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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날카로운 턱선의 사나이

beautician 2019. 8. 6. 14:56


날카로운 턱선의 사나이




 

배씨 가문에 미남미녀들이 많은 건 다 사진 속 배호용 할아버지 덕입니다. 저 날카로운 턱선을 보세요.


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이미 30대 중반에 들어선 탓에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이나 동남아 전선에 배치되는 대신 일본 본토의 군수공장으로 징용을 나갔습니다.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징용공, 우리 표현대로라면 강제징용 노동자가 된 것입니다. 20대 후반의 아리따운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일본으로 떠난 할아버지는, 그러나 다시는 한국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일한 군수공장이 하필이면 히로시마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1945년 8월 6일 '리틀보이'라고 이름붙은 검은 색 작은 폭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사상 최초 실전에 사용된 원자폭탄이었죠. 히로시마 저고도 상공에서 폭발한 이 원폭은 엄청난 섬광과 고열, 그리고 파동을 일으켜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사이 그라운드 제로 인근 수만 명을 증발시켰고 그후 더 많은 이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어야 했습니다.


배호용 할아버지는 그날 돌아가신 거라 추정됩니다.

해방 후에도 할아버지는 고향 강경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도 완전히 끊기고 말았으니까요.


오늘 2019년 8월 6일은 그렇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4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그후 할머니는 선택의 여지 없이 가장이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가계를 꾸리며 해방 직후 사회혼란과 한국전쟁, 5.16쿠데타, 화폐개혁 등 모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우리 김의선 할머니는 다음 세기에 들어서 나이를 많이 드시고서도 끝내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하셨고 말년에 치매에 시달리다가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날 천국에서 날카로운 턱선을 하고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팔 활짝 벌려 다가오는 미남 할아버지와 재회하는 아리땁고 젊디젊은 여인이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삶이라는 게 너무 서글프잖아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일본은 단 한 명의 강제징용자도, 단 한 명의 위안부도 없었다고 하며 조선을 강점하고 수많은 한국인들을 사지로 내몬 것도,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도 합법이라 하고 남경학살을 비롯한 어떠한 학살행위, 전범행위도 없었다고 합니다. 나쁜 놈들이란 말 외에는 달리 묘사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일본에게 또는 일본 때문에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배호용 할아버지와 김의선 할머니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평생 품었던 한 역시 잊지 않겠습니다.



2019.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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