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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에 추가병력 투입 시사한 내무장관
티토 까르나피안 내무장관은 파푸아에서 정부군과 민간무장단체들 간의 긴박한 긴장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악화되어 가는 현지 치안유지를 위해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을 어기는 자들, 특히 무장단체들에게 정부가 밀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인명을 살상한다면 우린 법에 따라 조치할 것입니다. 병력이 충분치 않다면 더 많은 병력을 충원해야 합니다” 장관으로 기용되기 직전 인도네시아 경찰청장이었던 그는 지난 목요일 꼼빠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티토 장관은 정부가 파푸아의 경제적 개발과 번영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무장 민병대원들이 투항해 정부와 손을 잡고 파푸아 발전에 함께 이바지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정부에 투항하는 자들에겐 각종 복지혜택이 주어지겠지만 현행법을 위반하는 자들은 철저히 배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말로 만료되는 파푸아의 특별자치(Otsus) 자격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파푸아의 지방정부 수장들은 그때까지 중앙정부 교부금으로 지역개발을 최적화하라고 촉구했다. “일자리를 창출 등 최적화된 방향으로 방향으로 교부금의 지출을 집행하기 바랍니다. 파푸아의 국가적 자원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바 인적자원개발과 지역개발은 동시에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서파푸아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갖게 되면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이 지역개발에 매진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내무장관의 발언으로서는 뜨악할 정도로 거친 논리지만 아무튼 티토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통계청(BPS)자료에 따르면 파푸아의 두 개 주 중 서파푸아(West Papua)주는 파푸아(Papua) 주보다 더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2014년 8월 서파푸아의 실업률은 5.02%였고 반면 파푸아주는 3.44%였다. 2019년 2월엔 서파푸아 5.28%, 파푸아주 3.42%를 기록했다. (왜 서파푸아 지역의 주 이름을 ‘파푸아’와 ‘서파푸아’로 구분해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헷갈리도록 기획했을까?)
티토 장관의 발언에 화답하듯 정치법제치안조정장관 마흐푸드 MD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파푸아의 무장단체 조직원들을 여전히 인도네시아인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장단체 조직원들이 정부에 투항해 지역개발에 참여한다면 그들의 시민권을 말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정부의 품으로 돌아오길 촉구합니다.”
인도네시아군 대변인 구스티 뇨만 수리아스타와 대령은 지난 목요일 브리핑을 통해 파푸아 무장단체 조직원 다섯 명이 인도네시아 정부군에 투항했고 투항이유는 심리적 불안감, 가족들과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구 등이었다고 밝혔다. 그간 분리주의자로서 활동했던 이들은 지난 수요일 군과 주민들 앞에서 인도네시어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고 인도네시아 국기게양식에도 참석하며 관련 각서에도 서명했다고 밝혔다.
파푸아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끝나던 1949년 12월에도 여전히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가 1960년대 초 다시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가 파푸아 해안과 내륙에서 군사충돌을 일으킨 끝에 UN의 중재로 1962년 전쟁을 멈추며 실질적인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1969년 국민투표를 통해 완전히 인도네시아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당시 석연치 않았던 국민투표 절차, 인도네시아 군경에 의한 혹독한 탄압으로 지난 50년간 십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역사, 그리고 미국 프리포트 금광/구리광을 비롯한 대대적인 일방적 자원개발로 중앙정부의 배를 불리며 정작 현지에는 쥐꼬리만큼만 돌아가는 형식적 혜택 등이 반발을 불러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50년 넘는 기간 쌓이고 쌓인 가족, 민족의 원한이 파푸아 곳곳에서 소요와 무장항쟁으로 터져나오곤 한다.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 발전이 반란으로 이어진 것은 인도네시아의 1950년대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바인의 정부가 다른 지역을 착취해 자바만을 발전시킨다고 불만을 터뜨린 지방에서는 현지 군부대를 중심으로 수마트라 부낏띵기 지역에서는 PRRI 반란이, 술라웨시 마나도 지역에서는 뻐르메스타 반란이 벌어져 중앙정부군과 전쟁을 벌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반란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목숨을 잃고서도 정치경제적으로 급히 봉합했을 뿐 균형발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했다.
수마트라나 깔리만탄에 비해 훨씬 넓은 면적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파푸아는, 그러나 인구가 너무 적어 그 넓은 지역을 네덜란드로부터도,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도 지킬 수 없어 오랜 세월 유린당했고 현재도 중앙정부에게 불이익을 당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요컨대 파푸아는 인도네시아 영토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군의 점령지라 생각하며 독립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사이 중앙정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국내이주정책을 벌여 수많은 자바인, 암본인 등이 파푸아로 이주에 도시를 중심으로 뿌리내려 만만찮은 중앙정부 옹호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세기 말까지도 여러 분쟁지역을 가지고 있던 인도네시아는 1975년부터 강점하고 있던 동티모르는 1999년 분리독립하는 것으로 결착지어졌고 반군들이 맹위를 떨치던 아쩨 지역은 특별 자치구 지위를 강화하고 중앙정부가 많은 양보를 하는 것으로 강화가 이루어져 무장 대결이 종식되었다. 파푸아는 인도네시아의 마지막 분쟁지역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종식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2020. 7. 25.
자료: 자카르타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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