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절친의 쾌유를 빌며

beautician 2019. 11. 27. 10:00



구기미야가 심장이 멈춘 채 지난 밤 병원에 실려 왔단다.
부인인 나탈리아가 앰뷸런스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차를 몰고 신호를 무시하며 달려왔다는 것이다. 내가 에카 하스삐를의 중환자실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5시간쯤 후였고 구기미아는 이런저런 진단기구를과 링거주사에 연결된 채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다. 심장이 얼마간 멈췄던 걸까? 예전에도 뇌졸중을 이기고 일어난 그가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나탈리아는 남편 핸드폰에서 일본친구를 한자 이름을 읽을 수 없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불현듯 내 이름은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간절히 도움이 필요할 때 날 먼저 떠올렸다는 것이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 구기미야와는 1년에 고작 한 두 차례 전화하는 사이지만 그래서 사이가 멀어졌다는 생각은 그동안에도 들지 않았다. 우린 이미 그런 사이가 아닌 것이다. 나와 릴리의 사이처럼. 나와 릴리의 남편 루벤의 사이처럼. 


경황이 없었을 터이고 그래서 대신 15살 카렌이 전화기 저편에서 일본어로, 그것도 놀랍도록 침착한 어조로 구기기야의 입원사실을 알려 주었으므로 난 BSD의 병원까지 달려오는 동안 온갖 최악의 경우를 머리에 떠올렸다. 병원에서 만난 구기미야는 그 최악을 넘어서까지 갔다가 돌아왔지만 여전히 최악의 상황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내가 차를 몰고 오면서 생각했던 그 최악만큼은 아니었다. 


보험과 비용을 걱정하는 나탈리아는 담담해 보이려 애쓰지만 그건 무너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중환자실에 누은 구기미야는 그 상태에서도 나탈리아의 기정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녀와 얘기하는 동안 그걸 더욱 새삼 깨닫는다.


카렌은 그 사이 세 번쯤 본 것 같다. 태어났을 때. 두 살 때쯤 일본인 친구들과의 어떤 파티 같은 곳에 참석했을 때 엄마와 함께 있던 아이. 그때 이미 이 아이가 커서 미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여섯 살 때쯤이었을까?  15살, 일본학교 중3인 카렌은 이미 다 커 있었다.


저녁 6시 경. 정식 면회시간에 다시 한번 구기미야를 들여다 보았다.

나는 그처럼 성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가족의 안정을 위해 그토록 노력한 이도 본 적이 없다. 그는 BSD에 살면서 10년 가까이 까라왕, 찌까랑의 직장을 다녔으니 길바탁에서 출퇴근으로 매일 다섯 시간 가까이 소비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불평 한 마디 안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예전에 하루 40잔의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다가 뇌졸중이 와서 하루 8리터의 물을 마셔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축구를 좋아했고 바로 얼마전까지도 축구시합을 뛰었다. 

전날 밤에도 그는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카렌이 놀다가 까진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단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이제 우린 몸이 버텨주지 못하는 시대에, 그런 나이에 이르렀다. 

구기미야, 조금만 더 견뎌라. 

네가 쓰러지면 너랑 함께 했던 내 속의 한 부분, 그 시간의 나도 분명 무너져 내리는 셈이니까.


병상에 누은 그의 모습과, 교회 식구들 사이에 앉아 사람들 말에 귀기울이며 걱정 가득찬 나탈리아의 모습, 아빠의 병상 밖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고 있는 카렌의 뒷 모습. 


마음이 짠해지는 밤이다.



2019.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