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일인당 햄버거 두 개가 국룰 본문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일인당 햄버거 두 개가 국룰

beautician 2021. 8. 26. 12:22

물가에 내놓은 아이

 

 

끌라빠가딩 맥도날드

 

당연한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맥도널드에도 드라이브 스루 창구가 있습니다.

일인당 한 개가 국룰이지만 작년에 아들이 싱가포르에서 돌아와 자카르타에 8개월간 같이 지내는 동안 일인당 두 개를 먹는 걸로 국룰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다이어트 중이라 차차와 마르셀을 위해 버거 네 개를 샀습니다. 더블치즈버거 둘, 맥치킨 하나, 피시버거 하나.

 

하지만 그 집에 입이 더 있다는 걸 깜빡 잊었습니다. 몇 마리 남지 않은 고양이들을 위해서 뭔가 사가야 한다는 걸 까먹었어요.

 

아이들은 맥치킨과 피시버거를 하나씩 먹고 더블치즈버거 두 개를 남겼습니다.

 

"일인당 두 개가 국룰이라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완강합니다. 엄마가 퇴근하면 주겠다는 겁니다. 식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이들 마음씨가 괘씸해서 저녁에 마르타박을 두 개 사서 그중 하나를 배달해 준 것도 이날 있었던 일입니다.

 

디음닐 아침 차차가 울면서 전화를 해왔어요. 엄마가 전날 밤 퇴근한 후 햄버거를 먹고 밤새 토하고 앓았다는 거에요. 냉장고에 보관해 둔 차가운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가 사준 음식을 먹고 고생했다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너 아팠다며?"

"아삼 람붕이었는데 그 상태에서 먹어서 그랬어요."

 

와츠앱으로 오간 메시지에서 메이는 그렇게 대답합니다. 아삼람붕(Asam Lambung)은 위산과다나 역류성식도염 같이 속이 쓰리거나 신물이 넘어오는 증상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마침 나도 역류성식도염 약을 먹고 있는 게 있어 가져다 주겠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합니다. 자기도 비상약이 있다면서요.

 

메이는 내가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할 때 10년쯤 함께 일했는데 다른 회사로 간 후에도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아이들 학비를 유치원 포함해 이미 10년 넘게 내주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니 점점 소외감을 느끼는 듯한 눈치가 보였어요 그러니 전같으면 조금만 아파도  온동네 소문낼 인간이 지금은 아파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거죠. 이번에도 그런 것 같었습니다.

 

"야, 아프면 얘기해. 넌 고아가 아냐."

 

와츠앱에 이 대사를 치면서 살짝 손발이 오그라들었는데 그래도 보수적인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미혼모로 살아가며 심지어 휴일에도 한국계 공장 영업사원으로 밤늦게까지 온천지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퇴근하는 팍팍한 일상의 메이에겐 그나마 기대거 비빌 언덕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사실은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들 엄마도 아직 관심받아야 하는 철부지입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오랫동안 본가에 전화를 하지 못했다는 걸 기억하고 오늘이나 내일 전화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문득 우리 아버지도 날 아직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서 무심코 실소를 짓게 되는 목요일 오전입니다.

 

 

2021.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