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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니 초티마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You and I>

beautician 2021. 5. 21. 11:32

<너와 나(You and I)> 코펜하겐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수상

 Selasa, 4 Mei 2021 16:35 WIB

 

 

다큐멘터리 영화 <너와 나(You and I)>. ANTARA/HO.  

 

영화 <너와 나(You and I)>가 보통 ‘CPH:DOX’으로 표기하는 코펜하겐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넥스트:웨이브’ 부문을 수상했다. 이 부문은 전세계 영화제작자/감독들의 첫 작품에 중점을 두고 선정하는데 인도네시아의 <너와 나>는 베네주엘라, 세르비아,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이란, 이태리 등 12개국에서 출품한 영화들과 경쟁을 벌였다.
 
CPH:DOX은 2003년에 창설된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매년 개최되며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번 수상은 지난 5월 1일 덴마크에서 발표되었고 5월 9일부터 온라인영화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공개되었다. <너와 나>는 동남아국가 출품작들 중 유일한 수상작이다.  

이 영화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파니 초티마(Fanny Chotimah)는 이번 수상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열과 성을 다한 제작팀 전부의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CPH:DOX는 덴마크는 유럽 유럽 전역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입니다. 영화 <너와 나>는 전 세계에서 출품된 영화들 중 후보작으로 선정된 12개 작품들과 넥스트:웨이브 부문에서 경쟁을 했습니다. 저희 작품이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한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국내(인도네시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니는 지난 5월 4일(화) 공식방송 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니 초티마 감독  

 

모든 심사위원들은 파니가 매우 좋은 솜씨로 스토리를 이어 붙였고 영화 속 두 명의 주인공이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파니 감독은 주인공인 까미나(Kaminah)와 꾸스달리니(Kusdalini)의 일상을 뒤쫓으면서 내레이션을 통해 그들이 수년간 경험했던 감옥시절이 투영되도록 했다.

 

실제 사건과 이후에 조사한 내용들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면서 파니는 관객들을 강력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으로 몰아간다. 꾸스달리니는 세상을 떠나고 까미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은 그 눈물 이면에 도사린 비극의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 그녀는 삶의 동반자이자 감옥 동료의 죽음과 그들이 공유했던 한 세대의 해방을 향한 꿈을 애도한다.  

 

“<너와 나>는 감옥에서 처음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까미나와 꾸스달리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영화는 까미나와 꾸스달리니가 1965년 정치범으로서 투옥되었던 그들의 쓰라린 인생을 어떻게 추억하며 그들이 지나온 어두운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어떻게 노력하는지를 그렸습니다.”

 

이 영화는 이에 앞서 2020년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0)에서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 제 12회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선 아시아 관점상(Asian Perspective Award) 부문 국제상, 2020년 싱가포르 국제영화제에서 공식선정 아시아 비젼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모든 생존자들의 기억들을 기록하고 1965년 생존자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린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너와 나>를 관람하고 우리 민족의 잊혀져 가는 어두운 역사에 대해 세대간 대화를 이어 나가길 희망합니다.” 이렇게 말한 <너와 나>의 제작사 까완까완 미디어(KawanKawan Media)의 타지아 테레사 D(Tazia Teresa D)는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타지아 테레사 D(Tazia Teresa D)  

 

다큐멘터리 영화 <너와 나(You and I)>.  

 

역주: 1965년은 수카르노 집권 말년을 향해 달려가던 정점인 1965년 9월 30일 공산당 친위 쿠테타가 실패로 끝난 후 당시 종신 대통령 지위에 올랐던 수카르노의 세력을 잃어 급기야 1967년 하야하게 되지만 그 사이 1965-1966년 사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공산당 사냥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와 동조자, 가족 등이 무차별 학살 당했는데 그 숫자가 적게는 50만 많게는 3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한다. 이 시기에 꼭 공산자들만 탄압받은 것은 아니다. 정치적 라이벌들, 개인적 원한을 가진 사람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죽이거나 투옥하는 사건이 얼마든지 벌어졌다. 이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을 별도로 '인도네시아 대학살'이라고도 부른다.

 

이 블로그에서도 대학살에  대해 세 차례로 나누어 연재한 바 있다.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1380

 

인도네시아 대학살 (1965–66년) - (1)

1965–66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1. 개요 1965년에서 1966년 사이에 벌어진 인도네시아 대학살(인도네시아 학살, 인도네시아 제노사이드, 인도네시아 공산당 숙청, 인도네시아 정치학살 또는 1965년의

blog.daum.net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1382

 

인도네시아 대학살 (1965-66) -(2)

1965–66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5. 학살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동조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매일 수천 명 단위로 몰살당하고 있다. 지방 군부대들이 벽지의 감옥에서 수천 명의 공산주의자들을

blog.daum.net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1383

 

인도네시아 대학살(1965-66) -(3)

1965–66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9. 후유증 1) 최초의 충격파 수카르노의 나사콤 체제가 무너져 내렸다. 나사콤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었던 PKI가 다른 두 세력인 군과 이슬람 정파들에

blog.daum.net

이 내용들은 대부분 위키백과 인도네시아어판의 번역이고 일부 관련 기사들을 참고했다.

 

 

출처: 안타라뉴스

https://www.antaranews.com/berita/2137914/you-and-i-dapat-penghargaan-di-festival-film-dokumenter-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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