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기록

요미우리 신문 특파원과 양칠성로

beautician 2020. 11. 23. 11:15

 

코모도 섬을 출발해 라부안바조로 돌아가는 항해가 꼬박 네 시간 걸렸다. 아침에 빠다르섬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긴 일과를 보낸 끝에 온 긴 휴식시간. 선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 했지만 배가 진행하면서 파도와 부딪히는 소리, 이따금 들리는 뭔가 부서지는 듯한(?^^) 굉음 때문에 잠들지 못했다. 

더욱이 선실엔 와이파이신호가 없어 뭔가 하려 해도 인터넷에 익숙한 우리들은 뭔가 빠진 듯한 아쉬움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식당과 라운지가 있는 미들덱으로 올라갔다. 간간이 섬들이 보이는 망망대행 한 가운데에서 와이파이가 되눈 선박이라니.....크루즈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당연한 환경일지 모르나 100년만의 여행을 떠난 나같은 사람들에겐 신천지나 다름없다.

 

코모도섬 부두

 

라부안 바조에 도착한 씨사파리 7호 크루즈. 우측의 인물은 데일리 자카르타의 오노 코타로 기자

 

그렇게 해서 돌아온 플로레스의 라부안바조. 이나야베이 코모도 호텔(Inaya Bay Komodo)에 짐을 풀고 그곳 테라스 식당에서 피시 스테이크로 만찬을 가졌다. 관광창조경제부 중앙청에서 온 두 명의 고위관료는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발리 일정에 참여하지 않고 곧바로 자카르타로 돌아간다고 하여 일종의 페어웰 파티같은 성격이 되었다. 이태리인 매니저가 살갑게 손님들을 맞는데 그날 우리가 그 호텔의 유일한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이국적인 음식과 낮이었다면 분명 아름다웠을 야경이 어우러졌다.

마침 나와 조편집장, 막내 조유리양이 주르륵 앉은 건너편에 일본팀이 앉아 식사 내내 많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1998년 자카르타 폭동 전 자카르타에 살았다는 요미우리 신문의 타케유키 히토코토 특파원은 당시 주재했던 게 아니라 부모님을 따라와 살면서 자카르타 일본학교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야 숫자가 맞아 떨어진다. 80년대 중후반 생으러 40개 초반인 거다. 이번에 부임한지는 3년반이 되었고 지난 김정은-트럼프의 하노이 회담을 자신이 출장가서 취재했다고 한다. 요즘은 아무도 안쓸 것 같은 갱지로 된 얇은 노트를 뒷주머니에 끼고 다니는 그는 어떤 면에서 보니 전문 기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데일리 자카르타 심분의 오노 코타로는 인니 3년차라는데 인도네시아어를 꽤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가 속한 신문사는 이름으로 보아 현지 일본인 커뮤니티를 위한 매체인 것 같다. 일본인 개인들은 만나면 늘 그런 생각 갖게 되지만 타케유키나 오노 모두 솔직하고 친근한 사람들이다.

 

 

이나야 베이 코모도 호텔에서 저녁식사 직전

 

 




그들과 얘기하던 중 가룻 양칠성로 설치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양칠성은 다른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본군 그룹의 일원으로 현지 유격대인 빵에란빠빡부대에 들어가 함께 싸우다 함께 죽었는데 그의 삶을 폄하하거나 과대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덤이 현지에 남아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사회가 그의 다른 한국인 일본인 인도네시아인 동료들을 무시하고 양칠성만 기념하는 게 마땅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일본기자들과 나누었다. 양칠성은 일본인 동료 두 사람 아오키, 하세카와와 함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처형당했는데 양칠성을 기념하려는 한국사회가 그의 무덤 옆 전혀 관리되지 않은 두 일본인 동료의 무덤을 저대로 방치하고 오직 양칠성만 기념하는 방향성이 올바른 것일까? 그들을 한국의 영웅 또는 일본의 영웅이 아닌 인도네시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도네시아의 영웅으로서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가 함께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악화일로를 달려온 한일관계 화해의 계기가 인도네시아 가룻의 한 기념비, 한 기념공원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타케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츠미 아이코가 지난 달 모든 조사자료를 정부에 인계하고 은퇴했다는 소식을 전하면 자신은 가룻의 뗀졸라야 영웅묘지를 취재할 의지를 밝혔고 난 히스토리카의 헨디조 기자를 이번 여행 후 그에게 소개해 주기로 했다.

식사가 끝나자 타케유키는 다음날 자카르타 귀임하는 관광청 시깃 이사와 마지막 인터뷰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끼어들면서 사뭇 기자회견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사실 지남 이틀간 이야기했던 내용의 반복이 대부분이었지만 주요 내용은 코로나 회복율 95% 사망율은 국제수준인 2% 미만이 되면 인니 전체는 아니지만 해당 조건을 충족시킨 지역들부터 외국인 출입금지를 풀 계획이며 이를 위해 지나 8월부터 해양투자조정장관 루훗 빤자이탄을 위시한 보사부 외교부 투자청 관광청 등이 협의와 조율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금주 26-27일 관계기관 회의에서 주요 관광지 해와개방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빈딴 발리 족자 반유왕이 마나도 등 각 지역이 조속한 외국인관광객 입국금지 해제를 요구하는 중이며 정부의 우선순위는 관광 의존률이 가장 높은 발리의 개방이며 그 시기는 12월-내년 1월 사이가 될 것이라는 것이 골자다.

시깃 이사는 작년말 관광청에 합병된 창조경제위원회의 영화담당부서를 이번 여행 후 소개해 주겠다고 내게 약속했다.

그렇게 22일의 긴 하루를 마쳤다. 23일은 낮 12시에 일정을 시작하는데 발리로 이동하는 것이 전부. 예상했던 대러 라부안바조는 외래관광객들이 들어오는 공항이 있고 역내 주요 관광지로 떠나는 항구가 있지만 도시 자체엔 별다른 관광 포인트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일정표가 나온 거라 생각했다.

23일은 발리 우붓의 웨스틴 호텔에 묵을 예정이다.


2020년 11월 22일(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