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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빠자자란 왕국의 중심, 구눙살락 본문
수카부미와 보고르의 경계, 구눙살락(Gunung Salak)
구눙살락은 행정구획 상 보고르와 수카부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울창한 산림이 우거진 구눙살락은 국영산림관리공단 KPH의 관리 하에 있으며 ‘할리문-살락산 국립공원 (Taman Nasional Gunung Halimun-Salak)’이란 정식 명칭이 붙은 곳이다.
산 이름을 듣는 이들은 아마도 과일인 살락열매를 떠올리겠지만 구눙살락은 살락열매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산 이름에 쓰인 살락(Salak)은 은, 즉 실버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살라카(Salaka)’에서 왔다. 즉 구눙살락의 뜻은 ‘은산’ 또는 ‘은을 품은 산’ 정도가 되겠다.
순다인들은 구눙살락이 빠자자란 왕국을 세운 쁘라부 실리왕이(Prabu Siliwangi)가 마지막 종적을 감춘 곳이고 신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머무는 곳이라 여기며 일종의 성지로 생각한다.
해발 2,211미터 높이의 이 산은 많은 괴담도 가지고 있다. 2012년 45명을 태운 수호이 수퍼젯-100(Sukhoi Superjet-100) 여객기가 추락한 곳으로도 유명해졌고 그 외에도 산자락 민가 주민들이나 등반가들 사이에 이 산에 대한 많은 괴담들이 떠돌며 민화와 전설로 자리잡고 있다.
자바의 다른 산들에 비해 특별히 더 높은 산도 아닌데 경험 많은 등산가에게도 이 산은 만만찮게 위험한 곳으로 통한다. 그건 구눙살락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과 등반객, 인근 주민들의 이상한 경험담들에서 기인한다. 이상한 일들의 목록은 이렇다.
1. 까와라뚜(Kawah Ratu-여왕의 분화구)와 쭈룩스리부(Curug Seribu–천 개의 폭포)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까와라뚜 분화구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 때문이었다. 또한 쭈룩스리부 폭포 아래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박령이 되어 그 일대에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2. 구눙살락에 추락한 항공기는 이미 최소 6대에 달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사고는 45명의 희생자를 낸 수호이 수퍼젯 100의 추락사건이다. 당시 탑승자 중 생존자가 없었고 추락이유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3. 구조대가 추락한 수호이 항공기를 찾아 수색에 나섰을 때 숲에서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야생동물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적막한 상태였는데 아구스 수쁘리아트나(Agus Supriatna)라는 구조대원이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위치는 추락지점이나 중간 휴게소에서 아직 매우 먼 거리였다. 그게 누구의 목소리였고 왜 도움을 요청했는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4. 수호이 항공기 잔해를 찾으로 갔던 구조대원 중 두 명이 똑 같은 꿈을 꾸었다. 젖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그들을 구눙살락 정상에 있는 어떤 집으로 이끌었는데 그곳엔 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밤새 육체의 향연을 펼치는 꿈이었다.
5. 구눙살락의 등반객들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모를 들릴 듯 말 듯한 가믈란 연주소리를 듣곤 한다.
6. 인근 사람들은 구눙살락 정상에 귀신들의 마을이 있다고 믿는다. 이는 정상에서 몇 기의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산자락 마을로 돌아온 어떤 청소년이 정상에서 삐상고렝(바나나튀김)을 샀다며 먹으며 내려왔는데 정상에 그런 것을 파는 곳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사람들은 밤이면 산 정상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엿보인다고 한다.
7. 등반객들 중엔 젊은이들도 오르기 힘든 경사를 날 듯이 걸어 올라가는 80대 할머니를 보았다는 이들도 있다. 거기서 뭐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할머니는 걸쭉한 자바 사투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난 여기 살아. 밤에 사람들이 많이 오면 난 좋아. 나한테 먹을 걸 주는 사람들이 많거든.” 구눙살락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순다어를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할머니는 잠시 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8. 산자락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산 속에서 대형트럭 사이즈의 멧돼지와 말 크기의 금색 뱀을 보았다고 하며 그들이 산의 주인이라 믿는다. 표범을 보았다는 이들도 있는데 주민들은 이런 동물들이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왕 중 한 명인 쁘라부 실리왕이의 현신이라 말한다.
9. 마닉 봉우리(Puncak Manik)는 구눙살락이 가진 네 개의 봉우리들 중 하나로 영적 빠자자란 왕국이 거기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닉 봉우리는 쁘라부 실리왕이가 거르녔던 아름다운 후궁 쩬뜨링 마닉(Centring Manik)의 이름을 따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거기서 이상한 현상들이 자주 일어나는데 강풍의 바람방향이 마구 바뀐다거나 갑자기 두터운 안개가 내린다거나 하는 일이다. 특정한 달에 이 정상에서 귀신들이 모여들어 동강(Pagelaran Donggang)행사를 연다고도 한다.
10. 매년 구눙살락에서는 종적을 감춘 실종자들이 여럿 발생하고 있다. 가람들은 앙그렉꽃을 꺾지 말라는 경고를 어긴 이들이 실종된다고 한다. 앙그렉꽃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떤 종류는 중독성이 있어 이를 꺾은 이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같은 곳을 몇 시간씩 빙빙 돌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 앙그렉꽃을 원래 있던 곳에 돌려 놓은 후에야 바로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실종되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은 구눙살락 깊은 숲 속 어딘가에서 아직도 정신이 나간 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눙살락은 사람들 사이에 Angker한 곳이라 소문이 나있다. Angker란 '음산한'이란 뜻으로 번역되지만 까놓고 얘기하면 '귀신이 자주 출몰하는', '귀신이 나올 법한' 정도의 번역이 더 적확하다. 하지만 그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구눙살락은 자카르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나름 산세가 험해 본격적인 등반을 좋아하는 현지 등산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2021. 1. 23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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