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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공포영화와 다누르 유니버스(Danur Universe)
사실 작가들이 하는 일이란 원고지나 랩톱 화면 속에 가상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굳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이 등장하는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MCU)나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DC 유니버스 같이 현실에는 없지만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각자의 독자적인 기원과 스토리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악과 싸우는 그런 세상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작자들은 어떤 가상의 캐릭터가 존재하는 현실과 비슷한 세계를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시켜 간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군달라 같은 토착 슈퍼히어로들을 내세운 부미랑잇 유니버스(Bumilnagit Universe), 가똣까차 같은 와양 인형극 속 인물들이 슈퍼히어로로 등장하는 사트리아 데와 유니버스(Satria Dewa Universe)가 각각의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는데 일련의 공포영화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아우르며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현지 최대 영화제작사인 MD 픽쳐스가 2017년부터 내놓고 있는 <다누르(Danur)> 공포영화 연작이 그렇다.
‘다누르(Danur)’란 ‘시체에서 뚝뚝 떨어지는 액체’ 또는 ‘시체냄새’라는 뜻이다.
그 첫 번째 영화는 2017년 작 <다누르: 난 귀신이 보여(Danur: I can See Ghosts)>였다. 이 영화는 리자 사라스와티(Risa Saraswati)가 쓴 ‘다누르 대화의 관문(Gerbang Dialog Danur)’이란 책을 각색한 것인데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20년까지 다누르 본편 트리올로지와 여러 편의 스핀오프 등 모두 여덟 편이 이어지면서 일정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표 1. 다누르 유니버스 영화들의 흥행성적>
영화명 |
개봉일 |
감독 |
제작사 |
관객 (흥행순위) |
<다누르: 난 귀신이 보여> |
2017. 3. 30 |
아위 수리야디 (Awi Suryadi) |
픽하우스 필름스 (Pichouse Films) |
2,736,157 (4위) |
<다누르2: 마다 (Danur2: Maddah)> |
2018. 3. 28 |
아위 수리야디 |
MD 픽쳐스 픽하우스 필름스 |
2,572,133 (3위) |
<빙의(Rasuk)> |
2018. 6. 28 |
우바이 폭스 (Ubay Fox) |
MD 픽쳐스 디 컴퍼니 (Dee Company) |
900,019 |
<아시(Asih)> |
2018. 10. 11 |
아위 수리야디 |
MD 픽쳐스 픽하우스 필름스 |
1,714,798 (5위) |
<어둠(Silam)> |
2018. 12. 13 |
호세 쁘르노모 (Jose Poernono) |
픽하우스 필름스 |
793,107 |
<다누르3: 적막 (Danur3: Sunyaruri)> |
2019. 9. 26 |
아위 수리야디 |
MD 픽쳐스
|
2,411,036 (4위) |
<빙의2(Rasuk2)> |
2020. 1. 2 |
리잘 만또파니 (Rizal Mantovani) |
디 컴퍼니 블루워터 필름스 (Blue Water Flms) |
376,985 (9위) |
<아시2(Asih)2> |
2020. 12. 24 |
리잘 만또파니 |
MD 픽쳐스 픽하우스 필름스 |
상영중 |
유료관객 30만 명 이상이면 대체로 제작비 회수가 되었다고 보므로 <다누르> 본편 트리올로지 세 편은 매년 2백만 관객을 넘기며 로컬영화 흥행순위 3~4위를 차지했으니 매번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래서 <다누르>의 프리퀄인 <아시>와 <빙의>도 제작되어 각각 백만 명 전후의 관객을 불러들이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러니 속편이 제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시>는 <다누르> 본편의 스핀오프로 본편에 등장하는 유령 ‘아시’의 등장배경과 그 이후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2017년 <다누르> 1편은 CJ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여 호러영화의 봇물을 튼 그해 로컬영화 흥행1위 작품(관객 420만 명)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에 밀렸고 2018년에는 루나 마야 주연의 <수잔나: 무덤 속에 숨쉬다(Suzzanna Bernapas Dalam Kubur)>의 뒤를 달렸다. 늘 다른 영화에 밀려 흥행수위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한번 흥행 1위를 하는 것보다 매년 본편과 속편들이 흥행 3~4위를 지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누르>보다 많은 관객이 들었던 영화들이 모두 단발에 그친 것에 비해 다누르 유니버스의 영화들은 이미 여러 편이 만들어졌고 이후 계속적으로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현지 매체들은 <다누르> 작품들을 <컨져링>과 비교하지만 물론 제작비나 배우의 지명도, 시나리오의 개연성 등에서 <다누르>의 우위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최대 영화제작사로서 자금력 빵빵한 MD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년 상당한 흥행성적을 올리는 <다누르>는 나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있어 이후 속편이나 스핀오프들이 나오더라도 일정 관객수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춘 셈이다.
