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엘리 아주머니의 장례식

beautician 2017. 3. 18. 10:00


엘리 아줌마가 돌아가신지도 이제 1년이 가까워 옵니다.

6-7년 전 Bogor의 Ekalokasari 몰의 브라운살롱 (Brown Salon)에서 처음 만났을 떄 엘리 아줌마는 당시 50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아직도 40대 중후반 정도라고 생각될 정도의 젊은 모습이었고 젊었을 때 무척 미인이었음을 짐작할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어요.


엘리 아줌마에게 암이 발병한 것은 그 미용실이 새로 신축된 Botani Square 몰로 자리를 옮긴 몇 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자궁암이라고 들었는데 병을 발견한 후에도 한동안 미용실에 출근하던 엘리 아줌마는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세가 심해져 결국 미용실을 그만 두었다는 것이었어요. 그 이후에도 한 두 번 미용실에 나와 나이가 20-30살씩 차이나는 어린 미용사들과 수다를 떨던 엘리 아줌마는 어느 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13년 초에 그분이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그 분 집을 찾아 갔던 것은 2013년 6월 중순의 일이었습니다.

엘리 아줌마가 병원에 입원했고 어쩌면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메이를 통해 듣긴 했지만 생업에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분이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어쩌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센뚤 (Sentul)의 작은 주택가 구석에 자리한 그분 댁을 부랴부랴 찾았습니다. 거기서 퀭한 눈과 초췌한 몰골을 한 엘리 아줌마를 실로 몇년 만에 만났습니다. 난 처음 엘리 아줌마를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외모가 너무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엘리 아줌마 역시 나와 메이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외모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녀가 위독할 때 옛 동료들이 병원을 찾은 것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엘리 아줌마를 찾아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던 엘리 아줌마는 뒤늦게 깜짝 놀라며 울음을 터뜨렸어요. 드디어 우릴 기억해냈던 것입니다. 엘리 아줌마는 메이와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더랬습니다. 엘리 아줌마의 한쪽 발은 다른 쪽에 비해 세 배 정도로 퉁퉁 부어올라 거동하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골반 밑 쪽에 자라난 종양이 혈관을 눌러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중에 밝게 웃어 보이며 딸을 시켜 음료수를 내오며 손님대접을 하려 애를 썼습니다.


초췌하게 시들어버렸지만 엘리아줌마의 미소 띈 얼굴에선 예전의 미모가 언뜻언뜻 다시 엿보였습니다.

이젠 회복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가버렸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보고르에 위치한 영안실


엘리 아줌마의 본명이 릴리 엘림이라는 것도 영안실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아침이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영안실은 너무나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전날 엘리 아줌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말레이시아 국적의 남편을 통해 들은 미용실의 옛 동료들이 장례를 준비하면서 자카르타의 모 사무실에서 일하던 엘리 아줌마의 딸과는 연락이 닿지 않아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통화가 되었다고 했어요. 그 딸은 우리가 영안실에 도착할 떄까지도 아직 와있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후에 엘리 아줌마의 형제 자매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그들이 장례를 주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손님들처럼 한 두 시간 영안실에 머물더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그제서야 미용사들이 수군거리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 아줌마는 남편에게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자기가 살아 있을 때에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던 형제 자매들이 자신이 죽은 뒤에 자신의 무덤을 찾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남은 사람들에게 부담되기 싫으니 자신의 유해는 화장해 바다에 뿌려 달라 했다는 것입니다.

엘리 아줌마의 인생은 그녀의 외모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엘리 아줌마의 말년은 외롭고 괴로웠던 거고요. 









미용실의 옛 동료들은 순서를 정해 집에 돌아가 옷을 갈아 입고 영안실에 다시 모였습니다.



엘리 아줌마는 여기 누워 계셨고요. 


그분의 젊은 시절은 내가 예측했던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암이 발병하기 전, Botani Square로 막 장소를 옮긴 brown Salon의 개업실 날 찍은 사진에서 엘리 아줌마는 이렇게 웃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냥 그렇게 잊혀져 버린다면 그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가 지금 좌충우돌하며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처럼 엘리 아줌마에게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그녀 만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물론 난 엘리 아줌마가 어떤 삶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풀스토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분을 알게 된 후 살갑게 지냈던 몇년간의 그 분 표정과 그분 목소리와 그 미소와 그 따뜻했던 마음씨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내 블로그의 한 구석에서 엘리 아줌마의 1주기를 맞아 그분을 추모하려 합니다.



2014. 6. 25.




'매일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얜 무슨 잘못을 했길래...?  (0) 2017.03.20
운전자 시력이 좋아야 하는 이유  (0) 2017.03.18
불타오르는 니켈광산  (0) 2017.03.15
술라웨시 대홍수  (0) 2017.03.14
나무귀신  (0) 2017.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