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파푸아는 인도네시아에게 무엇일까?

beautician 2021. 8. 6. 11:06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지배한다는 것

 

 

파푸아 동남쪽 끝부분인 머라우케(Merauke)에서 7월 26일(월) 벌어진 파푸아 현지인 장애인을 두 병의 공군 헌병이 무력으로 제압하는 영상이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켜 29일(목) 머라우케 공군기지 사령관과 헌병사령관이 해임되고 해당 헌병 두 명도 엄격한 처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분명해 보이는 현지인을 젊고 건장한 두 명의 인도네시아 공군 헌병들이 윽박지르더니 결국을 쓰러뜨려 한 명은 등을 무릎으로 눌렀는데 정작 문제가 된 건 옆에 있던 다른 헌병이 현지인의 머리를 발로 밟은 장면입니다. 저 사람들의 머리 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으며 과연 인도네시아 군인들은 감수성이란 게 전혀 없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파푸아 지역과 현지인들을 다루는 방식은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 예컨대 술라웨시나 수마트라, 깔리만탄 같은 지역을 다루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히려 1999년 인도네시아로 독립한 동티모르를 1975년 강점한 이후 다루던 것과 유사하죠. 그 차이는 당근과 채찍 중 채찍을 좀 더 많이 쓰는 편이고 그 채찍이 좀 더 굵고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특징은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지배하는 형태라는 점에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저항을 예방하고 희석시킬 목적으로 지배 종족의 민간인들을 대거 현지에 유입시키는 것은 착취, 억압과 함께 대표적인 식민지 경영방식인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체로 그런 방식을 파푸아에 적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 그러고 싶은 충동, 그래야만 하는 필연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기인합니다. 첫째는 광활한 면적에 비해 너무나 적은 인구(1960년대 초반 파푸아 성인남성인구는 80만 정도였으므로 한반도의 10배쯤 되는 서파푸아 지역에 전체적으로 200만명도 안되는 현지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 그리고 두 번째는 그 광활한 지역에 매장된 엄청난 천연자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프리포트사의 그라스버그 금광이죠. 어마어마한 광산에서 막대한 양의 금을 캐 가면서 파푸아 지방정부가 아닌 자카르타 중앙정부에 관련 커미션 대부분, 그러나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전체 수익의 한 톨 될까말까한 금액을 떨구며, 그 광산 안에서는 어떤 인권탄압행위가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곳 말입니다.

 

그라스버그 금광 일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1960년대 파푸아가 인도네시아에 합병되는 과정은 몇 안되는 아이들을 선조로부터 받은 유산을 다른 동네 어른들이 와서 빼앗아 가는 행위와 닮았습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와 싸워 마침내 이루어낸 통일국가라고 가르치지만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는 어차피 다민족, 다종교 국가이고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국시로 하는,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고 그 거대한 간극을 존중함으로써 통일을 유지하는 매우 독특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지배하는 형태와 구조는 그것이 강압적일 경우 불합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일 파푸아가 정말 인도네시아와 뗄 수 없는 한 부분이라면 현지엔 파푸아인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파푸아인들의 땅에 자바인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곳곳에 주둔하고 있다면 그것이 점령군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파푸아인들의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그들만의 군대가 전 지역에 배치되는 상황은 자카르타 중앙정부가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공군 헌병들이 파푸아 장애인을 제압하는 동영상이 크게 사회문제가 된 것은 그런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헌병이 민간인을 제압해 체포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자바인 헌병이 현지인 장애인을 고압적으로 대한 끝에 폭력적으로 제압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머리를 발로 밟는 것으로 파푸아인들에 대한 경멸과 비하를 시각화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그러니 파푸아도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도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에게 저런 대우를 받았는데 그때 우린 결국 어떻게 그 상황을 벗어났던가요? 일본이 회개하고 다시는 겁박하지 않겠다며 반성했기 때문이었나요?

 

 

2021.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