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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두 개의 죽음

beautician 2020. 7. 14. 12:00

 

두 개의 죽음

 

 

 

박원순 서울시장이 죽음을 맞았다.

우린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안다.

그가 성추행 고발을 받았다는 것도 이젠 알겠다.

하지만 그래서 그것이 그의 죽음의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일각의 인사들이 피해자의 인권을 내세우며 상을 당한 아픈 마음들을 난도질한 것이 정의라면

이제 그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 정말 철저한 조사, 어느 일방만의 조사가 아닌, 전방위적 수사를 벌여

피해자에게도, 고인에게도 일말의 억울함을 남기지 않길 바란다.

 

그가 말년에 시장실에서 비공개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린 실상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는 사람들을 살리는 편에 서서 대다수의 서울시민과 한국인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다.

그것 역시 팩트다.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죽음을 맞았다.

한번의 생애에 반역적 행위와 애국적 봉사를 순차적으로 했던 그는 천수를 누린 후 100세에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그가 한국전쟁의 영웅이라 말한다.

그가 일제시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들을 때려잡던 악랄한 친일파였다 하더라도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에 맞서 싸운 걸출한 지휘관이었다는 것은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그 공을 인정받아 국군 현충원에 묻히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공적을 쌓았고 그럴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일제시대 당시 그가 조선이 아닌 일본에 충성한 것 역시 팩트다.

그가 독립군들을 추격하여 공격하고 죽이고 불살랐던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자서전에조차 그는 그렇게 피력했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죽는 날까지도 만주에서 독립군들을 공격하던 자신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회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의 현충원 묘지에 그의 친일행적도 낱낱이 기록해 주어야 한다.

차제에 김창용, 노덕술의 묘지에도 그들이 자랑스러워 하던 일제시대 당시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해 주어여 한다.

 

그게 팩트였으니까.

 

 

 

박원순 서울시장의 상이 진행되던 동안에도 그의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성추행 의혹만으로 장례절차를 문제삼으며 고성을 지르는 이들이 있었다.  아직 아무 것도 확인된 것도 없는 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확인해서 고인에게도, 피해를 주장하는 고발인에게도 한 줌의 억울함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자.

그래서 박시장이 과연 죽음으로도 씻지 못할 만큼 영원히 비난받아야 할 만한 인물인지, 죄와 피의 무게를 달아보자.

 

친일행적이 낱낱이 드러난 악질 친일파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달아준 네 개의 별때문에 모든 악행을 제쳐두고 무조건 현충원에 모셔 안장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그의 친일행각이 모두 확인되고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양심은 늘 이중으로 움직이며 서로 충돌하지만

그걸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아도 모른척 하는 인간들.

 

 

 

그냥 며칠 후 현충원에 함께 묻히시길.

 

 

2020.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