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도도한 놈들이 밥달라고 몰려오면 본문
반려동물과 산다는 것
태국어과 출신 학군 동기 한 명이 집에서 개를 한 마리 키웠습니다. 그게 임관 전이니 1985년쯤인데 그 집안 전부 그 작은 시추 한 마리에 대한 애정이 유별났습니다. 얼마 전 그 친구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개가 한 마리 웃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개가 됐을 리 없으니 지금 키우는 개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개가 그리 오래 살 지 못하니 당연히 옛날 그 시추가 아닌 다른 개체일 겁니다.
“매일 골골 해서 약으로 연명하는 애야.”
안부를 물으니 그 친구 대답이 이랬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일찌감치 반려견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어리고 예쁠 때뿐 아니라 늙고 병든 후에도 끝까지 책임지는 게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개 키울 자격이 있는 거죠.
차차와 마르셀네 집에 어제 가 보니 생후 한 달 된 고양이들이 다들 바구니에서 기어나와 꼬물거리며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미가 죽은 후 아이들이 열심히 우유병을 물려 잘 키운 겁니다. 그 집에 있는 동안 걔들을 밟을까봐 늘 발 밑을 조심해야 했습니다. 한편 걔네 조카뻘 되는 생후 1주일 된 새끼들은 아직 엄마 품에 있었는데 어린 엄마 고양이는 밥 먹을 때를 빼곤 새끼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정말 헌신적인 엄마입니다. 생명은 참 신비롭습니다.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키우는 고양이들은 길고양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에서 자고 밥 먹지만 낮엔 종일 동네를 나돌아다니니까요. 어린 시절 할머니 살아 계시던 시절 우리 고양이들도 그렇게 키웠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놈들도 있었죠. 그렇다고 아이들이 고양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매년 홍수에 시달려 가구가 제대로 남아 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이사를 시키면서 가구도 순차적으로 바꾸어 줄 생각이었지만 홍수가 나는 곳에서는 다 부질없는 일이어서 새 집을 구하는 게 시간이 걸렸습니다. 돈이 충분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내가 이 친구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한 번도 충분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정 안되면 아파트로 옮겨줄 생각이었습니다. 돈에 맞춰 가려면 평수는 줄겠지만 최소한 홍수에 시달릴 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은 펑펑 울며 반대했습니다. 아파트로는 고양이들을 모두 데려갈 수 없다는 거였어요.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애틋한 마음 커서도 변함없기를 바랬습니다.
정작 내가 우리 집에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오지 않는 이유는 아내가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젠간 살짝 데려와 아내 몰래 키워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들키면 등짝에 불이 나겠죠.
동물과 함께 사는 로망을 갖는 것은 사람에게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동물들에게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개냥이들도 있다지만 내가 겪어 본 도도한 고양이들도 밥 먹을 때가 되면 맡겨 놓기라도 한 듯 달려와 뻔뻔스럽게 밥 달라 요구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정겹습니다. 음식 한 덩이로 저 도도한 녀석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또는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게 말입니다.
개들이 주인에게 주는 솔직하고도 무한한 사랑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노인이 되면 꼭 큰 개를 키우고 싶습니다. 물론 나도 애정을 주겠지만 그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입니다. 1988년. 군시절 내 방에서 개 두 마리를 키웠습니다. 전역하기 몇 달 전 걔들이 새끼를 낳았는데 결국 전역하던 날 새끼 한 마리만 데리고 나올 수 있었고 우리 집에선 키울 환경이 되지 않아 친척 집에 맡겼던 게 마지막으로 개를 키웠던 경험입니다.
동물들이 솔직한 만큼 우리도 동물들에게만큼은 솔직해지죠.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건 바로 그 지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동물들을 대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인성을 더욱 쉽게 알게 됩니다.
내가 예의 태국어과 출신 친구를 늘 대단하고 대견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가 사회적으로 거둔 성공보다도 반려견을 향한 진심과 배려 때문이기도 합니다. 진짜로 고양이를 데려오기 전 나도 고양이에 대해 그 친구 정도의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202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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