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홍범도 장군 유해가 봉환되는 날 본문
광복절
네 건의 마감원고들 중 간신히 하나 끝낸 상태지만 원래는 16일(월)에 마감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원고 달랑 하나만 있던 것이 갑자기 늘어난 겁니다.
하지만 그 16일 마감원고 때문에 포가한 것이 현지 역사단체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에서 주최하는 독립기념일 세미나였습니다.
2018년부터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한국인 전사들'이란 테마로 독립전쟁(1945.8~1949.12) 기간 동안 네덜란드군 점령지역이던 서부자바 가룻 지역에서독립군 유격대 활동에 참여한 양칠성, 국제만 같은 사람들을 조명하던 히스토리카가 올해는 일제강점기(1942~1945) 당시 중부지바 암바라와(Ambarawa)에서 고려청년독립당을 만들고1 일본군 병영에서 무장봉기했던 한국인 군무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발표자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정 안되면 내가 하려 생각했지만 8월15일이나 17일에 하게 될 세미나에서 발표한다는 게 16일에 원고마감이 있는 사람에겐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발표자가 이번엔 없다고 8월초에 알리자 급히 주제를 바꿔 해당 포스터를 바로 얼마전 알려 왔습니다.
하룬 카비르(Harun Kabir)는 가룻 유격대와 마찬가지로 독립전쟁 당시 수카부미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군 유격대의 일원입니다. 수카부미 유격대원 대부분은 가룻의 양칠성 등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네달란드군과 싸우며 죽어나갔고 하룬 카비르도 체포되어 처향된 사람입니다.
인도네시아 세미나의 특징은 개회, 폐회를 진행하는 MC 말고 세미나 사회를 보는 모더레이터(Moderator)라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 포스터 상 Wen Said라는 모더레이터(진행자)를 빼면 발표자는 달랑 두 명. 원래 3명을 맞추는 게 보통인 세미나에서 결국 빠진 한국인 발표자 대체할 사람을 저 친구들도 찾지 못한 겁니다.
독립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느낀 것은 인도네시아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독립기념일 분위기도 대개 연초부터 시작됩니다. 그 예는 장관들이 나와서 뭔가 발표할 때 그 배경의 백드롭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개는 자기 부처의 로고가 있는 백드롭을 쓰지만 국가적으로 매년 디자인하는 독립기념일 로고(대개는 독립 연차를 나타내는 숫자 디자인)을 쓰거든요.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등장하는 정부 공식 유튜브 채널도 늘 같은 로고를 사용합니다. 한국에선 거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오늘은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소식에 더욱 가슴이 뜨거워지는 광복절입니다.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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