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 이유

beautician 2021. 5. 7. 11:45

딱 보면 다 아는 사람들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느냐?  

 

우린 처음 만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첫 눈에 그의 배경과 이력을 꿰뚫어보고 그 진면목을 직시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물론 자긴 상대방과 몇 마디만 나눠보면 모든 게 판단된다며 잘난 척하는 무당 같은 인간들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대방 모습이 왜곡되는 이유는 그를 바라보는 내 시각, 내 입장, 내 색안경 때문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나이 많은지 더 어린지, 더 좋은 학교를 나왔는지, 돈이 더 많은지, 더 좋은 직장을 다니는지, 인맥이 더 좋은지…… 그런 비교를 하면서 상대방을 판단해 버리고 마는 겁니다.

 

리나는 나랑 처음 만났을 때 한 일본 섬유원단 업체의 마케팅 매니저였습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거의 완벽한 영어를 사용하고(나중에 알았지만 미국에서 9년 유학했더군요), 상당한 체구를 유지하느라 월급 이상을 식대로 소비하니 아마도 집안은 중산층 이상이라 생각한 게 다였습니다. 그녀가 세 번의 결혼을 실패로 끝냈다는 것, 아버지가 수하르토 대통령 시절 장관이었다는 것,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가진 집안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리나와 친하게 지낸 지 1년쯤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를 예전처럼 유쾌한 친구처럼 대하기 어려워졌고 식당에서 마주치는 그녀의 지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녀와 함께 식당에 들어서는 날 보며 흥미로워 했을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그녀와 난 거래선 담당자라는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없었지만 그녀가 속한 세계의 사람들은, 말하자면 내가 30대에 접어들었을 때 출입금지 당하고 말았던 클럽 안, 호화로운 룸에 머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은 내가 섞여 들어갈 곳이 아니었어요.

 

내 처지, 내 입장과 비교하기 시작한 바로 그 지점부터 판단이 개입해 상대방을 과대 또는 과소평가하고 뒤를 캐보려 하고 예단하고 규정하면서 관계가 이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리나와는 아직 연락하고 지내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정해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열등감이 문제였을까요?

 

소통에 애로사항에 생기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제도 등장했던 내가 돕는 회사의 대표는 자신만이 세상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사업가라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한 점 잘못을 느끼지 못합니다. 세상이 자신의 능력과 진심을 시기해 늘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억울해 하면서 다른 모든 이들을 가해자 취급하는 사람도 있고 함께 땀 흘려 끝마친 일의 후기를 말할 때마다 어쩌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번, 모든 동료들이 게으르고 미련했지만 오직 자기 혼자 애써 일이 성사시킨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간에서 자기 외의 모든 이들을 자신의 종속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말은 ‘자신이 다른 이들의 주인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란 걸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나는 세상의 중심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내는 소통이란 그냥 누군가를 만나 말하는 것이 아닐 터입니다.

아마도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것이 소통일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소통이랍시고 비난과 욕설로 자기 주장만 밀어붙일 때 어퍼컷을 한 방 먹여 혀를 깨물게 해주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소통방법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21.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