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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독특한 인도네시아 학교괴담 본문
오래된 학교의 핏자국 – 말랑 소재 뚜구(Tugu) 고등학교 단지
말랑의 뚜구 콤플렉스에 있는 세 개의 학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
과거 독립전쟁 시절 건물들 사이에는 복도와 터널이 건설되어 각각의 건물들을 연결한 것은 물론 말랑 꼬따바루역(stasiun Kota Baru Malang)까지 연결했다. 이 터널은 실제로 존재하고 이를 본 학생들도 꽤 있다. 강당에 깔아놓은 목재바닥을 일부 드러내면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통로가 있다.
예전에 두 명의 고등학생들이 이 터널을 탐험해 보려 나섰으나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둘 중 한 명은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그 길을 돌아나왔지만 트라우마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또 다른 학생은 행방이 묘현하다가 2주 후에 역사에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가 지나 2주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이 말랑 소재 고등학교의 가장 기괴한 현상은 피 묻은 바닥이다. 뚜구 고등학교(SMA Tugu, 1번, 3번, 4번 고등학교)는 오래된 건물들로 노란색 타일을 바닥에 깔았는데 그 위에 빨간 핏자국 같은 것이 번져 있다는 점이다. 색깔은 선홍색으로부터 좀 더 짙은 초콜렛색까지를 망라하고 어떤 특정한 무늬를 띄고 있지 않다. 즉 공장에서 찍어낸 무늬가 아니란 뜻이다. 정말로 사람이 뚝뚝 흘린 피처럼 보인다.
타일들을 뜯어내고 새 타일로 교체해도 같은 핏자국이 다시 올라왔다. 소문에 의하면 뚜구 고등학교는 잡혀온 독립투사들을 고문하는 장소로 쓰였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중 포로수용소로 쓰였다고 하지만 연합군 포로수용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은 몸져 누워 앓거나 귀신에 빙의되기 일쑤였다. 이런 타일은 어느 교실 한 군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복도에서 지천으로 볼 수 있다.
이 뚜구 고등학교 콤플렉스에서 가장 으스스한 곳은 뚜구 강당(aula Tugu)으로 1번, 3번, 4번 고등학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이곳도 바닥 타일 위엔 예의 핏자국국들이 널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핏자국이 올라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일 대신 모래를 깔고 그 위해 목재로 바닥을 깔았다.
예전 뚜구 지역이 대규모 화재에 휩싸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직 뚜구 고등학교만이 화재피해를 모면했다. 그런데 강당엔 밤이면 목이 없는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곤 했다. 그래서 지금은 밤에 강당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뽀쫑 귀신을 보았다거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경험담이 넘쳐나며 특히 청소년 적십자부(PMR)이나 신입 부원 담력훈련을 시키는 빠스끼브라(Paskibra-국기게양단) 회원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다가 온갖 이상한 경험을 했다는 기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 학교괴담이 있을 테지만 목 잘린 일본군 유령들이 단체로 출몰하는 인도네시아 고등학교는 사뭇 독특하다. 더욱이 네덜란드로부터 340년 식민통치를 당하고 일제강점기 3년 반을 겪으면서 인도네시아에는 인도네시아 토착 유령들은 물론 네덜란드인 귀신 일본인 귀신들까지 출몰하게 되었지만 왜 일본인 귀신들은 대체로 강박적인 가해자이거나 단체로 등장하는 형태로 묘사되고 네덜란드인 유령들은 좀 더 피해자 쪽이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식의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집단심리연구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부분일 듯하다.
2020. 1. 26.
PS. 그러고 보니 2018년 1월에 <Rumah Belanda(네덜라드인의 집)>이란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다. 어떤 저택 주인의 자서전을 쓰러 들어간 라야라는 작가가, 네덜란드인들이 살았던 그 저택의 어떤 존재가 그 집안 아이들을 공격하는 상황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공포물. 그러나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 영화는 자카르타에서 3시간쯤 거리인 수방(Subang)에 소재한 실제 네덜란드인이 살았던 고택에서 촬영되었다. 2년 전 <눈에 보이지는 않는 가족(Keluarga Tak Kasat Mata)>라는 영화를 만든 헤디 수리야완(Hedy Suryawan)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비슷한 기조로 <네덜란드인의 집 유령(hantu Rumah Belanda)>라는 책도 2018년에 출판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네덜란드는 그 문화나 역사가 인도네시아의 정서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래 인도네시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지금까지 긍정적 방향의 많은 교류를 해오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형태의 유령으로 등장하는가는 일본이 인도네시아에 끼친 정서적, 역사적 영향의 부정적 일면을 반영하는 것이 분명하다. (끝)
참고자료
https://plus.kapanlagi.com/10-kisah-hantu-menyeramkan-dari-sma-tugu-malang-743d8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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