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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오프라인 서점들의 운명

beautician 2021. 5. 14. 12:38

키노쿠니야 등 폐쇄하는 서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도서 애호가들

 

 

크게 감소한 고객들, 그리고 팬데믹 영향으로 이미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거나 온라인 비즈니스로 사업모델을 전환했다. 가장 눈에 띈 사건은 작년 말 끄망 본점 폐쇄를 앞두고 모든 지점들부터 문을 닫은 악사라(Aksara) 서점의 경우였다.

 

자카르타에서 프리미엄 고급 몰 중 하나인 플라자 스나얀점을 3월 31일 폐점한 키노쿠니야(Kinokuniya)는 광범위한 영어, 일본어 서적들로 유명했는데 현지 도서 애호가들에게 자카르타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서점 중 하나였다.

 

추억의 가치

서점들이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갖는 의미는 실로 지대하다. 31세의 팟캐스터 라나디탸 알리프(Ranaditya Alief)는 키노쿠니야를 콕 찝어 자신의 독서에 대한 흥미를 형성하고 유지시킨 역할을 한 곳으로 지목했다. “키노쿠니야는 다량의 그래픽 소설들을 들여놓았어요. 거기 덕후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마치 나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것은 마치 만화책과 일반 문화책을 같은 가치로 대한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래서 어떤 형태의 책이 다른 형태의 책에 비해 더 떨어지거나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갖게 되었어요.”

 

 

28세의 타니야 위난토(Tania Winanto)도 키노쿠니야를 자주 찾는 고객으로서 같은 맥락에서 오프라인 서점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내가 어릴 때엔 인터넷이 없었어요. 그래서 키노쿠니야 서점을 다니며 몇 시간씩 책들을 읽었죠. 그래서 책을 맨 뒷장 표지까지 모두 읽은 후 이게 정말 내가 찾던 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곤 했죠. 내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경험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죠.”

 

책을 사진 않고 서점에서 책을 읽기만 했다는 얘기로 들리지만 사실 그것도 오프라인 서점만이 갖는 독특한 기능이다. 책들을 모두 플라스틱으로 밀폐포장해 사기 전엔 읽어볼 수도 없도록 해 놓고 플라스틱을 뜯은 책 쌤플을 몇 개 놔두는 인도네시아 서점들에선 그마저도 열심을 부리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24살의 아스트리드 베스타리(Astrid Bestari)는 서점들에서 자신을 찾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악사라 서점에 일주일에 4~5회 가곤 했는데 그곳은 오늘날의 자신을 형성해준 곳일 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 음악 등을 처음 접하게 해준 곳이라고 말한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자녀들을 위한 책을 사러 온 그녀는 서점이란 그녀의 청소년기에 가장 안정감을 준 장소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악사라 서점을 다니며 패션에 대한 책들을 즐겨 찾았는데 이제 그녀는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실용성이 우선

어떤 이들은 추억을 중요시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그보다 실용성에 주목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훨씬 간단하고도 편리하며 때로는 비용적으로도 유리하다.

 

23세의 힐렐(Hilel)은 콘텐츠 스페셜리스트로 이미 오랫동안 온라인서점을 애용해 왔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보다 실용적이고 쉽고 빨라요. 책을 찾는 것도 검색어를 넣고 한번 클릭하기만 하면 되죠. 만약 선반 위에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온라인서점의 장점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다. 많은 독서 애호가들이 아직도 서점을 들러 원하는 책을 고르지만 힐렐은 온라인 구매를 더욱 선호한다.

 

2021 년 3월말 키노쿠니야 플라자스나얀점 마지막 영업일에 도서 애호가들이 책들을 둘러보고 있다. (JP/Vania Evan)

 

서점이 멀어 쉽게 서점에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 서점은 그들에게 직접 다가간다. 오픈 트롤리(Open Trolley)는 수입서적을 주로 판매하는 로컬 온라인서점으로 이러한 간극을 메우면서 그 존재감을 급상승시켰다. 오픈트롤리의 국가매니저 예니(Yenny)는 처음부터 인도네시아 전역의 도서 구매 고객들이 품질 좋은 수입책에 대한 높은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독자들 중 많은 수가 대도시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오프라인서점을 통해서는 그런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없는 환경에 있다. 그것이 오픈트롤리가 2012년 출범한 이후 약진을 거듭하는 동력이라고 예니는 덧붙였다.

 

 

온라인서점은 지리적 제약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이 꼭 대도시에 살지 않아도 쉽게 책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대체 불가능한 경험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책 선반에서 물리적으로 책들을 골라보는 것은 온라인서점에서 제공할 수 없는 예술적 경험이라 여긴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면 대개의 경우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책들을 사게 됩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뭔가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처럼 난처한 느낌이 들 수도 있죠. 바로 그겁니다. 오프라인 서점에도 베스트셀러들이 진열된 별도의 서가가 있지만 우린 어디서부터 어떤 책들을 찾을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팟캐스터 라나디탸의 말이다.

 

악사라의 아딘다 시만준탁(Adinda Simandjuntak) 이사도 같은 감상을 피력했다. 오프라인 서점은 운영비가 많이 들지만 오프라인 서점만이 제공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와 경험이 있어 그 모든 노력들을 의미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도 오프라인 서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점차 비대면 사회로 나아가며 비인간적 환경을 조성하기 쉬운 요즘 같은 시대에 서점은 하나의 피난처, 성역 같은 곳이니까요.”

 

2010 년~2011년 사이 악사라 끄망점은 음악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가끔 음악 쇼케이스가 열렸고 많은 손님들이 그런 행사에 참석하려고 서점을 가득 메웠다. (ak.sa.ra/Facebook/Unknown (Aksara archive)

 

악사라 서점의 플래그쉽 아울렛이었던 끄망점이 문을 닫은 후 인근 디알로그(Dia.lo.gue) 아트 갤러리와 제휴해 그곳에 사이즈를 줄인 같은 컨셉의 서점을 냈다. 이것은 악사라가 그들의 영업중심을 온라인으로 옮겨가기로 한 후에도 오프라인 서점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디알로그 아트스페이스 로고  

 

악사라 서점은 온라인에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는 중이지만 언제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서점을 추구한다고 아딘다 이사는 주장했다. “물론 클릭 한 번으로 책을 사고 거래를 순식간에 끝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이 갖는 인간적인 요소와 손끝에서 느껴지는 책 표지의 느낌 같은 것이야말로 도서 구매의 영혼 같은 것입니다.”

 

출처: 자카르타 포스트- VANIA EVAN, Tue, April 27, 2021  

https://www.thejakartapost.com/life/2021/04/27/as-kinokuniya-and-more-bookstores-close-down-book-lovers-pay-tribu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