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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통신원

beautician 2019. 8. 9. 10:00


 


통신원 모집공고를 검색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통신원을 모집하는 기관과 단체가 매우 한정적이면서도 사뭇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정보를 모으려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 검색시기가 항상 통신원 모집마감을 훌쩍 넘긴 후라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자카르타에선 그 해외통신원 포스트를 누군가가 귀신같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내가 영화진흥위원회 통신원이 된 것은 2016년 말의 일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통신원 업무의 본질이 그간 늘 해왔던 시장조사업무와 큰 차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그리 틀리지 않아 난 이제 3년차 영진위 통신원으로서 그간 20여편정도의 현지 영화시장 관련 리포트를 제출했고 그 중 상당수가 KOFICE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본의아니게 날 인니 영화산업 전문가로 만들어 준 그 통신원업무는 여전히 매우 흥미롭고 보람차지만 영진위 입장에선 인니 영화계를 들여다 볼 다른 각도의 시선도 필요할 것이므로 어쩌면 내년엔 다른 이에게 이 일을 넘겨 주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중입니다.

 

일간 아시아투데이 지의 자카르타 통신원은 적응하는 데에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자가 아니니 기사거리를 제보하고 펙트체크나 자료보완을 해주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고보니 일반 기자나 특파원처럼 기사를 직접 써서 데스크에 보내는 일이었어요. 기자전용 프로그램 사용법과 기사작성요령, 데스킹 절차 정도를 이제 간신히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매체에 실리는 수많은 기사들 중 어떤 게 한국에서도 의미있는 기사가 되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워 5월부터 7월까지 겨우 기사 여덟 개를 보내는 데에 그쳤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 그것도 예상을 벗어난 것에 기민하게 스스로를 맞춰가기에 난 너무 나이가 많은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톡방에서 만나는 팀장, 국제부장은 물론 여러 특파원들과 통신원들, 객원기자들이 기사를 쫒고 다루고 팔로업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제대로 된 기자 경력도 없으면서 언론이니 매체니 하며 스스로를 과시하며 압력을 가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기레기 부류가 인도네시아에도 있는데 하루 대부분을 자기 기사를 쓰고 다듬고 이를 위해 취재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앞으로 저런 베테랑이 될 수 있을까 심의 의심스러워졌습니다. 기자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저 현지에 오래 살았다고 마구 현지 기사를 써보낼 자격이 되는 걸까요? 언제쯤 되어야 데스크가 반쯤 잘라내고 걷어내지 않고도 지면에 오를 매끄러운 기사를 쓸 수 있게 될까요?

 

8월 들어선 기사들을 연달아 보내는 중입니다. 양칠성 세미나, 8 2일 반뜬 해저지진, 서부자바 대정전, 아쩨 오랑우탄 학대 학생들 솜방망이 처벌 등. 내가 양승윤 교수님을 믿고 <막스하벨라르>의 초벌번역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것처럼 뭐든 기사거리를 보내면 그걸 취사선택하는 데스크에 대한 믿음이 여러 주제를 다뤄볼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다 시기가 있는 법이고 통신원이란 꼬리표도 언젠가는 떨어지고 말겠지만 해외통신원의 세계란 오래 살았던 나라의 그간 관심갖지 않았던 측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하는 일입니다.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볼 만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