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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에로티시즘을 다루는 인도네시아 화가들

beautician 2021. 5. 12. 11:44

인도네시아 에로틱 아트의 현주소

 

찬드키라 수와르노의 트위터 계정에 실린 작품

 

해기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시간이어서 찬드리카 수와르노(Candrika Soewarno)는 아직 어두은 책상을 밝히기 위해 메인라이트를 켰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시점은 2021년 3월 초, 아직 우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때여서 쉽게 먹구름이 몰려와 장대비를 뿌리곤 했다.

 

찬드리카는 자신이 보조 사무실처럼 쓰는 수라바야 집 현관 앞 포치에 앉아 막 그림을 한 장 끝내던 참이었다. 문간 베란다 같은 형태의 포치엔 다양한 종이들과 펜들, 중국제 잉크 등이 잔뜩 들어찼고 쾌적한 느낌을 주는 식물들을 담은 화분들도 즐비했다.

 

찬드리카는 에로틱하고 선정적인 그림에 특화된 아티스트다. 이제 32살에 접어든 그녀는 일러스트북 네 권을 모두 종이책과 디지털 e-북 형태로 동시 출간했다. 찬드리카는 자신의 비젼을 표현할 충만한 용기를 가지고 이 일을 하지만 늘 지긋지긋한 남녀차별적 시각과 싸워야 한다. 그것은 그녀의 직업상 절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열받는 일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그녀는 처음엔 엽서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2018년에서 2020년 사이에 <영혼의 성장(Tumbuh Jiwa)>, <사랑(Semara)>, <욕정과 파종(Kama and Tandur)> 같은 일러스트북들을 냈는데 모두 자비로 출판했다.

 

찬드리카가 일을 시작한 것은 아직 자카르타 예술대학(IKJ)에서 시각소통디자인을 공부하던 2008년 학생시절부터였다. 그녀는 대학 2년차 시절 교내전시회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찬드리카 루와르노의 에로틱 작품 (JP/Ivan Darski)  

 

해부학적 인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찬드리카는 전시회에 인간의 몸을 그린 관능적인 그림들을 전시했다. 대부분 그녀의 클라스메이트였던 조직위원회 위원들과 방문객들은 그녀의 작품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고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전시회 조직위원회는 내 작품들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무도 오지 않는 전시장 구석에 걸어 놓았어요. 몇몇 방문객들과 조직위원회 위원들은 날 비난하며 괴롭히기까지 했어요. 전시회 내내 내가 받은 것은 성폭행 발언들과 자기랑 섹스하러 가자는 소리뿐이었어요.”

 

하지만 찬드리카는 에로틱 아트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아직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성적 표현과 육체적 탐미에 대해 대중의 생각을 바꾸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셜미디어에 새로운 작품을 업로드할 때마다 성적 욕설을 담은 댓글들이 쏟아졌다.

 

“성적 괴롭힘의 종류는 다양하기 그지없어 어떤 이들은 자기 성기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고 또 어떤 이들은 나를 매춘부, 변태라고 불렀어요. 또 많은 이들이 내 포스팅들을 노골적 성적표현이라며 당국에 고발하기도 했죠.”

 

 

에로티시즘이란

인도네시아는 에로티시즘의 요소를 조금이라도 담은 작품들에 대해서 쉽게 논쟁이 불붙는 사회다. 일단 인도네시아어 대사전(KBBI)에 실린 에로티시즘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면 (1) 욕정이 자극된 상태, (2) 지속적인 성충동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식의 추상적, 주관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에로티시즘의 정의는 사람들이 어떤 이의 작품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에로틱하다고 생각되는 요소가 있다고 느껴지면 쉽게 비난하는 꼬리표를 달게 만드는 것이다.

