 사업자들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온라인 OTT-VOD 업체들이 전통적인 극장 스크린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상영관과 OTT가 결국 시장을 양분히면서 나름의 서브마켓을 만들어 가게 될 것처럼 난 언젠가 AI가 반드시 번역가를 대체할 것이고 우리가 세계인들을 아무 어려움 없이 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 편입니다. 단지 문제는 그 시대가 내가 죽기 전엔 올 것 같지 않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체력이 받쳐주는 한 내가 할 일들은 나이가 들어도 남아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내가 한국에 돌아가고, 계획한 대로 여수에서 살게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한국에 와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26년을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사람들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것처럼 내 인생의 한 부분은 한국에 와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한 것이었으면 하는 거죠.
그런 일을 하려면 결국 통-번역 능력이 기초가 되어워야 할 것 같습니다. 구글 번역기 말고.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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