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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앞 생선 본문
고양이 앞 생선
한 시간쯤 장을 본 물건들을 잔뜩 들고 아이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어제까지 쉬었던 애들 엄마는 우리로 치면 어음에 해당하는 기로(Giro)라는 걸 물품대금으로 받으러 오후에 곧장 거래선에 가서 아이들만 있었습니다. 차차 왼쪽 눈썹 위에 빨갛게 화가 난 여드름이 1학년 여고생의 청춘을 뽐냈고 마르셀은 좀 더 사각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못 본 셈인데 그 사이 고양이들도 몰라보게들 많이 컸습니다. 내가 도착하니 어른 둘, 새끼 여섯 그렇게 여덟 마리가 애들 집 문앞에서 나랑 같이 들어가겠다고 줄을 서 있었습니다. 고양이들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는건 지난 번 마지막으로 내가 왔을 때를 기억하는 겁니다.
애들 먹을 건 물론 고양이 먹을 것도 잊지 않고 챙기는데 사람 먹을 거 미리 챙긴 후 여분의 생선이나 여분의 닭을 가져와 고양이들 주라 했더니 사람들이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엔 생선 다듬고 남은 자투리 생선조각들을 한 통 사서 잘게 잘라 주었더니 고양이 대파티가 벌어졌습니다. 고양이들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던 겁니다.
오늘도 장을 보면서 자투리 생선을 사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차차가 음식들을 냉장고에 정리하는 동안 마르셀이 도마를 가져와 거기서 생선살을 자르니 고양이들이 발 밑으로, 도마 위로 마구 몰려듭니다
특별히 보채는 까망 고양이에게 생선 한 덩이를 내밀었더니 발로 확 채가는 데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당장 손가락에 피가 나기 시작합니다. 평소엔 살갑게 구는 놈이 먹을 게 걸리면 전투적으로 살벌해지는데 먹을 걸 주다가 손가락을 여러 번 물렸습니다. 먹을 거랑 사람 손가락을 못알아 보는 걸까요?
차차, 마르셀과 한동안 얘기한 후 그 집을 나서는데 생선 한 팩을 성대히 나누어 먹은 고양이들이 이를 쑤시며 하나 둘 나를 따라 집 밖으로 나옵니다. 이제 저러고 밖에서 놀다가 애들 엄마가 오면 또 다 같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겠죠.
잠시, 자카르타의 한 구석에 일상이 돌아왔습니다.
202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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