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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동티모르

beautician 2019. 2. 24. 10:00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동티모르



 

책을 한번 내면 누구나 조금 더 욕심을 내게 되는 걸까요

다음 책은 어느 주제로 할까를 가지고 몇 개월 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해 9월 발간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는 수카르노의 일생인 1901~1970년 기간을 다루었으니 다음 선택은 당연히 그 이후 수하르토 시대로 가느냐 아니면 그 이전 1602~1949기간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대의 근현대를 조명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각지에서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대항해 벌어진 수많은 반란들을 큰 줄기 삼아 근현대사를 풀어나가는 것도 흥미로울 듯했고 디포네고로 전쟁이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족자술탄국을 집중 조명하는 것도 한국인들이 나름 관심가질 만한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 대한 교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라는 지난 책의 초심을 이어간다면 역시 순수 역사에 가까운 근대사보다는 우리가 직접 겪었을 뿐 아니라 아직도 인도네시아 사회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수하르토를 다루는 게 맞을 듯했고 그래서 다음 책의 이름도 전작에 맞춰 <수하르토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라고 임시로 지어 두었습니다.

 


수하르토가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은 1967년이지만 그가 실권을 쥐는 것이 1965 101일부터이므로 이번 내용은 수하르토의 유년기부터 하야 후 사망할 때까지를 다루되 주로 1965년부터 그가 자카르타폭동과 외환위기 속에서 하야하는 1998년까지의 33년간의 현대사를 따라가며 주요 사건들을 조명해 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가용한 모든 자료들을 긁어 모으고 매주 100쪽 가까운 지난한 번역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물론 해당 기간 벌어진 크고 작은 각종 사건들의 매장면들이 나름대로의 역사적 의미를 갖지만 아무래도 다음 내용들이 본류를 이루게 될 것 같습니다.

1.
수하르토의 집권과정. 필연적으로 9.30 쿠데타와 1965-1966 기간 50-3백만명의 인명을 파괴한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다룰 것이고요.

 

2. 경제발전을 통한 대형 재벌들의 등장과 정권의 부패. 시나르마스 그룹, 리포그룹, 봅 하산 등 유명 기업과 기업인들의 이름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3. 1975-1999 기간의 동티모르 강점.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탈을 견뎌내고 마침내독립한 역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위상에 '침략국' 이란 호칭이 덧붙여지는 중대한 사건이죠.

4. 정권의 부패와 오만이 깊어지며 닥쳐온 필연적 몰락과 새 시대의 도래

 

얼핏 보면 자칫 잡혀가기 십상인 내용들입니다. 당시 인물들 상당수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을 뿐 아니라 가족들과 후손들이, 심지어 어떤 이는 본인이 아직도 막강한 실권을 쥐고 각처에 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 중 가장 민감한 동티모르 강점사건에 대한 자료들을 지난 수 주간 모아 번역하고 연구하면서 오랫동안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로서 고통받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동티모르의 독립투쟁 과정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 네덜란드에 대항한 인도네시아의 독립투쟁에 감명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려 24년간의 인도네시아 강점기 동안 독립은커녕 한줌의 자치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동티모르의 그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모든 반목과 배신과 토벌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무장투쟁을 멈추지 않은 프레틸린과 팔린틸부대의 고군분투는 눈물겹고 한편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동티모르의 독립은, 비록 국제사회의 뒤늦은 개입으로 도움을 받았지만, 어쨌든 그들이 끈질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2006년의 정치파동, 2008년의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까지 겪으면서도 동티모르는 지금껏 독립에 직접 기여한 당대의 영웅들은 대통령과 수상으로 선출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있습니다. 독립 후에도 친일파가 권력을 잡아 독립투사들을 홀대하고 살해했던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부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1 운동과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와 너무 닮은 인도네시아의 강점기를 겪었던 동티모르의 역사와 독립과정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비교하면 우리의 역사와 얼마나 유사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제대로 결착 짓고 넘겨야 한다는 사실 같은 것 말입니다.

 

<수하르토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준비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스스로도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올해 중반을 지날 즈음 윤곽이 보이겠죠. 개인적으로, 또 다시 역사 속에 파묻혀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