여기 등장하는 유령 ‘아시’는 원한을 품고 죽은 여인의 원혼으로 꾼띨아낙(Kuntilanak)의 한 범주에 속하지만 전통적인 꾼띨아낙의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적 꾼띨아낙은 처녀귀신이 아니라 임신 중 또는 출산 중에 사망한 여인의 원혼이다. 그래서 생전에 자신이 갖지 못한 아기를 탐하여 갓난아기를 납치해 가거나 임산부를 시기해 사고를 당하게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아시는 갓난아기가 아니라 어린 아이를 키우려 한다는 점에서 헐리우드 영화 <마마(Mama)>(2013)을 연상케 한다.
이외에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이 해외자본에 개방된 2016년 이후 인도네시아 극장가에서 나름 어느 정도 흥행한 공포영화들을 표로 정리해 보면 인도네시아 로컬영화 호러장르의 추세를 읽을 수 있다.
<표 2.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연도별 흥행작 (2016~2020)>
년도 (공포영화 편수) |
연도별 흥행성적 15위 내의 공포영화 (흥행순위) |
2016 (1) |
<더 돌(The Dall)>(15위) |
2017 (5) |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1위), <다누르: 난 귀신이 보여(Danur: I can See Ghosts)>(4위), <빙의인형(Jailangkung)>(5위), <영안(Mata Batin)>(8위), <더 돌 2(The Dall 2)>(9위) |
2018 (7) |
<수잔나: 무덤 속에 숨쉬다(Suzzanna Bernapas Dalam Kubur)>(2위), <다누르2: 마다(Danur2: Maddah)>(3위), <아시(Asih)>(5위), <빙의인형2(Jailangkung2)>(9위), <사브리나(Sabrina)>(11위), <꾼띨아낙>(12위),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Sebelm Iblis Menjemput)>(13위) |
2019 (3) |
<다누르3: 적막(Danur3: Sunyaruri)>(4위), <지옥의 여인(Perempuan Tanah Jahanam)>(7위), <꾼띨아낙2(Kuntilanak2)>(8위) |
2020 (5) |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 2(Sebelm Iblis Menjemput 2)>(4위), <망꾸지워(Mangkujiwo)>(5위), <빙의2(Rasuk2)>(9위), <태아(janin)>(12위), <아시2(Asih)2>(14위) |
2016년 이전 흥행작들 중에는 호러영화가 거의 없었다. 당시 추세는 2012년 하비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그린 <하비비와 아이눈(Habibie & Ainun)>,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경찰특공대 영화 <레이드: 첫 번째 습격(The Raid)>이 대박을 터트리며 드라마와 액션 장르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 흐름을 바꾼 것이 2017년 <사탄의 숭배자>였다. 이 영화는 그해 인도네시아 최고권위의 영화제인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17)에서 시각효과상을 비롯한 7개 부분을 차지하면서 B급 장르라고 여겨지던 호러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팔콘픽쳐스(Falcon Pictures) 파자르 부스토미(Fajar Bustomi) 감독의 청소년 로맨스 영화 <딜란(Dilan)> 3부작이 매년 로컬영화 흥행수위를 차지하면서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큰 방향이 다시 드라마로 방향을 바꾸는 듯했지만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 향상을 이룬 호러영화는 다시 한번 2020년 12월 5일에 열린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0)에서 <지옥의 여인>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7개 부분을 휩쓸면서 전혀 다른 레벨에 올라선 인도네시아 호러장르의 위상을 과시했다. 2017년의 <사탄의 숭배자>, 2020년의 <지옥의 여인> 두 편 모두를 만든 조코 안와르 (Joko Anwar) 감독의 위상이 엄청나게 뛰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지옥의 여인>은 2021년 오스카상에도 출품이 확정된 상태다.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은 전반적으로 개연성 부족한 시나리오, 예산을 충분히 쓰지 못한 CG와 특수효과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겪어 왔고 그래서 그런 부족함을 영화 곳곳에 배치한 스케어점프씬(Scarejump scene), 즉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와 관객들을 놀래키는 순간적인 장면들로 대상만족을 시키려 해왔다. 그런데 이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역량은 그런 시기를 점차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예전에 꾼띨아낙 영화들을 몇 편 보고서 인도네시아 공포영화를 다시 보면 성을 갈겠다던 다짐을 일단 취소한다.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전성기는 당분간 조코 안와르 감독과 다누르 유니버스가 쌍두마차처럼 이끌면서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며 난 좀 더 무시무시한 다음 공포영화들을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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