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도네시아 국립대학에서 열리는 양칠성 세미나 (2019. 8. 16) 본문
양칠성 세미나에 임하는 자세
2019년 8월 16일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Universitas Indonesia)에서 열리는 현지 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 주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중 한국인 투사의 역할'이란 제목의 세미나에 발제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교민원로 김문환 선배님이 서야 할 자리였지만 거주지를 한국으로 옮기신 후여서 시간을 대지 못해 부득이 대타로 지목된 것입니다.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본의 재무장과 경제침공이 시작된 시점에 인도네시아 대중 앞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공교로운 일입니다. 일본에 대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 특히 훗날 국가의 동량이 될 역사학도들, 학생들 앞에서 난 한국의 입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히스토리카는 저평가된 독립 영웅들을 발굴하고 그 가족과 후손들을 돕는 일을 하는 역사단체로 어찌된 일인지 2018년부터 한국의 위안부, 징용자들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특히 1945~1949년 사이 가룻지역에서 빵에란빠빡 부대의 일원으로 네덜란드군과 싸우다 붙잡혀 처형당한 일단의 일본군, 군무원 출신의 외국인들 중 하필이면 조선인 출신 양칠성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최근 주최하고 있는 세미나들을 "양칠성 세미나 "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가 인도네시아 영웅임은 분명하다 해도 친일행각을 의심하면서 동료 한국인으로, 한국 동포로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항일투사나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히스토리키의 후원요청을 한국문화원이 공식적으로 거절한 것은 그런 맥락이라 이해합니다. 히스토리카가 적극 후원하지 않았다면 지난 3월 4일 한국문화원 주최의 3.1운동 100주년 세미나가 그런 규모, 그런 성황을 이루지 못했을 것인데 말입니다. 문제는 히스토리키의 계획은 양철성세미나를 조직하는 것뿐이 아니라 연내 가릇 지역에서 양 칠성로 명명식을 갖는 것이며 히스토리카의 후원을 거절하고 외면한 한국 정부 대표도 반드시 그 자리에 초청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반드시 "얌체 "란 소리를 듣게 될 그 상황의 부끄러움이 왜 나의 것이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걸까요?
아무튼 이 세미나에서 난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1. 양철성은 한국인들에게 왜 껄끄러운가?
2.일본은 2019년에 왜 한국을 경제적으로 침공하고 있는가?
3.소녀상, 징용노동자상은 한국과 일본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갖는가?
4.한국인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알고 있는가?
5. 토착왜구라고 들어는 봤는가?
6. 인니 vs 네덜란드의 관계에서 인니인들은 왜 한국 vs 일본의 관계를 유추하기 힘든가?
7.그리고 마지막으로 4년간 인니 독립군부대에서 전우로 살았던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하던 양칠성의 마음을 함께 헤아려 보자.
8. 그럼 한일관계는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 2019년의 일본은 한국의 친구인가? 아니면 여전히 철천지 원수인가?
9. 그리고 한일관계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뭐가 빠졌을까요?
양칠성은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가장 효과적인 접점입니다. 첫 교민 장윤원보다도, KODECO 최계월회장보다도, 여러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님보다고, 성공적인 한인사업가들보다도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한국정부가 왜 외면하느냐 하는 부분은 어쩌면 매우 뼈아픈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인회에서 민간차원 후원을 결정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2019.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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