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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근대사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 부록 (1)

beautician 2023. 9. 27. 11:04

 

 

 

1 : 니로로키둘과 마타람 왕국

 

 

니로로키둘(Nyi Roro Kidul)은 자바섬에서 전해내려오는 남쪽바다 마물들의 여왕입니다. 깐젱라투키둘(Kanjeng Ratu Kidul)이라고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물론 일반인들 중에서도 그녀가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유구한 전통문화 속에 전설적인 강력한 영적 존재로 아로새겨져 있고 족자 가까운 남쪽 해안지대 빠랑 뜨리띠스(Parangtritis)지역이 자바의 영적 왕국 중심부라고 하죠.

 

차갑도록 아름답고 통찰력과 직관을 겸비한 니로로키둘은 무서운 자존심과 질투심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옷 색깔과 같은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바다 속으로 끌어들여 익사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거느린 마물들의 군대와 그 사령관 격인, 때로는 인어처럼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체는 아름다운 여인, 하체는 거대한 바다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알려진 니블로롱(Nyi Blorong)까지 이야기하려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랍니다.

 

 

니롤로키둘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순다족의 전승인 데위 카디타(Dewi Kadita) 공주의 이야기입니다.

 

데위 카디타는 서부자바 빠자자란(Pajajaran)왕국의 아름다운 공주였는데 궁안의 대적이 흑마술을 걸어와 온몸의 흉측한 물집이 부풀어 오르며 살이 썩어들어가는 저주를 맞고 궁에서 도망쳐 나와 남쪽바다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독한 저주가 온몸에 퍼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바다에 몸을 던진 그녀를 바다의 영들이 손을 내밀어 보호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초월적 세계의 영적 능력을 얻은 데위 카디타는 마침내 저주를 씻어내고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쪽 바다의 신들과 요괴들을 다스리게 되는데 그것이 니롤로키둘의 탄생입니다.

 

한편 자바 지역의 전승 중엔 이런 것도 있습니다.

16세기 빠장왕국에 대항해 마따람 술탄 왕국을 건설한 권능왕 스노빠티(Penembahan Senopati)가 왕위에 오르기 오래 전, 아직 다낭 수따위자야(Danang Sutawijaya)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때 꼬따거데(Kota Gede)의 자기 집 남쪽으로 펼쳐진 빠랑꾸수모해변(Pantai Parang Kusumo)에서 명상수련을 하곤 했는데 그의 영력이 너무 커 남쪽 바다 영들의 세계엔 그때마다 쯔나미같은 강력한 격변이 몰아쳤으므로 초자연적 존재들은 크게 동요하며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격노한 남쪽바다의 주인 니롤로키둘은 그녀의 왕국에 풍파를 일으킨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해안을 통해 상륙했다가 오히려 수타위자야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말죠여왕은 그에게 명상을 멈추라 한 후 그가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합니다그런 후 그녀는 영적 혼인을 통해 그의 배우자가 되어 마타람 왕국의 건국을 도왔고 대대로 마따람 왕조 모든 왕들의 영적 왕후로서 왕국의 수호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