 

자카르타 예술대학에서 시각소통디자인을 가르치는 세실 마리아니(Cecil Mariani) 교수는 에로틱 아트라는 낙인은 비단 그 정의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의 성별에도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에로틱한 작품들은 자체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만든 작품들은 여자들이 만든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킵니다.” 세실은 쁘라꺼르티(Prakerti)라고 불리는 예술집단의 연구원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어 대사전(KBBI)조차 여성을 “바기나를 가지고 월경을 하며 임신할 수 있고 아기를 낳아 수유를 하는” 개체로 좁게 정의하고 있다.

 

찬드리아 수와르노 화가와 그녀의 작업 테이블 ((JP/Ivan Darski)  

 

최근 이카 판티아니(Ika Vantiani)라는 여성예술가는 “인도네시아 대사전 속의 여성”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열어 이 정의가 가진 경직성을 맹공격했다. 그녀는 KBBI가 지난 30년 동안 여성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가를 나열했다. 그 30년 동안 여성의 정의는 ‘성’과 출산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상황에서 역시 부정적으로 정의되는 것들, 즉 에로티시즘을 다루는 것 같은 일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어떨지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세실의 말이다.

 

경우에 따라,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표면적으로는 더욱 현대적 사회로 발전하면서도 오히려 에로틱 아트를 더욱 짓누르려는 시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의 언어학자이자 고고학자이며 아난타루파 스튜디오(Anantarupa Studios)의 연구원인 신타 리드완(Sinta Ridwan) 박사는 인도네시아의 에로틱 아트 역사에 대해 논한다. “7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세워진 사원 콤플렉스들, 특히 수쿠(Sukuh)나 체토(Cetho)같은 탄트라 분파의 사원들에서 발견되는 부조나 조각, 석상들은 매우 노골적이죠. 인체는 스스로의 표현이자 창조와 비옥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카마다투(kamadathu)라고 불리는 보로부두르 사원의 기저에도 욕정의 상징으로서 노골적이고 에로틱한 장면들이 새겨져 있어요.”

 

찬드리카 수와르노의 에로틱 작품들 (JP/Ivan Darski)  

 

이러한 고고학적 기록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지만 에로틱 아트는 점점 희소해졌다. 이렇게 상상력의 표출이 제한되면서 에로틱 아트를 그리고 만드는 것 역시 점점 더 터부시 된 것이다.

 

“이러한 에로틱한 작품들이 어느 매체를 통해 등장하느냐가 그 운명을 갈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전엔 이런 작품들이 사원에 부조나 석상으로 조작되어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들이 첸티니(Centhini), 아식라이비능 까우 싱가마(Assiklaibineng, Kawruh Senggama) 그리고 아마도 강장 쾨근인 나라사완(Narasawan) 같은 역사적 문헌에 씌여지게 되죠. 그런데 그 문헌들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점차 숨겨지게 된 것입니다.” 신타는 이렇게 주장했다.

 

 

재래의 에로틱 아트를 넘어서서

많은 예술가와 연구자들은 신체와 성행위에 대한 담론을 정상화하는 것이 에로틱 아트가 도전해야 하는 다음 단계라고 생각한다.

 

세실 마리아니는 이각 무르니아시(IGAK Murniasih) 작가의 에로틱 페인팅이 성적 반응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곤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특정 신체부분과 비성적인 물체, 예를 들면 삽이나 촛불 같은 것들을 혼합해 욕정과 남성이 우월하다는 이념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에로틱 아트는 있는 그대로의 신체를 날 것으로 표현할 경우 신체를 대상화하는 남성성을 강화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장르입니다. 이각 무르니아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에로틱 하트가 진정 차별성을 갖도록 하려면 비정통적인 은유와 비유를 통해 사람들 머리 속에 인식을 때려 박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각 무르니아시의 작품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YOGI ISHABIB  Surabaya  /  Tue, March 9, 2021  /  08:00 am

https://www.thejakartapost.com/life/2021/03/08/erotic-art-in-indonesia-outwardly-scorned-secretly-enjoy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