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아이들이 다 컸다고 느껴질 때 본문
우리와는 달라야 할 다음 세대
학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과 전혀 동떨어진 겸양과 자기 희생으로 점철된 비루한 삶을 윤리와 도덕으로 포장해 가르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건 예전 일제 강점기의 ‘국민학교’가 대중을 국가이념으로 세뇌해 국가가 사용하고 통제하기 편리한, 그래서 때로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카미카제형 ‘국민’으로 찍어내려 했던 방식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이렇게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은 우리 개개인이 태어난 이유까지도 국가가 자기 맘대로 통일해 규정하려 했습니다.
현대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의견을 구축하고 설득하고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 못지않게 비판하고 저항하고 싸우고 견디고 부러뜨리고 치료하면서 독해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을 호구로 만드는 교육이 필연적으로 낳아 버린 학교폭력과 사회불균형 문제가 충분한 논쟁과 충돌 끝에 도달할 궁극적으로 총의를 통해 철저히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질서가 세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쓰면 잡혀갈 듯합니다.
아무튼 현대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겐 우리와는 다른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랑 다른 시각을 가진 싱가폴의 아이들과 심심찮게 의견충돌이 벌어져 속상한 상황이 적지 않지만 까칠하게 큰 딸과 능구렁이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아들이 더 없이 든든하기도 합니다. 나랑 뜻이 항상 같지만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쟤들에겐 호구의 자질이 없어요.
딸은 중학교 시절부터 남자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 정도까지 미인은 아닌 것 같은데 미모 외에 뭔가가 더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자카르타에서 고등학교 마치고 진학한 싱가폴의 대학, 그리고 곧 취직한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작년 4월 결혼하기로 했던 애인과는 코로나로 줄곧 식을 연기한 끝에 지난 4월 1일 시청 담당관 앞에서 간소한 서약을 하고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결혼하는 방법까지 달랐습니다.
딸이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자카르타 간디스쿨 5학년 2학기로 편입했을 때 아들은 5학년을 마치고 6학년 2학기가 되었다가 곧바로 중학생으로 진학했습니다. 딸이 처음 여학생들 사이에 왕따를 당할 기미가 보이자 오빠인 아들은 놀라운 친화력으로 포섭한 일단의 친구들을 거느리고 동생네 교실을 찾아가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동생 건드리면 누구든 무사하지 못할 거란 신호를 준 거죠.
예전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아빠 닮아 조용한 학교생활을 하던 아들이 어느 날 얼굴에 상처가 나 피를 흘리며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항의하려고 학교에 간 아내는 아들과 싸운 상대방이 완전히 아들보다 한 열 배쯤 더 엉망이 되어 있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답니다. 그리고 싸운 이유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면 몸이 먼저 커지는 아이들이 아직 작은 아이들을 차이가 나기 시작한 압도적인 힘으로 괴롭히기 시작하죠. 덩치 큰 반 친구가 상습적으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자 참다 못한 아들이 대신 나서 한 바탕 붙었다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씨움을 한 겁니다.
“잘 했다.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마.”
정의롭게 사는 게 가장 손해를 보며 살게 되는 길이란 걸 차마 말해 주진 않았습니다. 그런 아들이 여동생을 위해 벌인 무력시위란 동생 학급에 찾아가 친구들을 뒤에 세워놓고 돌려차기 시범을 보여준 것뿐이었습니다. 아들은 한국에서 잠시 합기도를 배운 적이 있었어요.
이후 학교의 북한대사관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평화롭게 지내던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멜번에서 8년을 보낸 후 싱가폴에서 동생과 다시 합류했고 1년쯤 걸린 구직생활 끝에 취직하여 생활인이 되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했는데도 아들은 아직 여자에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럴 리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한국에 가면 친구들이 소개팅을 시켜 주기도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외국에서 산 아들은 한국의 소개팅이나 연애 문화가 너무나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왜 한국 여자애들은 남자랑 만나면 자기들은 돈 낼 생각을 안해?”
난 잠깐 생각해 보다가 대답했죠.
“다음에 내가 한국 여자애들 만나게 되면 왜 그런지 물어 볼게. 그런데 그걸 걔들한테 직접 묻지 왜 나한테 물어?”
내가 보기엔 아들은 앞으로도 연애와 결혼을 향해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모양이고 어쩌면 결국 나중에 낙찰될 배우자가 한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딸이 그랬던 것처럼요. 한국식 연애문화가 아이들에겐 너무나 이상한 모양입니다. 아내나 아버지는 그런 얘기하면 가문의 장손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난리를 치지만 어차피 같이 살 사람은 아들이니 아들이 좋다면 난 상관없습니다.
좋은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평생 수없이 서로를 실망시키며 살 것이 분명한 인생 속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감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상대방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한 세트고요.
“야, 아들. 동생 결혼하는 데 넌 뭐 좀 느끼는 바 없어?”
전화기 너머에서 아들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 못합니다.
“왜, 아빠? 뭐 느껴야 돼? 오늘 피자 오더시켜 줄까?”
저놈, 장가 갈 수 있을까요?
202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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